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삼킨 피자: 존 슈내터와 브랜드의 비극

by 김경훈


1.


자본주의 시장에서 창업자의 얼굴과 이름은 가장 강력한 품질 보증서다.

그것은 단순한 상표를 넘어, 제품에 인격과 서사를 부여하는 하나의 신화가 된다.

소비자는 피자를 사는 것이 아니라, '파파(Papa)'라는 아버지가 정성껏 만든다는 '믿음'을 구매한다.

존 슈내터는 이 브랜드 페르소나(Persona) 전략의 명민한 설계자이자, 그 페르소나에 의해 제물이 된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의 시작은 완벽한 아메리칸드림의 각본을 따른다.

아끼던 자동차 카마로를 팔아 마련한 종잣돈, 아버지의 선술집 한구석에서 시작된 작은 피자 가게.

이 소박한 출발은 '진정성'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 그의 얼굴이 새겨진 피자 박스는 곧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파파존스의 성공은 맛의 성공인 동시에, '존 슈내터'라는 인물의 성공이었다.

브랜드와 창업자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로 성장했다.

이 강력한 일체감은 그의 왕국을 건설한 힘이었지만, 동시에 왕좌에서 그를 끌어내릴 아킬레스건이기도 했다.



2.


모든 비극에는 몰락의 전조가 있다.

슈내터의 몰락은 그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NFL 선수들의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는 그의 발언은 사회적 논쟁의 용광로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파파'라는 따뜻한 페르소나와 '인종차별'이라는 차가운 단어 사이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는 대중의 외면을 불러왔다.

그가 만든 거대한 유기체, '파파존스'라는 기업은 생존 본능을 발휘했다.

독에 감염된 신체 부위를 절단하듯, 시스템은 자신의 창조주를 축출하기 시작했다.


이 비극의 가장 기괴하고도 인간적인 장면은 그가 쫓겨난 뒤에 연출된다.

슈내터는 한 달 동안 40판의 파파존스 피자를 먹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예전 맛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단순한 음식 비평이 아니다.

왕국에서 쫓겨난 리어왕이 황야를 헤매는 것과 같은 처절한 자기 파괴적 의식이다.

그는 자신의 창조물을 끊임없이 삼키면서, 그것이 자신 없이는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확인하려 한다.

40판의 피자는 그의 뱃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의 텅 빈 왕좌를 채우는 슬픔과 분노의 제물이었다.



3.



슈내터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몰아내기 위한 음모였다고 주장하며, "심판의 날은 올 것"이라 말한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회사를 동일시하는 '창업자 증후군(Founder's Syndrome)'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의 인식론(Epistemology) 안에서 회사에 대한 비판은 곧 자신에 대한 공격이며, 자신의 부재는 곧 회사의 몰락과 동의어다.

그는 스티브 잡스처럼 화려한 복귀를 꿈꾸지만, 둘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잡스는 경영 전략의 실패로 쫓겨났지만, 슈내터는 사회적 가치와 인격의 문제로 밀려났다.

애플은 잡스의 '비전'이 필요했지만, 파파존스는 슈내터라는 '리스크'를 제거해야만 했다.


결국 존 슈내터의 이야기는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잔인한 신화 중 하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그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 역으로 창조주를 삼켜버리는 역설.

그의 얼굴은 로고에서 지워졌지만, '파파'라는 이름은 여전히 남아 그를 괴롭히는 망령이 되었다.

아버지를 잃은 피자는 계속 팔려나가고, 아버지는 자신이 만든 피자를 먹으며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

이보다 더 완벽한 그리스 비극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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