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와 모호

by 김경훈


애매함과 모호함 그 사이에서


세상의 모든 말과 글 그리고 상황 속에는 종종 안개처럼 뿌연 영역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불분명한 상태를 두고 애매하다 혹은 모호하다고 말한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결이 완전히 다른, 언어의 의미론 적 쌍둥이이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안갯속에서 나침반을 읽는 것과도 같은 지적인 유희이다.


‘애매’하다는 것은, 여러 개의 선명한 갈림길 앞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길 자체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연인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주말에 영화나 볼까” 하고 묻는 상황이 바로 그렇다.

이는 친구로서의 제안 혹은 연인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두 개의 명확한 지시 대상 사이에서 망설이는 다의성의 문제이다.


반면 ‘모호’하다는 것은, 갈림길은커녕 길 자체가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경계가 흐릿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다.

직장 상사가 “보고서는 다음 주까지 좀 더 잘 써와”라고 말하는 상황이 전형적인 예이다.

여기서 ‘잘’이라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불분명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그 실체 자체가 안갯속에 있다.

이는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다.


이 둘의 차이는 저녁 메뉴를 정하는 상황에서도 발견된다.

한 친구가 “아무거나 맛있는 거 먹자”라고 제안했다고 하자.

여기서 ‘맛있는 것’은 모호하다.

각자의 미각적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랜 토론 끝에 메뉴를 파스타로 정했지만 그 친구가 다시 “그냥 아무 데나 가까운 데로 가자”라고 말한다면, 상황은 이제 애매 해진다.

주변에 파스타 가게라는 선택지는 여러 개 있지만 어느 한 곳을 특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모호함과 애매함의 이중주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결국 이 두 개념의 구분은 불확실성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다.

애매 함은 선택지의 문제이고 모호 함은 선택지 이전의 문제이다.

우리의 삶이 고달픈 이유는 때로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닥쳐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호한데 그 와중에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애매한 선택까지 해야 하는 상황. 이 언어적 유희의 끝에서 명확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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