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알고리즘

by 김경훈

“아름다움과 사랑은 머리로 계량할 수 없다”는 말은 단순한 감상적 진술이 아니다.

이 문장은, 세상의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산을 넘어서는 감각과 수용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철학적 직관을 담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말에 철저한 이성주의자로 알려진 임마누엘 칸트의 일화가 뜻밖의 각주를 달아준다.

한 여인의 청혼 앞에서 그는 사랑이 아닌 수치를 들여다봤다.

결혼의 장점 354가지와 단점 350가지를 목록화한 뒤에야 결정을 내렸다는 이 일화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깊은 통찰을 던진다.


정보학 연구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낯설기보다는 익숙한 풍경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패턴을 분석하며, 정형화되지 않은 문제를 구조화하는 일은 학문적 삶의 일상이다.

아마도 칸트는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자신의 철저한 인식 틀과 판단 기준 안에 끌어들여 이해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에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난제였고, 도서관은 감정의 진위를 입증할 수 있는 실험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알고리즘은 중대한 오류를 범한다.

사랑은 숫자와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 정성적 가치이다.

칸트는 장점과 단점을 계량하여 결론을 도출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라는 변수는 고려하지 못했다.

사랑은 빠르게 반응해야 할 감각의 영역인데, 그는 7년이라는 계산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 시간은 이성의 정확성이 감성의 직관성에 얼마나 뒤처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아이러니다.


“가슴을 열어야 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말은 특히 시각장애인에게 실감나는 진리이다.

이들은 세상을 오롯이 감각과 감정으로 체험한다.

소리의 높낮이, 목소리의 따뜻함, 손끝의 감촉, 대화의 숨결 같은 요소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의 근거가 된다.

이런 감각은 계량될 수 없고, 수치로 비교할 수 없다.

그저 존재하고 느끼는 순간에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칸트의 일화는 하나의 교훈을 준다.

세상을 분석하고 구조화하는 데에는 이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하고, 공감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감성의 용기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이성과 감성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한 손에는 분석 도구를, 다른 한 손에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를 함께 쥐어야 한다.

진정한 인간-정보 상호작용의 이상은 바로 이 균형 위에 성립된다.

데이터를 읽되, 사람을 느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지혜로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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