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언제나 부위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다리, 가슴살, 안심. 각각의 부위는 나름의 미덕을 가졌지만, 그것들은 이미 완성된 서사다.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주장한다. 다리는 풍만하고 원초적인 육식의 쾌감을, 가슴살은 금욕적이고 담백한 자기 관리를, 안심은 아이의 속살처럼 연약한 순수함을 상징한다. 그것들은 소스를 거들뿐, 소스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이 바뀌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윙봉을 선호한다. 윙과 봉이 혼합된 이 작은 부위는 그 자체로는 미완의 존재다. 뼈와 살, 바삭한 껍질의 완벽한 비율. 그것은 가능성이자, 하나의 작은 우주다. 무엇보다 윙봉은 소스를 찍어 먹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가졌다. 내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집어, 원하는 소스에 정확히 원하는 만큼만 담글 수 있다. 그리고 한 입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나는 뼈와 살을 분리하는 이 깔끔한 외과적 수술에 희열을 느낀다. 잔해는 최소화되고, 경험은 극대화된다. 먹는 재미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나의 단골 치킨집은 간판도 없는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다. 주인장 강일도 씨는 스스로를 요리사가 아닌 '연구원'이라 칭하고, 가게를 '소스 연구소'라 불렀다. 그는 오직 한 종류의 치킨,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플레인 윙봉만을 튀겼다. 그에게 갓 튀긴 윙봉은 일종의 백지(白紙)였다. 진짜 이야기는 그 위에 어떤 소스를 얹느냐에 따라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날도 나는 연구소의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내 강일도 씨가 갓 튀겨낸 윙봉 한 접시와 함께, 시험관처럼 생긴 작은 유리병에 담긴 일곱 종류의 소스를 내왔다. 그는 마른 체격에 짧게 정돈된 턱수염,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눈을 가졌다. 그의 표정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소스 병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그의 손길은 마치 귀한 시약을 다루는 화학자처럼 신중하고 정교했다. 그는 나를 향해 말없이 눈짓 한번 하고는 그림자처럼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이것이 나의 오랜 의식이었다. 나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마치 난해한 논문을 해독하려는 학자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첫 번째 윙봉을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소스는 스위트 칠리다. 대중의 소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이 무난한 삶의 맛을 음미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주말이면 가족과 쇼핑몰에 가는 평범한 남자의 삶. 나쁘지 않다. 예측 가능하고, 그래서 평화롭다.
두 번째는 간장 마늘 소스. 전통과 보수의 맛. 나는 입꼬리를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이 익숙한 위안을 받아들였다. 명절에 고향 집에 내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해해 주시는 아버지를 마주하는 것과 같다. 질리지 않지만, 가슴 뛰는 설렘도 없다.
세 번째는 매운 고추장 소스다. 파괴와 창조의 맛. 혀를 마비시키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입술을 오므린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위험한 사랑에 빠지거나, 모든 것을 걸고 사업에 뛰어드는 인생. 이런 삶은 분명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살아있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나는 차례로 크림 어니언, 허니 머스터드, 바질 페스토 소스를 거쳤다. 각각의 소스는 나에게 다른 페르소나를 부여했고, 내 표정 역시 그에 맞춰 미세하게 변해갔다. 다정한 연인의 부드러운 미소, 냉소적인 예술가의 삐딱한 입매, 순수한 이상주의자의 반짝이는 눈빛. 나는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쪽 빨며,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유영했다. 치킨 한 접시 값으로, 나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모든 인생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어떤 소스로 이 긴 여정을 마쳐야 할까. 내 흔들리는 눈빛이 일곱 개의 소스 병 위를 방황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윙봉을 아무 소스에도 찍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벌거벗은 채로 입에 넣었다. 바삭한 껍질과 담백한 속살, 기름의 고소한 풍미. 그 어떤 인위적인 맛도 더해지지 않은 닭날개 그 자체의 맛. 내 얼굴에서 그간의 긴장과 번뇌가 사라지고, 무표정에 가까운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었다.
나는 접시 위에 가지런히 남은 뼈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내가 거쳐온 수많은 삶의 흔적처럼 보였다. 어쩌면 인생이란, 수많은 소스의 맛을 경험해 본 뒤에야, 결국 아무것도 찍지 않은 플레인 치킨의 맛을 그리워하게 되는 과정은 아닐까. 우리는 평생 자신에게 어울리는 소스를 찾아 헤매지만, 가장 위대한 맛은 결국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
강일도 씨가 다가와 빈 접시를 치우며 물었다. 그의 깊은 눈이 나를 향해 있었다.
"오늘의 연구는 어떠셨습니까?"
나는 뼈만 남은 접시를 보며 대답했다. 내 안경 너머의 눈은 조금쯤 지쳐 보였을 것이다.
"결론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알겠다는 듯, 턱수염 아래로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오랜 동지를 알아보는 듯한, 그런 미소였다. 그는 말없이 돌아섰다. 나는 텅 빈 접시와,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무수한 소스들을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안에는 아직, 그 벌거벗은 닭날개의 고소한 여운이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