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 편리한 것

by 김경훈

오래도록 손에 익은 구형 맥북이 있었다.

투박하고 무거웠지만, 모든 명령어와 단축키가 손끝에 각인되어 있어 생각과 동시에 문서를 작성할 수 있게 해 주던 충실한 도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가볍고 빠른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훨씬 뛰어난 기능과 확장성을 약속했지만, 새로운 운영체제와 명령어 체계를 익히는 과정이 까마득한 벽처럼 느껴졌다.

낡은 기기의 버벅거림에 불평하면서도, 막상 그것을 내려놓고 미지의 신세계로 넘어가기를 몇 달이나 망설였다.

손안에 쥔 익숙한 불편함이 손 너머에 있을 보이지 않는 편리함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던,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기억이다.


이 개인적인 줄다리기는 ‘전리품을 태운 왕’의 옛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눈앞의 적국 수도를 정복하기 직전, 병사들은 그간의 전투에서 얻은 소소한 전리품들의 무게에 짓눌려 진군하지 못한다.

왕은 불을 피워 그 모든 것을 태우라 명하고, 빈손이 된 병사들은 마침내 수도를 함락하여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을 얻는다.

이야기는 ‘작은 욕심을 버려야 더 큰 것을 얻는다’는 명쾌한 교훈을 제시한다.


이 병사들의 심리는 행동경제학의 핵심 개념인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증명했듯,

인간은 같은 크기의 이익에서 얻는 기쁨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심리적으로 훨씬 더 크게 평가한다.

병사들에게 당장 등짐을 진 전리품은 ‘확실한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 만족감을 주지만, 수도의 보물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불확실한 가능성’ 일뿐이다.

전리품을 불태우는 행위는 이 확실한 만족감을 포기하는 ‘손실’이기에, 병사들이 내심 불만을 가졌던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이다.

왕의 교훈은 결국 이 손실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더 큰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을 만회할 수 있다는 냉정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비판적 연구자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보면, 교훈 이면의 서늘한 권력관계가 드러난다.

병사들은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전리품을 버린 것이 아니다.

왕의 ‘엄벌에 처하겠다’는 명령에 의해 강제로 포기했을 뿐이다.

이는 자발적 포기가 아닌, 권력에 의한 강제적 박탈에 가깝다.

이 서사는 결국 승리한 왕의 관점에서 재구성된 성공 신화이며, 병사 개개인의 갈등과 불만은 ‘더 큰 대의’라는 명분 아래 손쉽게 삭제된다.


이 지점에서 연구 과정에서 마주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낡은 맥북을 고집했던 것은 단순히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축적된 자신만의 작업 방식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생존의 경로였다.

그 경로를 버리는 것은 단지 도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구축해 온 세계의 일부를 허무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작은 욕심’이란, 때로는 이처럼 생존과 직결된 습관이나 정체성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성장은 현명한 왕의 일방적인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등짐에 든 것이 무엇인지, 그 무게가 자신을 어디로 향하게 하고 또 무엇을 막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타인이 규정한 ‘전리품’과 ‘보물’의 가치를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으로 그 가치를 재평가하는 주체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왕이 되어야 한다.

때로는 낡고 익숙하지만 더는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과거의 성공 방식, 편견, 심지어는 상처까지도 과감히 불태워버릴 결단이 필요하다.

그 빈손의 가벼움과 막막함을 견뎌낼 때, 비로소 예전의 등짐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었던 새로운 수도의 보물창고, 즉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손 안의 동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금화를 향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은 믿음의 영역이자 가장 능동적인 형태의 자기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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