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찬양하는 그대, 레이지 선데이 모닝

by 김경훈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긴장을 무장해제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만난 친구, 메종 마르지엘라의 ‘레이지 선데이 모닝’은 바로 그런 ‘프로 쉼’ 전문가다.

2003년 피렌체의 어느 일요일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잘 마른 리넨 침대 시트 위에서 눈을 뜨는 순간을 재현했다는 이 친구.

과연 그의 게으름은 얼마나 심오하고 철학적인지, 덩달아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그를 탐구해 보기로 했다.


그와의 만남은 언제나 일요일 아침에 시작된다.

그는 잠에서 막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냄새 대신, 갓 세탁해서 빳빳하게 다림질한 면 시트 같은 알데하이드(Aldehydes)의 향기를 풍긴다.

여기에 잘 익은 서양배의 달콤함과 은방울꽃의 청초함이 더해져, 비현실적으로 깨끗하고 평화로운 아침의 풍경을 완성한다.

이는 마치 ‘가장 이상적인 일요일 아침’을 광고하는 한 편의 CF와 같다.


그와 함께 하루를 보내려 하면, 곧 그의 유일한 재능이자 취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산책을 가자고 해도,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해도, 그는 그저 온화한 미소와 함께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그의 주변에서는 부드러운 아이리스와 깨끗한 장미 향기가 피어오른다.

이는 막 샤워를 마친 뒤의 뽀송뽀송한 살결의 냄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휴식’이라는 상태이기에, 그 어떤 ‘활동’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의 고요한 게으름 앞에서, 온갖 계획들은 힘을 잃고 만다.


결국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나른한 오후의 낮잠에 빠져들고 만다.

그가 남기고 간 잔향은 따뜻한 사람의 체온과 깨끗한 섬유가 뒤섞인 화이트 머스크의 향기다.

‘살냄새’라는 표현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여기에 아주 약간의 패출리가 더해져, 마냥 가볍지만은 않도록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하지만 이마저도 흙냄새라기보다는 깨끗한 방 한쪽에 놓인 작은 화분의 흙처럼, 잘 관리되고 정돈된 느낌이다.


‘레이지 선데이 모닝’은 휴식과 위로의 대가다.

병에 담긴 포근한 안식처이며, 지친 모든 이들을 위한 후각적 처방전이다.

하지만 그의 세계에는 치열한 열정이나, 예측 불가능한 드라마, 혹은 가슴 뛰는 모험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의 이야기는 “일어났고, 쉬었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다.


세상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이에게, ‘레이지 선데이 모닝’은 더없이 편안한 친구다.

하지만 가끔은 이 완벽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눌러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인생이란 끝없는 일요일 아침일 수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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