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가못, 익숙함 속에 숨은 복잡함

by 김경훈

학제 간 연구팀에 새로 합류한 통계물리학자가 있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대부분인 팀에서, 그의 존재는 마치 레몬 한 조각처럼 낯설고 날카로웠다.

그는 언제나 데이터와 확률, 오차범위에 대해서만 이야기했고, 그의 명료한 논리 속에는 감성이나 은유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팀원들은 그를 ‘인간 계산기’라 부르며 보이지 않는 벽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이 끝난 뒤늦은 밤의 찻집에서, 그가 쇼팽의 녹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음표와 음표 사이의 미세한 간격, 건반을 누르는 압력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을, 마치 물리학의 변수를 분석하듯 정교하고도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냈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날카로운 레몬이 아니었다.

레몬의 상쾌함에 라벤더의 평온함과 재스민의 우아함을 더한,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었다.


이 물리학자의 반전 매력은 시트러스의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 ‘베르가못(Bergamot)’을 떠올리게 한다.

베르가못은 귤과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단순한 시트러스 과일로 분류되기 쉽다.

하지만 그 향을 맡는 순간, 모든 분류학(Taxonomy)적 시도는 무력해진다.

레몬이나 오렌지처럼 맑고 상쾌한 시트러스의 향을 기본으로 품고 있으면서도, 그 뒤로는 갓 깎은 풀의 싱그러움, 라벤더 같은 허브의 차분함, 그리고 이름 모를 흰 꽃의 부드러운 향기가 복합적으로 피어오른다.

얼 그레이 홍차의 상징적인 향이 바로 이것이다.

평범한 홍차에 베르가못 오일 한 방울이 더해지는 순간, 차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음료로 승격된다.


이 독보적인 복합성 덕분에, 베르가못은 수백 년간 조향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그 역사는 18세기 독일 쾰른에서 탄생한, 근대 향수의 시초라 불리는 ‘쾰른의 물(Eau de Cologne)’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향수는 단순한 미용품이 아니었다.

질병이 나쁜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고 믿었던 ‘미아즈마 이론(Miasma Theory)’의 시대에, 베르가못의 상쾌하고 깨끗한 향은 더러운 공기를 정화하고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치유의 방패’로 여겨졌다.

무더운 여름,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청량제이자, 보이지 않는 위협에 맞서는 위생적 부적이었던 셈이다.


베르가못의 이야기는 세상을 단순하게 범주화하려는 우리의 오랜 습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종종 사람이나 사물을 ‘레몬’ 아니면 ‘오렌지’라는 식의 뻔한 꼬리표로 분류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복잡성을 놓쳐버린다.

특히 시각 정보가 부재한 세상에서, 존재의 정체성은 하나의 감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소리, 향기, 질감, 온도가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내는 다층적인 인상, 즉 고유의 ‘후각적 시그니처(Olfactory Signature)’와도 같다.

베르가못의 향은 이처럼 단일한 규정을 거부하고, 여러 경계에 걸쳐 있는 역치성(Liminality)의 아름다움을 웅변한다.


우리가 만나는 세상의 수많은 ‘레몬’들도 사실은 저마다의 꽃과 허브 향을 숨기고 있는 ‘베르가못’ 일지 모른다.

그 숨겨진 향을 발견해 내는 것은 타인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만 가능하다.

단순함 속에서 복잡함을,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

그것이 바로 600년 넘게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농부들이 키워 온 작은 초록색 과일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향기로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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