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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짜리 지중해, 톰포드 네롤리 포르토피노 고용 후기

by 김경훈

엄청난 시급을 자랑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하나 고용했다.

이름은 톰 포드 네롤리 포르토피노.

터키색 바다를 닮은 눈부신 용모에, 이탈리아 휴양지의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허풍으로 가득 찬 친구다.

그 몸값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뿌리는 순간 통장이 ‘텅장’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과연 이 친구가 그 값어치를 하는지, 오늘 하루 밀착 취재를 통해 낱낱이 파헤쳐 보기로 했다.


업무 시작 신호와 함께, 이 친구는 자신의 모든 매력을 초반에 쏟아붓는다.

시칠리안 레몬, 베르가못, 만다린 등 온갖 종류의 시트러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마치 지중해의 태양을 통째로 갈아 넣은 듯 눈부시고, 고급 리조트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바로 그 향기다.

코로 마시는 샴페인 같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합격.

시급이 아깝지 않은 완벽한 첫인상이다.


하지만 진짜 모습은 그 요란한 첫인사가 끝나고 나서야 드러난다.

이 친구의 심장, 즉 미들 노트는 네롤리와 오렌지 블라썸이라는 순백의 꽃다발이다.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비누 냄새라고 할까.

깨끗하고 청초하며, 한없이 맑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너무 ‘깨끗’하기만 하다.

지중해의 역동적인 파도와 뜨거운 태양을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저 잘 관리된 호텔의 새하얀 리넨 시트 위에서 뒹구는 느낌이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이 친구의 정체성은 ‘럭셔리’가 아니라 ‘청결’에 가깝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근무 태만이다.

그렇게 비싼 몸값을 자랑하면서, 이 친구의 업무 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에 불과하다.

화려했던 시트러스는 온데간데없고, 청초하던 비누 향기도 희미해질 무렵, 앰버와 머스크의 미지근한 잔향만이 “나 퇴근합니다”라는 소심한 인사를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마치 4시간 동안 지중해에 잠깐 발만 담갔다가 나온 기분이다.

이건 휴가가 아니라 체험판에 가깝다.

이럴 거면 ‘네롤리 포르토피노’가 아니라 ‘네롤리 포르토피노 당일치기 에디션’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마땅하다.


최종 평가 시간.

톰 포드 네롤리 포르토피노 군.

자네는 분명 매력적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완벽한 휴양지의 환상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 환상은 너무나도 짧고, 대가는 혹독하다.

시각 정보 없이 오직 후각에 의지해 세상을 그리는 사람에게, 이렇게 빨리 사라져 버리는 향기는 찰나의 신기루와 같다.


이 친구는 매일 함께할 동반자라기보다는 아주 특별한 날 잠시 기분 전환을 위해 고용하는 ‘이벤트성 알바’로 적합하다.

지속력이라는 성실함 대신, 찰나의 화려함으로 모든 것을 건 승부사.

그게 바로 네롤리 포르토피노라는 비싸고 게으른 멋쟁이에 대한 한 줄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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