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귀갓길.
차 안에서는 ‘돌비 공포 라디오’에서 귀족님들의 으스스한 목소리가 연출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옆자리의 철학 박사 보보가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자기야, 시각장애인은 귀신을 볼 수 있어?”
‘귀신’이라는 단어에, 뜬금없이 브런치의 잡채귀신 잡귀채신 작가님이 떠오른 건 비밀이다.
이 얼마나 심오한 질문인가.
만약 귀신이 물리적 실체를 가진 존재라면, 시각장애인은 귀신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귀신을 오싹함, 서늘함 같은 다른 감각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시각 정보의 방해 없이 다른 감각에 더 의존하는 시각장애인이 귀신의 존재를 더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이는 일종의 ‘감각 보상 가설(Sensory Compensation Hypothesis)’을 초자연적 현상에 적용해 보는 지적 유희다.
청각장애인들이 공포 영화를 보며 큰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이 가설에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공포의 상당 부분이 청각적 자극, 즉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을 통해 구성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귀신 역시 특정 감각 채널(Sensory Channel)에 특화된 정보 체계일 수 있다.
‘보는’ 귀신과 ‘듣는’ 귀신, ‘느끼는’ 귀신은 어쩌면 완전히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시각장애인이 죽어서 영혼이 되면, 과연 볼 수 있을까?
이는 육체의 한계가 영혼의 인식 체계까지 구속하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Metaphysical)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저세상에 가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보보의 질문은 ‘본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망막에 상을 맺는 물리적 현상일까, 아니면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총체적 과정일까.
시각장애인에게 귀신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비하인드 스토리
며칠 전, 늦은 밤에 탱고와 단둘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유독 어둡고 으슥한 캠퍼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녀석이 갑자기 그 자리에 얼어붙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녀석이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다른 감각으로 느끼는 귀신’인가!
공포에 떨며 녀석을 끌고 그 자리를 벗어난 뒤, 보보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가 말했다.
“아, 자기야, 거기 길고양이들 밥 주는 곳이잖아.”
그렇다.
녀석은 귀신이 아니라, 자신의 밥그릇을 넘보는 라이벌을 향해 경고를 날렸던 것이다.
나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고찰은 고양이와의 영역 다툼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