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용기 사이에서 삶을 살아낸다는 것

by 김경훈

데이비드 그리피스의 시는 삶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말한다.

우리에겐 단단한 ‘힘’이 필요하고 동시에 부드러운 ‘용기’도 필요하다고.

이 짧은 문장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견디고 살아내기 위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의 절묘한 균형을 엿본다.

특히 시각장애인으로서 세계를 인식하고 통과해야 하는 사람에게 이 두 단어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일의 현실과 부딪히는 구체적인 근육의 이름이다.


세상은 먼저 힘을 요구한다.

길 위의 불확실함을 밀고 나가는 안내견 탱고와의 발맞춤에서,

소리와 진동, 공기의 방향을 통해 낯선 공간의 구조를 직조해내는 고도의 감각적 판단에서

그 모든 감각은 생존을 위한 훈련이자 기술이고, 동시에 의지의 발현이다.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도 매일 같은 속도로 출근하고,

타인의 낯선 시선과 섣부른 친절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기 리듬을 유지하는 일.

이 모든 것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단단한 갑옷 같은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그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젠가 반드시 갑옷을 벗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자존감이 꺾이지 않도록 혼자 감당해오던 자잘한 불편과 고단함이

도무지 감당되지 않는 하루.

그때는 조용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제가 어디쯤에 있나요”라는 한 문장에 담긴 것은 단순한 정보 요청이 아니라

자기 무장을 내려놓는 결단이다.

그 질문을 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인간 존재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이다.


그리피스가 말하는 ‘용기’는 무력함을 감추는 기술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투명성이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겠다는 강한 독립성은 때때로 타인을 밀어내는 차가운 벽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용기는 그 벽에 스스로 창을 내는 일이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간은 단지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타인을 신뢰하고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능동적 존재로 변화한다.


우리는 종종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 안에 특별한 초능력이라도 존재하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특수한 능력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되는 ‘불완전함의 인정’ 속에서 삶이 구성된다.

어떤 날은 두세 번 연달아 같은 질문을 해야만 길을 찾을 수 있고,

어떤 날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삶의 깊이를 만드는 실존의 지점이다.


힘은 버티게 한다.

하지만 용기는 연결하게 한다.

혼자의 힘으로 살아내는 삶이 때로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함께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는 삶만이 진짜 사람다운 삶이다.

그리피스가 말한 삶의 두 근육 중 하나만을 단련해선 안 되는 이유다.


결국 우리는 모두 두 개의 근육을 가지고 살아간다.

홀로 설 수 있는 힘과

기꺼이 기대는 용기.

그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생존을 넘어

온전히 살아 있는 삶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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