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이 코딩만 하는 당신에게

by 김경훈

한 공학박사가 ‘시각장애의 문제를 해결할’ 물건이라며 최첨단 내비게이션을 내밀었다.

99.9%의 장애물 인식률! 이쯤 되면 거의 아이언맨의 자비스다.

결과는? 10분 만에 길 위에서 미아가 될 뻔했다.

나머지 0.1%에 내 목숨이 걸려있을 줄이야.

그 공학자는 ‘시각장애’라는 현상에 대해서는 완벽한 지식을 가졌을지 모르나, 그 삶을 살아내는 한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사랑이 완벽히 결여되어 있었다.


이 첨단 기술의 우스꽝스러운 실패는 ‘사랑 없는 지식은 반쪽짜리’라는 진리를 증명한다.

‘사랑에서 완벽하지 않은 사람은 지식에서도 완벽하지 못하다’

이 말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의 ‘질’과 ‘방향성’에 대한 통찰이다.


저 공학자의 실패는 페미니즘 철학의 ‘관점 이론(Standpoint Theory)’으로 명쾌하게 설명된다.

지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개인이 처한 위치와 경험에 의해 구성된다.

공학자는 자신의 비장애인이라는 관점에서 ‘효율’과 ‘데이터’라는 지식을 구축했지만, 실제 사용자의 ‘불안감’, ‘신체적 피로’,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더 본질적인 지식은 놓쳐버렸다.

사랑이 부재했기에 그의 지식은 반쪽짜리로 전락한 것이다.


결국 진정한 앎이란, 대상을 완벽히 분석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대상을 온전한 ‘타자(The Other)’로 존중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이성과 논리를 최상위에 두는 서구 철학의 로고스 중심주의(Logocentrism)는 종종 이러한 관계적 앎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특히,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를 파악해야 하는 이에게, 세상은 객관적인 데이터의 총합이 아니라, 신뢰와 상호 의존성으로 이루어진 관계의 그물망이다.

안내견의 미세한 움직임을 신뢰하고, 행인의 목소리 톤에서 진심을 읽어내는 것.

이 모든 앎의 과정에는 타인과 세계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의 인식론(Epistemology of Love)’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지혜의 방법론이다.


지혜의 정상은 차가운 이성의 봉우리에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공감하고 연대하며 함께 오르는 따뜻한 언덕이다.

그러니 당신이 무언가를 만들려거든, 먼저 사랑부터 하시라.

공감 없는 분석은 폭력일 뿐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며칠 전, 보보와의 산책길.

최단 경로를 알려주는 지도 앱을 켰다.

“이쪽으로 가면 5분 단축 가능!” 나의 완벽한 ‘데이터’ 기반 제안이었다.

보보가 답했다.

“근데 자기야, 그 길은 어제 공사 시작해서 막혔고, 저쪽 길엔 우리가 좋아하는 찹쌀도넛 가게가 있잖아.”

그렇다.

나의 ‘지식’은 그녀의 ‘사랑(과 찹쌀도넛에 대한 열망)’ 앞에서 처참히 패배했다.

그날, 우리는 5분 더 걷고 찹쌀도넛 세 개를 얻었다.

때로는 비효율적인 경로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때도 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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