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머리로 보지, 다리로 봅니까?

by 김경훈

장애인 딸의 입학시험을 허락해 달라며 고개를 숙인 아버지에게, 한 미국인 신부가 사이다 같은 명언을 날렸다.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봅니까?”

이 얼마나 통쾌하고 당연한 말인가!

평생 목발에 의지했던 고(故) 장영희 교수가 서강대학교 교문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를 꿰뚫어 본 브루닉 신부의 그 시선 덕분이었다.


※ (자랑스러운 우리 대학 선배님이시며, 인생 롤모델 중 한 분이시다. 핫핫)


이 ‘껍데기와 알맹이’의 문제는 얼마 전 애견용품점에서도 벌어졌다.

탱고의 새 장난감을 사기 위해, 보보가 두 개의 장난감을 설명했다.

하나는 북유럽 감성의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 ‘명품 삑삑이’. 다른 하나는 모양도 색깔도 정체불명인 울퉁불퉁한 ‘못난이 고무공’.

당연히 전자에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보보의 선택은 후자였다.

결과는? 집에 오자마자 탱고는 못난이 고무공에 완전히 빠져, 명품 삑삑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다.

녀석에게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입에 물었을 때의 질감과 소리의 경박함, 즉 장난감의 ‘알맹이’였던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모교 선배, 장영희 교수는 자신의 글 ‘내가 살아보니까’를 통해 바로 이 진실을 이야기한다.

남들은 명품 핸드백을 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시간 낭비이며, 친절과 사랑이야말로 밑지지 않는 최고의 투자라고.

그녀의 글은 현상학적 환원(Phenomenological Reduction)처럼, 세상의 겉치레와 편견을 걷어내고 삶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만을 남긴다.


장영희 교수의 삶과 탱고의 선택, 그리고 브루닉 신부의 일갈은 모두 같은 곳을 향한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가 온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인 교훈을 넘어, 한 개인이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실존주의적(Existential) 태도이기도 하다.

남들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자, 이제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인가, 아니면 당신의 삶을 채우는 알맹이인가?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을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을 쌓으며 진정으로 남에게 덕을 쌓는 것.

장영희 교수가 말했듯, 결국 그것이 진짜 ‘내 실속’을 차리는 길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남들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에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더라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의 마음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더라"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서)



비하인드 스토리


얼마 전, 보보가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건넸다.

포장 상태는… 처참했다.

신문지에 대충 둘둘 말아 노란 고무줄로 묶어놓은 모양새였다.

나는 ‘껍데기’를 보고 살짝 실망했다.

‘알맹이’를 중시해야 한다는 숭고한 글을 써놓고도, 본능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신문지를 펼치는 순간, 그 안에는 내가 몇 달 전부터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그것이!!! 들어있었다.

그렇다.

때로 최고의 ‘알맹이’는 최악의 ‘껍데기’ 속에 숨어있는 법이다.

그날 밤, 나는 신문지에 대고 반성문을 썼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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