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말이 없는 편이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존재가 있다.
오늘 만난 친구, 이솝의 ‘테싯(Tacit)’은 바로 그런 과묵한 철학자다.
‘무언의, 암묵적인’이라는 이름처럼, 그는 향기를 통해 하나의 철학적 명제를 제시한다.
과연 이 지적이고도 까다로운 친구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호기심 반 비판 반의 마음으로 그와의 논쟁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논쟁의 서두는 날카로운 질문과 같다.
친근한 인사를 건네는 대신, 톡 쏘는 유자(Yuzu)의 향기가 정신을 번쩍 뜨이게 하며 대화의 시작을 알린다.
이는 마치 “당신은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라고 묻는 듯한, 예리하고도 서늘한 도입부다.
여기에 더해진 바질의 푸릇한 생기와 클로브의 알싸함은 이 대화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본론으로 들어서자, 그는 자신의 핵심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로즈마리, 민트, 펜넬 등 온갖 종류의 허브가 한데 어우러져, 마치 잘 가꿔진 식물원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주장은 명료하다.
인공적인 것은 배제하고, 자연의 가장 순수한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그의 향기는 너무나 ‘자연’ 그 자체여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완벽한 자연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던가?’ 하는 비판적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그는 마치 인간 세계의 복잡함 따위는 초월했다는 듯, 자신만의 푸르고 고요한 세계 속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는다.
논쟁은 뜨거운 결론 없이 조용히 막을 내린다.
그의 마지막 주장은 단단하고도 건조한 시더우드와 베티버의 흙냄새다.
이는 감정적인 화해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이성적인 악수와 같다.
그가 떠나고 난 자리에는 따뜻한 온기 대신, 비 온 뒤의 숲처럼 맑고 깨끗하지만 서늘한 공기만이 남는다.
깊은 대화를 나눈 듯한 지적 포만감과, 끝내 친구가 되지는 못한 듯한 미묘한 거리감이 공존한다.
이솝 테싯은 향수가 아니라 하나의 지적인 태도다.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이성에 말을 걸고,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감각의 순수성에 집중하는 이에게, 그의 이런 태도는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의 완벽한 논리 속에는 인간적인 빈틈이나 따뜻한 혼돈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는 존경할 만한 토론 상대이지만, 함께 술 한잔 기울이고 싶은 친구는 아니다.
테싯은 마음을 위로하기보다, 머리를 깨우는 향기다.
가끔은 정답보다, 따뜻한 농담 한마디가 더 그리울 때도 있는 법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