혓바닥 자국으로 완성된 나의 새 선글라스

by 김경훈

새로운 레이밴 선글라스를 샀다.

눈을 보호할 목적의 보안경이 필요했다.

여러 제품을 써봤지만, 코와 귀에 닿는 감촉, 얼굴을 감싸는 무게 중심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연 레이밴이었다.

하지만 이 제품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함께 간 보보가 수많은 안경테 사이에서 찾아낸, 그야말로 내 얼굴에 ‘최적화’된 물건이라는 확신에 찬 한마디 때문이었다.


안경점에 들어서는 것은 언제나 독특한 경험이다.

수십, 수백 개의 ‘눈’들이 소리 없이 진열되어 있다.

그것들은 저마다 다른 무게와 질감, 형태를 가지고 신체와의 합일을 시도한다.

어떤 것은 코를 짓누르고, 어떤 것은 관자놀이를 압박한다.

오직 촉각에 의존해 기능적 동반자를 찾는 이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상학적(Phenomenological)인 체험이다.


그 고독한 탐색의 과정에 보보의 목소리가 입혀졌다.

“이건 너무 날카로워 보여.”

“이건 잠자리 같아.”

“이건 자기를 위한 게 아니라, 자기를 숨기기 위한 것 같아.”

그녀는 보이지 않는 거울이 되어, 안경이 씌워줄 사회적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번역해 주었다.


촉각의 세계와 시각의 세계가 한 공간에서 치열하게 교섭을 벌이는 순간.

마침내 레이밴을 썼을 때, 편안함이라는 내적 기준은 충족되었다.

그리고 보보가 마침표를 찍었다.

“바로 이거야. 자기의 지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얼굴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 줘. 자기를 위한 안경이야.”


한 사람의 자아 정체성(Ego Identity)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특히 사랑하는 타자의 시선(Le regard de l'autre)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얼굴에 어울리는 형태를 그녀의 눈을 빌려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구매는 완결되었다.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와 관계를 소비하는 기호학적 소비(Semiotic Consumption)를 하고 있었다.


백화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탱고에게 새 선글라스를 쓴 채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새로운 주인의 모습이 궁금하다는 듯, 탱고는 안경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새까만 렌즈 위로 길고 축축한 혓바닥 자국을 남긴 것이다.


순간 웃음이 터졌다.

이 선글라스 하나에 담긴 세 개의 세계가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첫째, 안전과 편안함이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필요의 세계.

둘째,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의 사회적 이미지를 완성하는 관계의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랜드의 가치나 미학적 의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눈앞의 사물을 핥아보는 탱고의 원초적 감각의 세계.


하나의 얼굴 위에 이 세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촉각으로 느낀 편안함, 사랑하는 이의 눈으로 확인한 아름다움, 그리고 강아지의 혓바닥이 남긴 축축한 흔적.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비로소 이 선글라스는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어쩌면 완벽한 ‘최적화’란, 이처럼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가 하나의 대상 위에서 유쾌하게 충돌하고 끝내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하인드 스토리


그날 저녁, 보보가 장난삼아 그 선글라스를 써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렌즈를 핥으며 격한 애정을 표현하던 탱고가 그녀의 얼굴을 한번 쓱 쳐다보더니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등을 돌리고 엎드려버렸다.

그렇다.

탱고의 혓바닥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선글라스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녀석의 충성심에 감동해야 할지, 아니면 보보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인지, 그 미묘한 진실 앞에서 잠시 고뇌에 빠졌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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