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한 학과의 세미나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는 유독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박사 과정의 선배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연구 주제는 비주류였고, 말투는 다소 직설적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어려운 사람이라 여기며 거리를 두었다.
첫인상이 강렬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마치 짙은 흙냄새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선배가 참여하는 공동 연구는 언제나 놀라운 시너지를 냈다.
그는 다른 연구자들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너무 가볍게 뜨지 않도록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주었고, 때로는 자신의 투박한 지식으로 다른 분야의 세련된 이론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처음에는 기피하던 사람들도 점차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빛나는 별이기보다, 다른 별들을 더 빛나게 만드는 밤하늘 같은 존재였다.
그 선배의 첫인상과 숨은 역할은 꿀풀과 식물인 ‘패츌리(Patchouli)’의 향과 그 역사를 꼭 닮았다.
패츌리는 민트과에 속하지만, 상쾌함보다는 흙과 젖은 나무, 스모키 한 연기와 쌉쌀한 초콜릿의 향이 복합적으로 얽힌, 다소 낯설고 무거운 향을 가졌다.
하지만 이 독특한 캐릭터 덕분에 패츌리는 시트러스 다음으로 향수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원료가 되었다.
스스로 강한 개성을 가지면서도, 장미 같은 꽃향기나 바닐라의 달콤함, 다른 우디 계열의 향과도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전체 향의 균형을 잡고 오랫동안 지속시키는 ‘베이스노트’이자 ‘픽서티브(fixative, 고정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패츌리의 역사는 그 향만큼이나 극적인 오해와 재발견의 연속이다.
이 향이 서구 사회에 처음 알려진 1800년대, 그것의 본래 역할은 향수가 아닌 ‘살충제’였다.
동남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값비싼 비단을 실어 나를 때, 해충을 막기 위해 마른 패츌리 잎을 천 사이에 끼워 넣었다.
기나긴 항해 끝에 파리에 도착한 비단 상자를 열었을 때, 귀족들은 생전 처음 맡아보는 신비하고 이국적인 향에 매료되었다.
실용적 목적의 방충제가 우연히 ‘최고급 비단에서 나는 향’이라는 후광을 얻게 된 것이다.
이는 상품의 가치가 그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보여준다.
‘가치의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ion of Value)’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패츌리 향은 곧 파리 상류층의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으로 기능하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패츌리는 재배가 쉽고 값이 저렴했다.
유행이 대중에게 퍼지자, 차별성을 추구하던 상류층은 가차 없이 패츌리를 버렸다.
‘고급스러운 향’이라는 기의(Signified, 의미)는 사라지고, ‘흔하고 값싼 향’이라는 새로운 꼬리표가 붙었다.
이처럼 하나의 기표(Signifier, 후각적 향)는 시대와 계급의 욕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잊힐 뻔했던 패츌리는 1960년대 히피 문화와 만나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자연 회귀, 동양의 신비주의를 추구하던 히피들에게 패츌리의 흙냄새는 ‘기성세대의 인공적인 향수’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다.
심신 안정 효과나 마리화나 냄새를 덮으려는 실용적 목적까지 더해지며, 패츌리는 ‘저항과 자유의 향’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다.
현대에 이르러 패츌리는 더욱 정교한 예술의 도구가 된다.
1990년대 티에리 뮈글러의 ‘에인절’에서는 솜사탕 같은 단향을 너무 유치하지 않게 잡아주는 무게추 역할을 했다.
2010년대 프레데릭 말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에서는 장미와 결합하여 고혹적이고 어두운 장미 향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이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어셈블리지(Assemblage)’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패츌리는 다른 향과 결합할 때 단순히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향의 속성까지 바꾸고 전체적인 구조를 재편하는 핵심 행위자(agent)가 되는 것이다.
후각은 공간과 사람, 사물을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감각 중 하나이다.
그리고 패츌리의 역사는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이 얼마나 많은 오해와 사회적 편견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첫인상의 강렬함이나 투박함 뒤에 숨겨진 안정감과 조화로움, 그리고 다른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잠재력.
패츌리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교훈이다.
진정 위대한 것은 언제나 가장 화려한 솔리스트가 아니라, 전체 교향곡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조용한 베이스노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