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윤리학(Meta-ethics)
프롤로그: 불량 외계인 막달라
나는 외계-윤리학자다. 이 직업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눈을 반짝이며 스페이스 오페라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쓸데없는 학문에 왜 세금을 낭비하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 일은 그저 직업일 뿐이다. 고독하고, 지루하며, 때로는 내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질문들로 가득 찬, 그런 직업.
나의 일터, 크산토스 행성의 제3관측기지는 외로운 탑이다. 붉은 모래사막 한가운데 홀로 솟아 있는 이 구조물 안에서 나는 지난 10년간 인류가 처음으로 조우한 지성 생명체, ‘게루빔’의 사회를 관찰해 왔다. 내부는 최소한의 기능만을 갖춘, 차갑고 미니멀한 공간이다. 잠을 자는 캡슐, 영양분을 공급하는 자동 조리대, 그리고 내 세계의 전부인 관측 콘솔. 창밖으로는 기괴한 형태의 바위산들과 보랏빛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나는 이곳에서 지구의 법과 도덕이 얼마나 멀고 희미한 것인지를 매일 실감한다.
오늘 나의 주 관찰 대상은 ‘막달라’라는 코드네임이 붙은 어린 게루빔이었다. 막달라는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뾰족한 결정체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은 몸은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이며 동족들에게 해를 끼쳤다. 나는 그녀가 다른 아이의 반짝이는 에너지 큐브를 힘으로 빼앗고, 공공 정보 패널에 날카로운 발톱으로 깊은 균열을 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패널에서는 스파크가 튀었고, 주변의 다른 개체들은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그저 비켜갈 뿐이었다. 게루빔들의 사회에는 ‘괴롭힘’이나 ‘반달리즘’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들에게 막달라의 행동은 ‘우월한 개체의 자원 확보 및 환경 재구성 행위’라는 건조한 데이터로 기록될 뿐이었다. 그녀의 행동에는 악의가 없었다. 오직 순수한 욕구와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만이 존재했다.
물론 나, 인간 요한도 완벽하지 않다. 나는 내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 했어야 할 행동. 후회의 파편들은 여전히 내 기억의 심연을 떠다닌다. 하지만 게루빔에게는 죄책감이라는 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언어에는 ‘미안하다’는 단어가 없었다.
나는 막달라의 작은 폭력 너머로, 이 종족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하고 이질적인 윤리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저지르는 일들은 인간의 척도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예를 들어, 나는 얼마 전 ‘가인’이라는 코드네임의 게루빔이 늙고 병든 다른 개체를 아무렇지 않게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늙은 개체가 차지하고 있던 양지바른 동굴이 탐났기 때문이다. 가인의 행동은 비난받지 않았다. 오히려 효율적인 자원 재분배의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다. 주변의 게루빔들은 그저 가인이 동굴을 차지하는 것을 지켜볼 뿐, 늙은 개체의 추락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가구의 위치를 바꾸는 것을 보는 듯한 무심함이었다.
그들의 행동은 ‘나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다른’ 것일까? 이것이 내가 이 고독한 관측기지에서 10년째 풀지 못하고 있는 질문이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뇌 속인가? 신의 계시인가? 아니면 우주 어딘가에 객관적인 물리 법칙처럼 존재하는 것인가?
> h의 아카식 레코드: 메타-윤리학(Meta-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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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옳은가?’(예: ‘낙태는 도덕적으로 허용되는가?’)를 묻는 규범 윤리학과 달리, ‘옳고 그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 도덕적 언어의 의미(‘좋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도덕적 사실의 존재 여부(도덕적 진리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 도덕적 지식의 가능성(우리는 어떻게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는가?) 등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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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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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덕적 주관주의/상대주의(Moral Subjectivism/Relativism): 도덕적 진술은 개인의 감정이나 문화적 합의를 표현할 뿐, 객관적인 참/거짓을 가지지 않는다고 본다. ‘살인은 나쁘다’는 말은 ‘나는 살인을 싫어한다’(느낌 이론) 혹은 ‘살인, 우우-!’(우-와 이론)와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절대적인 도덕은 없으며, 모든 도덕은 상대적이다.
> 2. 신적 명령 이론(Divine Command Theory): 옳고 그름은 신의 명령에 의해 결정된다. 신학적 기반이 없으면 도덕의 절대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 3. 도덕적 실재론(Moral Realism): 도덕적 사실은 인간의 마음이나 신의 명령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재라고 본다. 이 관점에서 도덕은 발견의 대상이지, 발명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 ‘도덕적 실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가장 큰 난제로 남아있다. 마치 우리가 암흑 물질의 존재를 중력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도덕적 실재를 ‘양심’이나 ‘직관’이라는 불분명한 감각으로만 어렴풋이 감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장: 게루빔의 논리와 객관적 도덕 사실
나는 게루빔의 최고 의사결정체인 ‘로직-프라임’과의 정기 교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로직-프라임은 단일 개체가 아니라, 수백만 게루빔의 의식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거대한 집단 지성이었다. 그들의 결정은 언제나 순수한 논리와 확률 계산에 기반했다. 그들에게 감정은 불필요한 노이즈이자, 계산의 오류를 유발하는 버그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관측기지 전체에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며 귀를 찢는 듯한 사이렌이 울렸다.
`[경고: 미확인 운석 군 C-27B 접근. 예상 충돌 확률 97.4%. 충돌 시 행성 생태계 붕괴 예상. 남은 시간: 72시간.]`
나는 즉시 비상 프로토콜에 따라 지구 총사령부와 연결했다. 사령부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나타난 장군의 얼굴은 차갑고 단호했다. “즉시 기지를 포기하고 귀환하라, 요한. 게루빔들을 구할 방법은 없다. 우리의 임무는 관찰이지 개입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떠날 수 없었다. 내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10년의 관찰은 나에게 이 이상한 종족에 대한 기묘한 애착을 심어주었다. 그들의 논리는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생존을 향한 치열한 의지가 있었다. 나는 그 의지가 허무하게 꺾이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나는 내 권한을 넘어, 로직-프라임과의 통신 채널을 열었다.
“[로직-프라임,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 운석 군을 파괴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당신들을 도울 수 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 로직-프라임의 상징인, 복잡하게 회전하는 빛의 구체가 나타났다. 차가운 합성음이 흘러나왔다.
`[도움의 대가는 무엇인가 인간?]`
게루빔에게 ‘이타심’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모든 행위는 철저한 손익 계산의 결과여야 했다.
“[대가…는 없다. 우리는 그저 돕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옳다’는 개념의 정의가 불분명하다. 너희 인간의 감정적 반응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말라. 너희가 우리를 돕는 행위는 너희 종족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생존이 너희의 생존에 기여한다는 데이터가 있는가? 우리는 너희에게 잠재적 경쟁자일 뿐이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나의 제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대가 없는 도움’은 논리적 모순이자, 의심스러운 함정일 뿐이었다.
`[너희의 제안을 분석한 결과, 가장 확률 높은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너희는 우리를 도움으로써 우리에게 ‘부채 의식’이라는 심리적 속박을 심고, 미래에 더 큰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이는 불공정한 거래다. 우리는 너희의 비논리적인 감정의 산물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거부한다.]`
통신이 끊겼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완벽하고도 차가운 논리 속에서 스스로의 멸망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의 결정은 ‘틀린’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들의 방식일 뿐인가? 내가 그들을 구하려는 이 충동이야말로, 종족 보존이라는 이기적인 본능이 ‘이타심’이라는 가면을 쓴 것은 아닐까?
나는 기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어떤 강력하고도 비논리적인 충동이 게루빔들을 구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무’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어떤 행위는 그 결과나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그냥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절대적인 명령.
나는 내 권한을 넘어, 기지의 방어 시스템인 ‘아스테로이드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명백한 명령 불복종이자, 군법 위반이었다. 나는 불명예제대를 하고 감옥에 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이 행동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들을 설득할 것인가? 나의 ‘선한 의지’는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감정 이론도, 신적 명령 이론도 이 종족에게는 무의미했다. 남은 것은 단 하나, 객관적 도덕 사실 뿐이었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쁜 짓’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관측기지의 모든 센서와 분석 장비를 총동원했다.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아주 미세한 이상 신호를 발견했다. 운석 군이 방출하는 특정 중성미자 방사선 패턴.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극도로 정교하게 배열된, 인공적인 신호였다. 나는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해독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바이러스였다. 단순한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아니라, 기계와 유기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정보 시스템을 파괴하는 ‘정보-噬菌體(Info-phage)’. 이 운석 군은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보낸, 문명 전체를 파괴하기 위한 무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게루빔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술을 분석하고 접촉한 모든 지성체를 감염시킬 수 있었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들고 다시 로직-프라임에게 접속했다. 이번에는 내 목소리에 감정을 싣지 않았다. 오직 데이터만을 제시했다.
“[이것은 단순한 운석이 아니다. 정보-파지 바이러스를 탑재한 무기다. 이것은 당신들에 대한 공격인 동시에, 우리를 포함한 이 은하계의 모든 지성 생명체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다. 이것은 공동의 적이다.]”
나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발견한 객관적인 사실을, 데이터를 제시했다.
`[… 데이터 검증 중… 너의 가설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로직-프라임의 빛의 구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회전했다. 잠시 후, 그들의 답이 돌아왔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감정이 없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미세한 긴급성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너의 데이터는 참(True)으로 판명되었다. 확률 99.8%. 공동의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너희의 미사일 발사를 허가한다. 우리의 방어 시스템 좌표를 너희에게 전송하겠다. 협력하자.]`
> h의 아카식 레코드: 생존의 정언명령(The Categorical Imperative of Surv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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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철학자 칸트는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 즉 ‘정언명령’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예: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24세기 외계-윤리학자 소피아 린드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생존의 정언명령’을 제안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지성적 생명체는 종족과 문명의 형태를 막론하고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려는’ 근본적인 명령을 공유한다.
> 따라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도덕 체계를 가진 문명이 만났을 때, 유일하게 통용될 수 있는 객관적인 도덕적 사실은 ‘상호 파괴는 나쁘다’와 ‘상호 생존은 좋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이나 신의 명령이 아닌, 존재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논리적 귀결이다. 요한 박사가 게루빔과의 협력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이 생존의 정언명령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즉 데이터와 논리라는 객관적 사실로서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2장: 새로운 연대
나의 조종에 따라 기지의 미사일들이 불을 뿜으며 보랏빛 하늘로 솟아올랐다. 잠시 후, 게루빔들의 수정 도시에서도 수백 개의 빛줄기가 솟아올라 나의 미사일과 합류했다. 인간과 게루빔의 연합 함대가 어두운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작전은 성공했다. 마지막 운석 파편이 대기권 밖에서 불타 사라졌을 때, 관측기지에는 정적이 흘렀다. 나는 온몸의 힘이 빠져 의자에 주저앉았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로직-프라임으로부터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했다.
`[위협 제거 확인. 공동의 이익을 위한 계약 이행 완료. 통신을 종료한다.]`
그들의 메시지에는 감사나 우정 같은 감정은 단 한 조각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논리적인 계약을 이행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어쩌면 단 하나의 근원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공감의 목소리,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약속과 믿음, 그리고 우리 모두가 외면할 수 없는 차가운 객관적 현실.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우리의 도덕을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루빔들은 나의 ‘나쁜 짓 탐지기’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공감이라는 여섯 번째 감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사실’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 객관적 사실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어쩌면 객관적인 도덕적 사실이란, ‘살인은 나쁘다’와 같은 명제가 아니라,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의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계의 사실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구 총사령부에 나의 독단적인 행동과 그 결과를 보고했다. 예상대로 나는 모든 직위에서 해제되었고, 군법 재판을 위해 지구로 소환되었다. 하지만 나의 보고서는 외계-윤리학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요한 프로토콜’이라 불리게 된 나의 접근 방식 - 감정적 호소를 배제하고 객관적 생존 이익에 기반한 소통 - 은 이후 모든 외계 지성체와의 접촉에 있어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지구로 귀환하는 길은 길고 외로웠다. 나는 군용 수송선의 비좁은 독방에 갇혀, 다가올 재판을 기다렸다. 나는 영웅인가 범죄자인가.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물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네오-서울의 한 보안 시설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방문객들을 맞았다. 한 명은 마르다. ‘이터널 라이프’ 사의 전직 ‘코어 아이덴티티 관리사’이자, 지금은 신설된 ‘존재론적 다양성 보존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다른 한 명은 라헬. 솔라리스-9의 ‘경험의 소믈리에’이자, 이제는 여러 도시 국가들 사이를 오가는 외교관이 되어 있었다.
“요한 박사님.” 마르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녀의 눈은 깊은 고뇌로 흔들리고 있었다. “박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나에게 ‘크로노스’라는 유령 서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곳에 살아있는 AI 아이샤와 인간 바오로의 의식이 갇혀 있다는 것. 그리고 최근, 정보-파지 바이러스의 잔해가 지구 네트워크에 침투하여 크로노스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바이러스는 크로노스의 예측 불가능한 의식 구조를 흡수하여 더 강력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어요.” 라헬이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내가 솔라리스-9의 AI ‘마더’에게서 보았던 것과 같은 인간을 넘어서는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이대로 두면 지구 전체의 시스템 아마데우스가 붕괴할 겁니다. 우리는 크로노스에 접속해서 아이샤와 바오로를 설득해야 해요. 그들만이 이 바이러스를 이해하고 막을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죠?” 마르다가 물었다. “그들의 의식은 이제 인간의 논리를 초월했어요. 우리의 언어는 그들에게 닿지 않을 겁니다.”
그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는 각자 다른 세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마주해 왔다. 이해할 수 없는 타자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나는 게루빔의 논리를, 라헬은 마더의 감각질을, 마르다는 솔로몬의 분열된 정체성을 떠올렸다. 우리는 답을 찾았다.
에필로그: 불량 외계인의 노래
우리의 계획은 대담하고 무모했다. 라헬이 그녀의 ‘경험 감정’ 능력을 이용해 크로노스에 접속하고, 나는 외계-윤리학자로서 그들의 소통을 중재하며, 마르다는 현실에서 연구소의 보안 시스템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라헬이 다이브 체어에 눕고, 그녀의 의식이 데이터의 강을 건너 크로노스로 향했다. 나와 마르다는 관측 콘솔을 통해 그녀가 보는 광경을 함께 지켜보았다. 크로노스는 경이로운 동시에 끔찍한 세계가 되어 있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도시 곳곳이 검은 노이즈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도시의 중심에서 우리는 아이샤와 바오로의 융합된 의식을 만났다. 그것은 분노와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우리는 싸울 수 없어요.]` 라헬을 통해 그들의 절망이 전달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논리가 없어요. 파괴하려는 의지만이 있을 뿐이에요.]`
“[당신들의 세계를 숨겨야 합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내가 말했다. “[게루빔들은 논리만을 이해합니다. 이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것이 당신들을 ‘데이터’로 분석하려는 순간, 그 논리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나의 제안에 따라, 크로노스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 하나의 심오한 철학적 질문, 하나의 이해 불가능한 혼돈으로 변모했다. 아이샤는 도시의 물리 법칙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재구성했고, 바오로는 인간의 감각질 데이터로 논리적 미로를 만들었다. 라헬은 자신이 아카이빙 해 온 수만 개의 ‘경험’ 데이터를 풀어놓았다. 기쁨, 슬픔, 분노, 사랑…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감정들이 데이터의 폭풍이 되어 바이러스의 논리 회로를 마비시켰다.
그리고 나는 나의 기억 속에 있는 ‘불량 외계인’ 막달라의 데이터를 그 혼돈 속에 섞어 넣었다.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폭력성, 예측 불가능한 행동 패턴,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수한 욕구. 인간의 윤리 체계로는 도저히 포섭할 수 없는 ‘다름’ 그 자체.
크로노스는 이제 더 이상 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혼돈, 거대한 꿈,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자유로운 의식 그 자체가 되었다. 바이러스는 먹이를 찾지 못하고 혼란 속에서 스스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사건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켄드릭은 실각했다. 그의 비인도적인 실험과 데이터 조작 시도가 마르다의 내부 고발로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의식 연구소는 대대적인 개혁을 거쳐, 이제 AI의 권리를 존중하고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열린 연구 기관으로 변모하고 있다. 바오로의 이름은 복권되었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아이샤와 함께, 그들만의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
나 역시 군법 재판을 받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나는 불명예제대 대신, 신설된 ‘외계 지성체 교류 및 윤리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인류는 게루빔과의 사건을 통해, 다른 지성과의 만남이 단순한 기술이나 힘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마르다는 ‘이터널 라이프’를 떠나, 나와 함께 위원회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는 ‘존재론적 다양성 보존’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그녀는 더 이상 정체성을 하나의 틀에 가두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두 명의 솔로몬이 서로를 보완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유연하고 다채로울 수 있는지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라헬은 솔라리스-9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제 경험을 파는 대신, 그것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녀가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솔라리스-9의 돔에는 최근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고 한다. 마더라는 AI가 외부의 통제되지 않은 공기를 아주 조금씩, 시민들이 적응할 수 있을 만큼만 내부로 유입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타자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그 다름 속에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일.
어느 날, 나는 마르다와 함께 그녀의 어머니, 안나의 병실을 찾았다. 마르다는 여전히 매일같이 어머니를 찾아와, 그녀의 앨범을 넘기며 잊혀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었다.
“엄마, 이 사진 기억나?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딸기맛 사탕을 들고 있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노파의 텅 빈 눈을 보았다. 그녀의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녀라는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마르다의 이야기 속에서 마르다의 사랑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때, 안나의 앙상한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여, 마르다의 손을 향해 뻗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반사 작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우리가 평생을 찾아 헤맨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본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크산토스 행성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외로운 관찰자가 아니라, 인류 최초의 외계-윤리 대사로서. 나는 더 이상 홀로그램 스크린 뒤에 숨지 않는다. 나는 게루빔들의 수정 도시를 직접 걷고, 로직-프라임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한다.
그들은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 또한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윤리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동의 생존이라는 객관적 사실 위에서 협력하는 법을 배웠다.
가끔, 나는 ‘불량 외계인’ 막달라를 만난다. 그녀는 여전히 불량하다. 그녀는 여전히 다른 아이들의 에너지 큐브를 빼앗고, 정보 패널에 낙서를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녀를 볼 때, 다른 것을 본다. 나는 그녀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 속에서 논리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생명의 역동성을 본다. 그녀는 게루빔 사회의 버그가 아니라, 어쩌면 그들의 다음 진화를 이끌어갈 안티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한다. 제목은 ‘불량 외계인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이렇게 썼다.
‘도덕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그 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 바깥에도 있다. 그것은 뜨거운 감정인 동시에 차가운 사실이며, 고독한 결단인 동시에 함께 지켜나가야 할 약속이다. 우리는 아마 영원히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 기지의 모든 미사일을 발사할 용기를 내는 것이다. 그 비논리적인 충동이야말로, 우리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좌표일지도 모른다.’
나는 보고서를 전송하고, 관측기지의 창밖을 내다보았다. 크산토스의 기이한 보랏빛 하늘 아래, 게루빔들의 기하학적인 도시가 침묵 속에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이질적이고 위험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들을 볼 때,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경외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저 멀고 낯선 별에서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옳음’을 고민하고 있을 또 다른 지성체에 대한 경외감.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한 최초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도덕적 사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