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을 캐는 심마니는 반듯하고 편안한 길을 외면한다.
그들이 찾는 귀한 것은, 애초에 그런 길 위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명료한 사실은 삶의 가치와 기회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대한 은유이다.
모두가 가는 길은 안전할지는 몰라도, 그 끝에는 범용한 풍경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 ‘다른 길’이 용기 있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의 소산이다.
세상의 주류가 만들어 놓은 ‘반듯한 길’이 처음부터 수많은 계단과 문턱으로 가로막혀 있을 때, 남들이 가지 않는 험한 길을 택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유일한 생존 방식이 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심마니의 지도를 손에 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처음에는 이 길 없는 길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왜 다른 이들처럼 평탄한 길을 걷지 못하는가에 대한 불만이다.
하지만 이내 깨닫게 된다.
이 험한 길 위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열매’가 있다는 것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듣고, 만지고, 느끼면서 세상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독특한 ‘소수자적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가치 전도’ 현상이다. 세상이 ‘결핍’이라 부르는 조건이, 역설적으로 남다른 ‘통찰’이라는 산삼을 캐게 하는 동력이 되는 셈이다.
문제 해결 방식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해진 길이 없으니, 매 순간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야 하는 ‘창의성’이 요구된다.
잘 닦인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에게는 불필요한 능력이지만, 숲을 헤쳐 나가야 하는 심마니에게는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다.
이처럼 ‘기회는 역경으로 가장하고 나타난다’는 말은, 장애를 가진 이의 삶 속에서 더욱 실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일상의 불편함이라는 역경이, 오히려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고 기존의 ‘인습’에 도전하게 만드는 기회로 작용하는 것이다.
결국 누구도 심마니가 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다 보니, 어느새 남들이 가보지 못한 깊은 숲 속에 들어와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산삼 한뿌리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 귀한 것을 얻기 위해 이 험한 길을 걸어온 것인지, 아니면 이 험한 길을 걷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견하게 된 것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세상의 모든 귀한 것들은 언제나 길의 끝이 아닌, 길 없는 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