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서 4년, 남들은 내가 노는 줄 알았지

by 김경훈

석사과정 첫해, 주변 동료들이 앞다투어 논문을 쏟아낼 때, 온전히 1년을 스크린 리더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데 쏟아부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전무했다.

“요즘 연구는 잘 되어가?”라는 안부 인사는 매번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비수가 되어 꽂혔다.

외부에서 보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저 멈춰있는 시간.

스스로도 조급함과 무력감에 휩싸여, 이 길이 맞는지 수없이 되물었던 그 시절.

하지만 바로 그 ‘보이지 않는 1년’이 없었다면, 이후의 모든 연구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고통스러웠던 ‘뿌리 내리기’의 시간은 중국의 ‘모소(Moso)’ 대나무에 대한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씨앗을 심고 4년 동안 아무리 물을 주어도, 싹 하나 보이지 않는 나무.

하지만 농부는 포기하지 않는다.

마침내 5년째가 되는 해, 땅속에서는 이미 수백 평방미터에 걸쳐 뿌리가 뻗어 나간 뒤였고, 그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은 대나무 순들은 불과 6주 만에 15미터가 넘게 자라 거대한 숲을 이룬다.


이 이야기는 종종 ‘믿고 기다리면 성공한다’는 식의 단순한 교훈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비판적 연구자의 시선으로 보면, 핵심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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