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놈의 닭 사료 좀 먹지 마세요!

by 김경훈

한 방송에서 양계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업가의 인터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성공 비결을 묻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그가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전 이 사업을 위해 안 먹어 본 닭 사료가 없습니다.”

풉! 죄송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닭의 먹이를 사람이 직접 맛보았다는 대목은 너무도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묘한 여운이 남았다.


닭 사료를 직접 먹어본 그의 행동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의 극단적인 형태일지 모른다.

‘내 입맛에 좋으니 닭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타자의 고유한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인식론적 오만(Epistemological Arrogance)’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

그 열정은 진지했지만, 그 방법론은 순진함을 넘어 위험해 보였다.


이 기묘한 사례를 웃으며 넘기려던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겪어온 수많은 ‘선의의 폭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안내견 탱고의 머리를 쓰다듬는 ‘셀프 임명 동물조련사’의 손길, 더 잘 들리라며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자원봉사 성대 증폭기’ 같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좋은 뜻에서 시작했겠지만, 그 도움은 상대의 필요가 아닌, 자신의 기준에 맞춘 일방적인 행동이었다.

그들이 건넨 호의는 결국, 받는 이에겐 맞지 않는 ‘사람 입맛의 닭 사료’였던 셈이다.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은 이내 방향을 틀어 자기 자신을 향한다.

과연 타인을 향한 배려 속에 그런 강요는 없었을까.

발치에서 꼬리를 치는 탱고의 모습이 선하다.

건강에 좋다는 값비싼 유기농 장난감을 사다 주어도, 정작 녀석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낡고 해진 밧줄 인형일 때가 많았다.

그저 ‘이것이 더 좋다’는 자신의 판단만으로, 녀석의 진짜 즐거움을 빼앗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당신은 어떤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당신만의 ‘최고급 유기농 닭 사료’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사업가의 이야기에서 진정 곱씹어야 할 대목은 닭 사료를 맛본 기이한 열정이 아니다.

그가 닭들을 향해 가졌을 가장 원초적인 바람, 즉 병아리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그 순수한 마음이다.

모든 관계는 바로 그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정성껏 조리한 특별식을 무작정 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먼저 묻고 듣는 자세.

그것이 바로 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온전히 인정하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시작이다.


타인의 세계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기꺼이 그의 세상으로 들어가 배우려는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 마음이야말로 모든 서툰 배려와 섣부른 열정을 넘어, 진정한 소통과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일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며칠 전, 보보가 피곤해 보이길래 ‘최고의 선물’을 준비했다.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확신’하며, 요즘 가장 핫하다는 발라드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예매한 것이다.

서프라이즈로 티켓을 내밀자, 보보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고맙긴 한데… 자기야, 나 신나는 거 좋아하는 거 알잖아. 난 사실 부산 락페스티벌에 가고 싶었는데…”

그렇다.

나는 보보에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닭 사료를 먹이려 했던 것이다.

그날 밤, 발라드 티켓 두 장은 조용히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라갔다.

물론, 그 판매금으로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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