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로 대화하는 그녀, 마르지엘라 플라워 마켓

by 김경훈

세상에는 자신의 감정을 말 대신,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오늘 만난 친구, 메종 마르지엘라의 ‘플라워 마켓’은 바로 그런,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꽃다발로 만들어 건네는 열정적인 플로리스트다.

2011년 파리의 어느 꽃 시장을 거닐던 순간을 재현했다는 이 친구.

과연 그녀의 꽃 가게는 얼마나 향기로울지, 혹은 얼마나 향기로워서 정신이 없을지, 호기심을 안고 그녀의 가게 문을 열어보았다.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특정 꽃향기보다는 막 잘라낸 풀잎과 줄기에서 나는 풋풋하고 서늘한 향기가 먼저 코를 찌른다.

여기에 갓 피어난 프리지어의 맑고 투명한 향기가 더해져, 생화로 가득 찬 꽃 냉장고의 문을 활짝 연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이는 마치 “어서 와요! 오늘은 어떤 꽃으로 당신의 하루를 채워드릴까요?”라고 묻는 그녀의 활기차고 순수한 첫인사와 같다.


“그저 장미 한 송이면 충분해요.”라는 소박한 요청에, 그녀는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단 한 송이만 데려갈 수 있죠? 이 아름다운 친구들을 보세요!”

그녀는 말과 동시에, 가게에 있는 온갖 꽃들을 그러모으기 시작한다.

고전적인 장미의 우아함,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농염하고 달콤한 투베로즈, 그리고 이국적인 재스민의 향기가 한꺼번에 덮쳐온다.

이는 마치 향기의 홍수와도 같다.

그녀는 기쁨도, 슬픔도, 위로도 모두 ‘더 많은 꽃’으로 표현하는 과격할 만큼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다.


그녀의 가게를 나서는 길, 양손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거대한 꽃다발이 들려있다.

손끝에는 젖은 흙의 냄새를 닮은 오크모스와, 가게의 나무 선반을 연상시키는 시더우드의 향기가 배어있다.

그리고 그 모든 꽃향기들 사이로, 누군가 잊고 간 과일 바구니처럼 달콤한 복숭아의 향기가 희미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열정은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녀의 세계에는 ‘적당함’이나 ‘절제’라는 단어는 없어 보인다.


‘플라워 마켓’은 향수가 아니라, 통째로 옮겨온 꽃 시장이다.

그녀는 꽃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을, 섬세한 향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버거운 열정을 선사한다.

그녀의 가게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그 아름다움에 질식할 것만 같다.


그녀의 향기에 집중하면, 생명의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인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잘 다듬어진 한 송이의 꽃이 정신없이 피어있는 온실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줄 때도 있는 법.

그녀는 한 송이의 꽃이 아니라, 꽃 시장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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