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은색 짐승들의 서식지에 대한 보고서

by 김경훈


1. 사육사


조남은 씨는 자신을 '사육사'라고 생각했다. 그가 돌보는 것은 털과 가죽 대신, 차가운 철망과 닳아빠진 바퀴를 가진 '은색 짐승'들이었다. 해피마트의 쇼핑 카트. 그는 매일 아침, 주차장 한편에 마련된 '우리'에서 녀석들을 꺼내 햇볕에 정렬시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밤새 이슬을 맞은 녀석들의 은빛 몸체가 아침 햇살에 반짝일 때, 그는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모든 카트를 구별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녀석은 유독 왼쪽 앞바퀴에서 끼익, 하고 날카로운 신음을 냈고, 아이들이 앉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가 살짝 금이 간 녀석도 있었다. 손잡이 고무가 너덜너덜해진 녀석은 그가 '노병(老兵)'이라 부르는 이 마트의 터줏대감이었다.


그의 주된 임무는 무리에서 이탈한 녀석들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한때 100원짜리 족쇄가 그들을 우리 안에 묶어두었지만, 세상이 그 최소한의 약속마저 귀찮아한 이후로 녀석들은 자유롭게 도시를 떠돌았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녀석들을 잠시 길들였다가 목적지에 닿으면 가차 없이 내버렸다. 조남은 씨는 그들이 남긴 금속의 고독을 수거하는 사람이었다.



2. 조련사


그의 고요한 일상에 한서리라는 조련사가 나타났다. 고객만족센터의 신입사원인 그녀는 이름처럼 서늘하고 명민한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다른 이들처럼 조남은 씨를 배경의 일부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카트를 대하는 방식이 남다르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는 버려진 카트를 발견하면, 마치 길 잃은 강아지를 대하듯 부드러운 손길로 먼지를 털어주었다. 녀석의 찌그러진 철망을 볼 때는 자신의 무릎을 매만졌고,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를 들을 때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카트와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오후,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던 조남은 씨에게 한서리가 다가왔다.

"아저씨는요, " 그녀가 불쑥 말을 걸었다. "카트랑 되게 친해 보여요."

그는 말없이 담배 연기만 뿜어냈다.

"그냥... 궁금해서요. 왜 그렇게 소중하게 다루시는지."


조남은 씨는 먼 곳을 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공장에서 평생을 일했소. 쇠를 깎고, 자르고, 붙여서 뭔가를 만드는 일이었지. 내가 만든 기계들은 적어도 10년은 버텼어. 튼튼하게, 제 몫을 다하도록 만들었으니까. 근데 요즘 세상은... 모든 게 너무 쉽게 버려져."


그는 담배를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저놈들도 마찬가지야. 누군가 땀 흘려 만들었을 텐데, 고작 몇 시간의 편리를 위해 쓰이다가 길바닥에 나뒹구는 신세지. 꼭 사람 사는 거 같아서... 정이 가는 게지."



3. 서식지 탐사


그날 이후, 한서리는 가끔 그의 '탐사'에 동행했다. 그녀는 조남은 씨의 트럭 조수석에 앉아, 그가 펼쳐 보이는 도시의 또 다른 지도를 보았다.


"저기 버스 정류장 보이지? 저긴 '기다림의 서식지'야."

정류장 광고판 그늘 아래, 카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치 이곳을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처럼.


"빌라촌 골목 저 안쪽은 '망각의 서식지'지. 사람들은 저기서 녀석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려."

카트는 터진 쓰레기봉투와 뒤엉켜, 제 원래의 목적을 잃고 도시의 흉터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탐사는 마트 뒤편의 오래된 다층 주차장 꼭대기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해 질 녘, 붉은 노을이 도시를 물들일 때, 그들은 주차장 맨 꼭대기 층 난간 끝에서 카트 한 대를 발견했다. 도시의 소음이 아득하게 들려오는 그곳에서 카트는 마치 세상을 등진 은둔자처럼 고요하게 서 있었다.


"여긴 '고독의 서식지'야." 조남은 씨가 말했다. "가장 높고, 가장 외로운 곳이지. 여기까지 녀석을 끌고 온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말없이 카트 옆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카트의 찌그러진 철망 위로 마지막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그 순간, 한서리는 깨달았다. 조남은 씨가 카트에서 보는 것은 버려진 사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이었다. 어쩌면 그건,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힘들지 않으세요?" 한서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매일 이렇게 버려진 것들을 마주하는 거요."


조남은 씨는 카트 손잡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힘들지. 그래도 누군가는 기억해 줘야지. 이놈들도 한때는 반짝였고, 쓸모 있었고, 누군가의 수고를 덜어줬다는 걸 말이야. 그냥... 존중을 해주고 싶은 게지. 녀석들이 겪어낸 여정에 대한."



4. 귀환


그들은 '고독의 서식지'에서 발견한 카트를 끌고 주차장을 내려왔다. 트럭에 싣는 대신, 둘은 나란히 카트를 밀며 마트까지 걸었다. 삐걱이는 바퀴 소리가 해 저문 도시의 골목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것은 장례 행렬처럼 경건했고, 개선 행진처럼 꿋꿋했다.


마트에 도착해, 조남은 씨가 녀석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었다. 그러자 한서리가 다가와 마른걸레로 녀석의 젖은 몸을 닦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아주 오랫동안 녀석을 닦고, 조이고, 매만졌다.


모든 정비를 마친 카트를 조남은 씨가 '우리'의 맨 앞줄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한서리가 옆의 다른 카트를 끌어와 그 옆에 나란히 세웠다. 그녀는 두 카트의 앞바퀴가 정확히 일직선이 되도록 세심하게 각도를 맞추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말끔하게 정렬된 은색 짐승들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녀석들은 내일 아침이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의 고독한 서식지를 찾아 도시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조남은 씨는 또다시 그들의 뒤를 쫓을 것이다.


그것은 끝나지 않을 순환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한서리는 그 순환이 더 이상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버려진 것들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는 늙은 사육사와, 그를 이해하기 시작한 젊은 조련사가 함께 서 있었다. 그들의 발치에서 은색 짐승들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무말] 살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