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방에 비스포크 인덕션을 들였다.
미니멀리즘의 정수라 할 만한 물건이다.
군더더기 없는 평평한 검은 유리판 위에, 필요할 때만 빛으로 떠 오르는 가상의 버튼들.
그것은 가전제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미디어 아트 작품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미니멀리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시각 정보가 차단된 사용자에게 이 매끈한 유리판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거대한 석판과도 같았다.
물리적 버튼의 돌출감과 아날로그 다이얼의 저항감을 기억하는 손가락에게, 터치식 인터페이스는 미지의 영역이다.
이 기술적 장벽 앞에서, 보보가 해결사로 나섰다.
그녀는 전원, 화력 조절, 타이머 등 주요 기능이 위치한 자리에 핀셋으로 한 땀 한 땀 점자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보이지 않던 디지털 언어가 만져지는 촉각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사랑의 행위인 동시에, 애초에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고려하지 않은 제품 설계에 대한 조용한 항의이기도 했다.
점자라는 새로운 피드백을 손에 넣자, 용기가 생겼다.
홀로 라면을 끓여보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냄비에 물을 받고 인덕션 위에 올렸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점자스티커의 안내에 따라 불을 켤 차례.
손끝의 감각을 총동원해 ‘전원’이라 쓰인 스티커를 찾아 눌렀다.
“띵동~”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인덕션이 깨어났다.
다음은 화력 조절.
9단계로 나누어 붙여진 스티커 중 7번째를 찾아 눌렀다.
또다시 “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몇 분이 지나도 물이 끓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화력 버튼을 눌렀다.
“띵~”.
여전히 주방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그저 기계의 명랑한 응답 소리만 반복될 뿐이었다.
그 소리를 간식 달라는 신호로 오해한 것일까.
주방 바닥에 엎드려 있던 탱고가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가 나는 인덕션을 향해 기대에 찬 “킁킁!” 콧바람소리를 내뱉었다.
반복되는 전자음과 탱고의 킁킁 에 놀란 보보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컨트롤 패널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야, 화력은 그대로 1단인데… ‘키즈락’이랑 ‘타이머’ 기능만 계속 켜고 끄고 있었어.”
손끝으로 더듬어 찾은 세계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미로였던 것이다.
이 세련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불친절한 사용자 경험(UX)을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그날의 라면은 보보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작은 소동은 단순히 한 개인의 해프닝이 아니다.
이는 첨단 기술의 발전이 때로는 특정 사용자를 어떻게 배제하고 기술적 소외(Technological Alienation)를 야기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사례이다.
점자 스티커라는 아날로그적 ‘땜질’ 없이는 디지털 시대의 가장 기본적인 조리 도구조차 사용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당분간, 요리는 보보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대신 설거지를 도맡아 하기로 했다.
물과 세제, 그릇의 감촉은 결코 사용자를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스티커의 안내만을 받아 완벽한 라면 한 그릇을 끓여내고야 말 것이다.
그날은 비로소 저 차가운 유리판이 진정으로 ‘나의 주방’의 일부가 되는 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