며칠 전,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유튜브 영상을 틀었다.
화면낭독기가 논문을 읽어주는 소리와, 영상 속 유튜버의 수다
그리고 때마침 울리는 줌(Zoom) 회의 알림 소리가 뒤섞이는 순간, 스피커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디지털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
한정된 CPU 자원을 두고 세 개의 프로그램이 싸우다, 결국 시스템 전체가 다운되어 버린 것이다.
이 웃지 못할 디지털 멜 tdown은 고민 많은 제자와 현명한 스승의 옛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사업과 결혼, 육아 문제로 머릿속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제자에게, 스승은 아무 말 없이 찻잔에 차를 따르기 시작한다.
차가 넘쳐 바닥을 적시자 제자가 다급하게 외친다.
“스승님! 차가 넘칩니다!”
그러자 스승이 조용히 말한다.
“이 찻잔이 바로 자네의 마음일세.
그 마음의 잔을 비우고 다시 오게나.”
이 이야기는 단순히 ‘마음을 비우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현대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의 핵심을 꿰뚫는 지극히 과학적인 처방전이다.
제자의 머릿속은 이미 수많은 걱정거리로 인해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 상태에 빠져있다.
우리의 뇌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컴퓨터의 램(RAM)처럼 한계가 명확하다.
이미 램이 꽉 차 있는데,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시각 정보 없이 세상을 파악해야 하는 이에게, 이 ‘인지 과부하’는 더욱 빈번하게 찾아온다.
세상은 끊임없이 소리, 냄새, 질감이라는 비정형 데이터를 쏟아낸다.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며 길을 찾고, 사람을 구별하고, 위험을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뇌의 자원은 상당 부분 사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면의 걱정거리까지 찻잔을 넘치게 만든다면, 우리는 가장 간단한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결국 스승의 가르침은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담을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다.
좁은 길에 차가 꽉 막혀 있으면, 그 어떤 차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먼저 길을 터주어야 한다.
당신의 마음속 도로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온갖 걱정거리로 꽉 막힌 주차장은 아닌가?
비하인드 스토리
외출 직전에 현관에서 선글라스가 사라지는 미스터리가 발생했다.
나는 정보학 연구자의 명예를 걸고, 마지막 동선부터 시작해 모든 가능성을 분석하는 치밀한 휴리스틱 탐색(Heuristic Search)에 들어갔다.
그때, 소파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보보가 한마디 했다.
“자기야, 머리 위에 있는 건 뭐야?”
그렇다.
안경은 내 머리 위에 있었다.
때로는 가장 복잡한 문제의 해답이 그냥 머리 위에 있을 때도 있다.
나의 인지 과부하는 그날, 완벽한 코미디가 되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