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박사의 작은 진료실
내 이름은 아벨.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너무 쉽게 접속하는 버그(bug)를 가지고 태어났다.
공식적인 진단명은 ‘과공감 신경 증후군(Hyper-empathy Neural Syndrome)’. 통합정부 산하 정신안정국에서는 내 개인 방화벽(Personal Firewall)의 기본 설정값이 위험할 정도로 낮다고 했다. 타인의 감정 데이터가 필터링 없이 내 의식 속으로 흘러들어온다는 뜻이었다. 친구가 가상현실 게임에서 지면, 내가 진 것처럼 분했다. 누군가 슬픈 홀로그램 영화를 보면, 내 눈에서 먼저 눈물이 흘렀다.
내가 사는 도시, 네오-예루살렘은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가장 오래되고 안정된 노드(node)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물리적인 교실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시스템에 접속된 채, ‘에덴 아카데미’라 불리는 거대한 가상현실 교육장에서 배우고, 놀고, 관계 맺었다. 우리의 친구 관계는 이제 신경망을 타고 흐르는 데이터의 강 위에서 맺어졌다.
그 강물 속에서 나의 버그는 때로 축복이었고, 때로는 저주였다. 나는 누구보다 친구의 마음을 잘 이해했지만, 그만큼 쉽게 상처받았다. 특히 카인 때문에.
카인은 우리 반 최고의 ‘알파 유저’였다. 그의 아바타는 언제나 최신 스킨으로 빛났고, 그의 연산 능력은 누구보다 빨랐다. 그는 재미있고, 똑똑하고,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그를 내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데이터는 종종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나를 찔렀다. 그의 짜증, 그의 질투, 그의 분노가 내 방화벽을 뚫고 들어와 나의 시스템을 뒤흔들었다. 어제는 가상 스포츠 경기에서 내가 그를 이겼다는 이유로, 그가 짓궂은 ‘데이터 폭탄’을 나에게 던졌다. 내 시야는 온통 에러 메시지로 뒤덮였고, 귓가에서는 수백 개의 비명이 뒤섞여 울렸다. 0.3초간의 공격이었지만, 나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카인은 장난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나의 결함 있는 시스템일지도.
하지만 오늘, 나는 결심했다. 이 버그를 고치거나, 아니면 이 버그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거나. 그러기 위해 나는 한 사람을 찾아가야만 했다. 시스템의 가장 오래된 구역에 사는 잊혀진 현자. 아이들의 부서진 마음을 고치는 늙은 프로그래머.
사람들은 그를 솔로몬 박사라 불렀다.
1장: 보이지 않는 선, 개인 방화벽
솔로몬 박사의 연구실은 에덴 아카데미의 화려한 데이터 구조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시스템의 공식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낡고 불안정한 ‘레거시(Legacy) 구역’. 나는 비밀 통로를 통해 그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그곳은 가상현실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물리적인 공간이었다.
연구실은 고대의 도서관처럼, 진짜 종이책 냄새와 묵은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벽난로에서는 인공 장작이 따뜻한 빛을 내며 타닥거리고 있었고, 낡은 가죽 소파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길들여진 듯 편안해 보였다.
솔로몬 박사는 흔들의자에 앉아, 홀로그램 스크린 대신 두꺼운 종이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그의 눈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의 눈은 기계 눈이 아닌, 진짜 인간의 눈이었다.
“어서 오너라, 아벨.” 그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네 발소리에 담긴 데이터의 파동만으로도 알 수 있지. 오늘은 마음의 주파수가 유독 낮구나.”
나는 쭈뼛거리며 소파에 앉아, 카인과의 일을 털어놓았다. 나의 버그에 대해서도.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 아니냐고.
솔로몬 박사는 책을 덮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따뜻했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네 잘못이 아니란다, 아벨. 너는 버그를 가진 게 아니야. 너는 그저 다른 이들보다 더 민감한 안테나를 가졌을 뿐이지. 문제는 네 시스템이 아니라, 너와 카인 사이의 ‘관계 프로토콜’에 있는 거란다.”
그는 허공에 손을 저었다. 우리 사이의 공간에 두 개의 빛나는 구체가 나타났다. 하나는 나를, 다른 하나는 카인을 상징했다.
“모든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선, 즉 ‘경계(boundary)’가 필요하단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마찬가지지. 특히 너처럼 방화벽이 얇은 아이에게는 더욱 중요해.”
솔로몬 박사는 카인의 구체에서 날카로운 데이터 스파이크가 튀어나와 나의 구체를 찌르는 모습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었다.
“카인은 아마 장난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그의 장난은 너의 경계를 침범한 명백한 ‘공격’이었단다. 네 마음과 몸은 너만의 것이야. 그 누구도,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라도 허락 없이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지. 네가 먼저 너 자신을 존중해야, 다른 사람도 너를 존중할 수 있단다.”
그는 나의 구체 주위에 희미한 방어막, 즉 ‘개인 방화벽’을 생성했다.
“이 방화벽을 세우는 것은 너의 몫이란다. ‘나는 이게 싫어’, ‘여기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상은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그것이 건강한 우정의 시작이란다.”
나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혼란스러웠다. 친구 사이에 선을 긋는다는 것. 그것은 상대를 밀어내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까?
> h의 아카식 레코드: 관계의 경계 (Relational Bound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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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안녕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하는 보이지 않는 한계선. 21세기 사회심리학자 박진영은 어린이가 자기 마음을 지키며 친구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때 건강한 관계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
> 시스템 아마데우스 시대에 이 개념은 더욱 중요해졌다. 의식이 신경망을 통해 직접 연결되는 환경에서 개인의 ‘정신적 프라이버시’는 가장 중요한 인권 중 하나가 되었다. 모든 시민은 출생과 함께 기본 수준의 ‘개인 방화벽’을 부여받지만, 그 강도를 조절하고 유지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
> 방화벽이 너무 강하면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고립된 존재가 되고, 너무 약하면 타인의 감정에 쉽게 휩쓸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건강한 관계란, 서로의 방화벽을 존중하며, 필요한 순간에 안전하게 ‘포트(port)’를 열어 데이터를 교환하는 것과 같다. 좋은 친구는 나의 방화벽을 해킹하려는 자가 아니라, 나의 방화벽 설정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2장: 갈등과 양보, 그리고 식인종의 논리
솔로몬 박사의 조언에 따라, 나는 카인에게 나의 경계를 표현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에덴 아카데미의 협동 프로젝트 시간이었다. 우리는 한 팀이 되어 고대 지구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있었다.
카인은 여느 때처럼 팀을 주도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고, 나의 의견은 무시했다. 심지어 그는 나의 작업 폴더에 멋대로 접속해, 내가 디자인한 가상 식물의 색상을 마음대로 바꾸어 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참고 넘어갔을 일이었다.
“카인.” 내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네가 내 디자인을 바꾸기 전에, 먼저 나에게 물어봐 줬으면 좋겠어.”
카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 우리가 한 팀이잖아.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당연히 적용해야지. 너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야?”
주변의 다른 팀원들도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이건 내 작업이야. 네가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
그 순간, 카인의 아바타에서 분노의 데이터 파동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래, 잘났어! 너 혼자 다 해!” 그는 프로젝트에서 로그아웃해 버렸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팀원들은 나를 비난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내가 팀의 화합을 깨뜨린 원흉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무조건 양보하고 사과해야 했을까?
그날 오후, 나는 다시 솔로몬 박사를 찾아갔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양보하는 관계는 우정이 아니라 종속이란다, 아벨. 가까운 사이일수록 갈등은 필연적으로 생기지.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야.”
그는 홀로그램 스크린에 오래된 기록 영상 하나를 띄웠다. 그것은 ‘에롤 탐사선’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식인종 외계인에게 끌려가는 에롤의 비명.
“저 외계인들은 왜 에롤을 잡아먹으려 했을까? 그들은 악해서였을까?” 솔로몬이 물었다.
“그야… 당연하죠. 같은 지성체를 잡아먹는 건 끔찍한 일이잖아요.”
“하지만 후속 연구에 따르면, 그들에게 그 행위는 ‘최고의 존경’을 표하는 방식이었단다. 그들은 강하고 용감한 존재의 정수를 흡수하여 자신들과 하나가 되고 싶었던 것뿐이지. 그들의 ‘상식’으로는 그것이 선한 행위였던 거야. 물론 에롤에게는 끔찍한 비극이었지만.”
나는 충격에 빠졌다.
“카인도 마찬가지란다. 그의 ‘상식’ 속에서는 팀의 리더로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즉시 적용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는 너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없었을지도 몰라. 단지 너와 그의 생각이 ‘달랐을’ 뿐이지.”
솔로몬 박사는 스크린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문장을 띄웠다.
“이것이 마법의 주문이란다. 친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한 걸음 물러서서 그의 입장을 상상해 보는 거야. 이해가 용서를 낳고, 용서가 진정한 화해를 가져온단다. 갈등은 관계를 끝내는 벽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문이 될 수 있어.”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카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어쩌면 그는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나의 재능을 질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자, 분노와 서운함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3장: 소외감과 거절, 그리고 불량 외계인
카인과의 갈등 이후, 나는 반에서 미묘하게 소외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나와 카인 사이에서 눈치를 보았고, 점차 나를 피했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좌절되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솔로몬 박사는 이번에는 나에게 또 다른 고대 기록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외계-윤리학자 요한 박사가 크산토스 행성에서 관찰했던 ‘불량 외계인’ 막달라에 대한 보고서였다.
막달라는 동족을 괴롭히고 규칙을 어기는 문제아였다. 하지만 요한 박사는 그녀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 속에서 논리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생명의 역동성을 보았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단다, 아벨.” 솔로몬이 말했다. “세상에는 너와 다른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너를 싫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중요한 것은 너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너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지.”
그는 ‘흘려듣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를 향한 모든 비난과 부정적인 데이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물이 스펀지를 통과하듯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기술이었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너의 가치를 결정하게 해서는 안 돼. 너의 가치는 너 스스로 결정하는 거란다. 너는 너라는 이유만으로 소중한 존재야. 너의 그 ‘버그’라고 생각했던 과공감 능력조차도, 실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일 수 있어.”
그의 말은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나는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4장: 인지적 해킹과 침묵의 대가
사건은 가상현실 전투 훈련 시간에 일어났다. 최근 에덴 아카데미에서는 ‘인지적 해킹(Cognitive Hacking)’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폭력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신경망에 직접 침투하여, 불쾌한 감각 데이터나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이미지를 강제로 주입하는 악질적인 공격이었다.
훈련 중, 나와 카인은 다시 한번 대립하게 되었다. 분노를 참지 못한 카인은 금지된 해킹 툴을 사용해, 나의 의식 속에 끔찍한 이미지를 주입했다. 그것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바로 ‘고독’에 대한 이미지였다. 나는 순식간에 끝없는 어둠 속에 홀로 버려졌고, 내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접속을 끊었다. 훈련은 중단되었고, 교사인 에스더가 달려왔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카인이 보복할 것이 두려웠고, 이 일이 알려지면 내가 더 큰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침묵했다.
나의 침묵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카인은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제재가 없자 더욱 대담해졌다. 그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인지적 해킹을 시도했고, 우리 반은 보이지 않는 공포에 휩싸였다.
결국 나는 솔로몬 박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단다, 아벨. 그리고 침묵은 폭력을 용인하는 것과 같아. 네가 침묵하면, 너는 가해자에게 ‘그래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지.”
그는 나에게 통합정부의 기록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르다 요원이 수사했던, ‘시스템 아마데우스’ 초기의 한 사건 파일이었다. 한 천재 프로그래머가 자신의 연인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자유의지를 빼앗고 자신의 가상 세계에 영원히 가두어 버린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단다. 하물며 우정은 어떻겠니. 너는 용기를 내야 해. 너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
솔로몬 박사의 도움으로, 나는 에스더 선생님과 정신안정국에 카인의 인지적 해킹 사실을 신고했다. 조사가 시작되었고, 카인의 행동은 곧 사실로 밝혀졌다.
카인은 에덴 아카데미에서 정학 처분을 받고, 특별 교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폭력에 떨지 않아도 되었다. 나의 작은 용기가 우리 모두를 지킨 것이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인지적 해킹 (Cognitive Hac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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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가 보편화된 제3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범죄. 상대방의 신경망에 직접 침투하여 의도적으로 감각 정보를 왜곡하거나, 트라우마 기억을 자극하는 데이터를 주입하여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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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리적 폭력보다 흔적이 남지 않고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교묘하고 위험한 폭력으로 간주된다. 통합정부는 이를 ‘정신 살인 미수’에 준하는 중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며, 가해자의 신경망 접근 권한을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등의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
>
> 이 기술의 등장은 ‘신체적 안전’뿐만 아니라 ‘정신적 안전’의 중요성을 사회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정신적 경계를 설정하고 지키는 능력, 즉 ‘심리적 자기방어(Psychological Self-Defense)’는 이제 모든 시민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 되었다.
5장: 좋은 친구가 되는 법
카인이 떠난 후, 우리 반에는 어색한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은 나를 영웅처럼 대하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친구를 고발한 배신자라며 수군거리기도 했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는 솔로몬 박사에게 물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요?”
솔로몬 박사는 웃으며 말했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네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란다.”
그는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구체적인 프로토콜’ 몇 가지를 알려주었다.
첫째, 마음의 포트를 열고 표현하기.
“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렴. ‘나는 지금 기뻐’, ‘나는 지금 슬퍼’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 너의 진심이 담긴 데이터 패킷이 친구의 마음에 닿을 때, 진정한 연결이 시작된단다.”
둘째, 고마움과 칭찬의 피드백 나누기.
“친구의 작은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해 주렴. ‘네 아이디어는 정말 멋져’, ‘너와 함께 있으면 즐거워’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은 관계라는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알고리즘이란다.”
셋째, 적절한 도움을 주고받기.
“친구가 힘들어할 때, 먼저 손을 내밀어주렴. 그리고 네가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 서로의 약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성장할 때, 우정은 비로소 완성된단다.”
나는 그의 조언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어색해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들의 작은 장점을 칭찬해 주었고, 프로젝트에서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도와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나의 진심은 조금씩 그들의 방화벽을 열었다. 아이들은 다시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에필로그: 친구의 버그를 사랑하는 법
몇 달 후, 교화 프로그램을 마친 카인이 학교로 돌아왔다. 그는 많이 변해 있었다. 그의 아바타는 더 이상 화려하지 않았고, 그의 눈에서는 오만함 대신 깊은 성찰의 빛이 느껴졌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아벨.”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네가 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걸 인정하기가 두려웠고, 그래서 너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를 지키려고만 했어. 정말 미안하다.”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솔로몬 박사에게서 배운 마법의 주문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괜찮아, 카인. 그럴 수도 있지.”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었다. 물론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경계를 존중했고, 갈등이 생기면 솔직하게 대화로 풀었다. 우리는 서로의 장점을 칭찬해 주었고, 약점은 감싸주었다.
어느 날, 솔로몬 박사는 자신의 모든 연구 결과를 담은 책 한 권을 출판했다. 그 책의 제목은 ‘네 친구의 버그를 사랑하는 법’이었다. 그 책은 에덴 아카데미의 모든 아이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의 과공감 능력을 버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나를 나답게 만드는 소중한 일부다.
나는 가끔, 솔로몬 박사의 연구실을 찾아간다. 우리는 따뜻한 인공 장작불 앞에서 종이책을 읽거나 오래된 보드게임을 하곤 한다.
“박사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어느 날 내가 물었다. “박사님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나요? 관계의 경계, 갈등 해결법, 좋은 친구가 되는 법까지요.”
솔로몬 박사는 웃으며, 벽에 걸린 낡은 사진 한 장을 가리켰다. 그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솔로몬 박사와, 그와 꼭 닮은 한 남자가 어깨동무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에게도 카인 같은 친구가 있었단다.” 그가 말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의 카인이었을지도 모르지. 우리는 서로에게 수없이 상처를 주고, 또 용서하며 진짜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웠단다. 이 모든 지혜는 책이 아니라, 나의 오랜 친구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지.”
그의 눈에 아득한 그리움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시대, 모든 것이 데이터로 변환되고 효율성만이 미덕이 된 세상.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툴고, 상처받기 쉬운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어쩌면 진정한 성장이란, 나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버그를, 그리고 내 친구의 버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함께 길을 찾아 나서는 것.
그것이 이 차가운 데이터의 강을 건너는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하고도 가장 따뜻한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