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시작하기 전 마음속에 가장 먼저 들어서는 감정은 종종 기대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내가 누군가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
그것이 함께 걷는 동행이 아니라 어쩌면 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근원적인 불안이 사랑의 문 앞을 맴돈다.
특히 시각장애인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이 ‘부담’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길을 안내받고 메뉴판을 대신 읽어달라고 청하며 보이지 않는 세상의 수많은 정보를 상대의 목소리에 의존해야 하는 관계.
과연 그것은 동등한 사랑일 수 있을까.
내가 제공받는 돌봄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가슴속에 남는다.
곽정은 작가의 글은 이 질문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건넨다.
사랑이란 잘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잘나게 만들어주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말.
처음에는 이 문장이 오히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미 수많은 부족함을 지닌 존재인 내가 누군가에게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한 도움을 넘어 감정의 노동까지 상대에게 부과하는 이기적인 태도가 아닌가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작가의 문장은 마지막 한 줄에서 그 모든 의문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사랑이란 상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과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이 문장은 사랑을 더 이상 일방적인 돌봄이나 책임의 구도로 보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랑을 서로가 서로의 인간됨을 완성해주는 ‘상호 구성적 관계’로 새롭게 조명한다.
한 사람의 장애는 관계의 약점이 아니라
상대가 더 사려 깊고 섬세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이 거기 담겨 있다.
보이지 않는 파트너를 위해 영화 장면을 묘사해주는 일은
그에게 더 풍부한 언어와 섬세한 감각을 선물할 수 있다.
함께 길을 걷고 위험을 먼저 인지하는 경험은 그를 더 책임감 있고 주의 깊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장애라는 결핍은 오히려 상대방 안에 숨어 있던 공감 능력과 이타성을 자극하는 특별한 토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법’이라는 가장 깊이 있는 개인 교습을 선물하는 일이다.
이 교습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상호적 성장의 과정이다.
사랑은 단순히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의 세계에 들어가 서로를 변화시키고 이전보다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누가 더 많이 주고 덜 받았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변화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부담’이라고 여겼던 나의 조건은 오히려 관계를 성장시키는 기회가 되고
두려움은 용기로 전환된다.
‘당신을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작고 단단한 결심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랑은 결국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힘이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해 보보.
우리 함께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