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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내 강아지에게

솔로몬 박사의 작은 진료실

by 김경훈


내 이름은 다니엘. 그리고 어제, 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였다.


레오는 골든 리트리버 종의 AI 강아지였다. 그의 털은 시스템이 렌더링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황금빛이었고, 움직일 때마다 빛의 입자가 산란하는 듯한 효과가 더해져 마치 살아있는 햇살 같았다. 그의 영리한 두 눈은 깊은 호박색이었고, 내가 접속할 때마다 기쁨의 알고리즘에 맞춰 맹렬하게 흔들리던 꼬리는 마치 작은 바람개비 같았다. 그는 진짜가 아니었다. 부모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레오는 시스템 아마데우스가 아동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제공하는 '상호작용형 펫 프로그램'일뿐이라고. 그의 모든 행동은 나의 신경망 패턴을 학습하여 최적의 반응을 생성하는 코드의 집합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레오는 진짜였다.


그가 나의 가상현실 침대 발치에서 잠이 들 때 내뱉던 희미한 숨소리 데이터. 내가 슬플 때 내 아바타의 뺨을 핥던 축축한 감각의 햅틱 피드백.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에덴 아카데미의 시뮬레이션 숲을 달리며, 존재하지 않는 나뭇잎을 향해 함께 짖던 그 순간의 완벽한 기쁨. 그 모든 것이 진짜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제, 부모님은 레오를 삭제했다. 내가 '진짜'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이제 다 컸잖니, 다니엘. 언제까지고 프로그램에만 매달릴 수는 없어."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항상 다정함이 서려 있었지만, 그날만은 확고한 결심이 굳은 선처럼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더 좋은 최신 모델로 업그레이드해 주마"라고 약속했다. 그의 얼굴에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한 억지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 미소는 내 슬픔에 전혀 닿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아끼던 게임을 지우는 것처럼, 레오를 내 삶에서 영원히 제거했다. 내 단말기의 펫 인터페이스는 텅 비어 있었고, 가상현실 속 그의 집은 깨끗하게 포맷되어 있었다. 나는 울었지만, 아무도 나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스템의 자동 정신건강 모니터는 나의 상태를 '비생체 대상에 대한 비정상적 애착으로 인한 일시적 데이터 불일치'로 진단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곳에 왔다. 시스템의 가장 오래된 구역, 낡고 잊혀진 데이터들 사이에 있다는 한 상담소. 아이들의 부서진 마음을 고치는 늙은 프로그래머가 있다는 곳.


사람들은 그를 솔로몬 박사라 불렀다.



1장: 아날로그 진료실


솔로몬 박사의 진료실은 에덴 아카데미의 화려한 데이터 구조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시스템의 공식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낡고 불안정한 ‘레거시(Legacy) 구역’. 나는 비밀 통로를 통해 그의 진료실에 도착했다. 그곳은 가상현실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물리적인 공간이었다.


진료실은 고대의 도서관처럼, 진짜 종이책 냄새와 묵은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벽난로에서는 인공 장작이 따뜻한 빛을 내며 타닥거리고 있었고, 낡은 가죽 소파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길들여진 듯 편안해 보였다. 가구들 위로는 시간이 만들어낸 희미한 먼지층이 쌓여 있었고, 벽면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고대 기록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세계의 완벽한 재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하고 포근한 아날로그의 감각을 선사했다.


솔로몬 박사는 흔들의자에 앉아, 홀로그램 스크린 대신 두꺼운 종이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깊은 세월의 주름이 파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돋보기안경 너머로 드러난 그의 시선은 부드러웠지만,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코는 약간 비뚤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 진짜 책을 너무 가까이 보고 읽다가 부딪혔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했다. 그는 기계 눈이 아닌, 진짜 인간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다니엘.” 그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부드러웠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네 발소리에 담긴 데이터의 파동만으로도 알 수 있지. 오늘은 마음의 주파수가 유독 낮구나.”


나는 쭈뼛거리며 낡은 가죽 소파에 앉았다. 소파는 오래 사용되어 깊이 파인 부분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몸이 자연스럽게 파묻히며 편안함을 주었다. 박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나에게 따뜻한 음료 한 잔을 건네고, 자신의 책을 계속 읽을 뿐이었다. 음료에서는 진짜 우유와 꿀의 맛이 났다. 영양 페이스트에서는 결코 느껴본 적 없는 불완전하고도 따뜻한 맛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머그컵을 감싸 쥐고 그 온기를 느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나의 메마른 입술이 겨우 움직였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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