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집 앞 동화천을 따라 보보와 함께 달리는 것.
이 얼마나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인가.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그녀는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이쪽은 거북이처럼 기어간다.
발바닥은 찢어질 것 같고, 아킬레스건은 비명을 지른다.
더 힘든 것은 따로 있다.
1분마다 들려오는 보보의 걱정 어린 질문.
“자기야, 무릎 괜찮아? 발바닥은? 안 아파?”
미안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사실 한때는 마라톤이 취미였다.
10킬로를 50분 안에 주파하던, 날렵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킬로그램의 세월이 흐른 지금, 뇌는 여전히 그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는데 몸은 처절하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외친다.
이것은 일종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다.
머릿속의 ‘나’와 현실의 ‘몸’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격렬하게 다투는 상태.
최근 들어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땀’이다.
살이 찌고 나서야, 땀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불편한 존재인지 처음 알았다.
예전에는 땀이 땀으로 나지 않고 눈물만 나서 불편한 줄 몰랐는데, 이제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린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는 돌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것이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연구자의 삶이란, 끝없는 정신의 마라톤이다.
그 과정에서 육체는 종종 소외된다.
걷고 뛰는 행위는 정신과 육체 사이의 무너진 균형을 필사적으로 다시 맞추려는 일종의 실존적 균형 잡기(Existential Balancing)인 셈이다.
보보가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그 뒤를 탱고의 하네스에 의지해 따라 뛴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이상하게도 행복하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용기를 주는 보보에게 너무 고맙다.
비하인드 스토리
컨디션이 유독 좋았다.
‘왕년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보보에게 마지막 100미터 직선 주로에서 경주를 제안했다.
“나 아직 안 죽었어!”
나는 비장하게 스타트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출발!’을 외치기도 전에, 옆에 있던 탱고가 이 상황을 ‘긴급상황! 주인이 갑자기 미쳤다!’로 오해한 모양이다.
녀석은 온 힘을 다해 앞으로 튀어 나갔고, 나는 하네스에 이끌려 공중부양을 하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렇다. 나의 찬란했던 과거는 탱고의 과잉 충성 앞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그날, 나와 보보는 경주 대신 약국에 들러야 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