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고전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이들이 있다.
오늘 만난 친구,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로사 가데니아’는 바로 그런, 19세기 유럽의 어느 명망 높은 가문의 영애(令愛)와 같다.
수도원의 정원에서 탄생한 역사를 가진 브랜드답게, 그녀에게서는 최신 유행이 아닌, 오래도록 지켜온 기품과 예법이 느껴진다.
과연 이 고풍스러운 아가씨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정중히 옷깃을 여미고 그녀와의 티타임에 임해 보기로 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악수가 아닌, 우아한 굴신(屈身) 인사와 같다.
부드러운 아몬드 블라썸과 얌전한 베르가못의 향기가 그녀가 방에 들어섰음을 조용히 알린다.
결코 소란스럽거나 튀지 않는다.
언제나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는 그녀의 응접실처럼, 맑고 깨끗하며 단정한 첫인상이다.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자, 그녀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그녀의 심장에는 크림처럼 부드러운 가데니아(치자꽃)와 수줍은 장미가 한가득 피어있다.
이는 그녀의 취미가 정원 가꾸기와 시 읽기이며, 가장 좋아하는 것은 레이스가 달린 손수건과 갓 구운 마들렌일 것이라 짐작게 한다.
그녀는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물으면, 수줍게 미소 지으며 자수 놓는 법에 대해 이야기할 것만 같다.
그녀의 향기는 너무나 ‘올바르고’ ‘전통적’이어서, 현대의 복잡함 따위는 감히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그녀의 아름다움이 사실은 연약함의 다른 이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향기는 부드러운 샌달우드와 포근한 머스크, 그리고 아주 약간의 바닐라가 섞인, 최고급 비누의 잔향이다.
그녀는 세상의 거친 풍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정하고 깨끗한 향기의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세계는 아름답지만, 오직 그녀의 정원과 응접실 안에서만 유효하다.
로사 가데니아는 병에 담긴, 지나간 시대의 낭만이다.
그녀는 완벽한 예법과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21세기의 소음과 속도를 견디기에는 너무나 섬세하다.
그녀의 향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에는 주저하게 만드는 익숙함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름다운 시대극의 주인공이다.
함께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오후를 보내고 싶은 친구이지만, 함께 거친 세상으로 탐험을 떠날 파트너는 아니다.
그녀는 영원히, 가장 아름답고 안전한 과거 속에 머물러 있을, 어여쁜 시간 여행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