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프롤로그
내 이름은 아르키메데스. 나는 사물들의 침묵을 듣는 일을 한다.
공식적인 직함은 크로노스 시(市) 소속 ‘온톨로지컬 트러블슈터(Ontological Troubleshooter)’. 나의 임무는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완벽한 논리 회로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물들 사이의 미묘한 불협화음을 찾아내고 조율하는 것이다. 도시의 중앙 AI는 그것을 ‘객체 간 관계성 오류’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사물들의 말다툼’이라고 부른다.
내가 사는 도시 크로노스는 살아있는 데이터의 강이다. 이곳의 건물들은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시민들의 필요와 감정에 따라 실시간으로 형태를 바꾸는 나노봇의 군집이다. 도로는 흐르고, 공원은 피어났다가 사라지며, 모든 것이 영원한 생성의 과정 속에 있다. 우리는 변화 그 자체를 집으로 삼고 살아간다.
나의 작업실은 도시의 이런 성격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도시의 가장 오래되고 안정된 ‘닻(Anchor)’ 구역에 위치한 내 작업실은 온갖 고대 유물과 부품들로 가득 찬, 혼돈의 박물관이었다. 벽에는 ‘대정화’ 이전 시대의 톱니바퀴와 진공관들이 예술 작품처럼 걸려 있었고, 바닥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 장치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언제나 차가운 금속 냄새와 뜨거운 납땜 연기, 그리고 오래된 기계기름의 향이 뒤섞여 있었다. 이 예측 불가능한 혼돈 속에서만 나는 비로소 평온을 느꼈다.
나는 인간보다 사물과 더 쉽게 소통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너무 복잡하고, 그들의 언어는 종종 거짓을 말했지만, 사물들은 언제나 정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본질과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했다.
오늘 아침, 내 커피포트는 작동을 거부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녀석이었다. 시스템 진단 결과는 ‘이상 없음’. 모든 회로는 정상이었고, 에너지 공급도 완벽했다. 하지만 녀석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나의 특수한 신경 인터페이스를 통해 녀석의 ‘존재론적 상태’에 접속했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녀석의 불만을.
`[긴장. 부조화. 저 컵은… 틀렸어.]`
나는 눈을 떴다. 커피포트 옆에는 내가 어제 새로 가져온 머그컵이 놓여 있었다. 21세기 스타일을 복제한 세라믹 컵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컵을 들어 유심히 살폈다. 완벽한 형태, 매끄러운 표면. 그때, 내 손끝에서 미세한 균열이 느껴졌다. 유약 아래에 숨겨진,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0.01mm의 흠집.
커피포트는 완벽한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흐트러짐 없는 미니멀리즘의 산물이었다. 그의 관점에서 이 흠집 난 컵은 자신의 완벽성을 모독하는 불쾌한 존재였던 것이다. 둘의 관계는 적대적이었다.
나는 낡은 나무 컵을 대신 가져다 놓았다. 표면은 거칠고, 모양은 비대칭이었지만, 오랜 세월을 통해 자연스러운 형태를 갖춘 컵이었다. 커피포트의 조용한 불만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녀석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뜨거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나는 이 도시의 모든 사물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듣고, 그들의 관계를 중재했다. 하지만 최근, 도시 전체에서 더 크고 위험한 불협화음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사물들이 단순한 말다툼을 넘어, 거대한 침묵의 파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도시의 심장이 멈춰 섰다.
1장: 멈춰버린 심장
사건은 도시의 대동맥, ‘중앙 에너지 도관(Central Energy Conduit)’에서 발생했다. 도시 전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이 거대한 플라스마 파이프라인이 아무런 예고 없이 작동을 멈춘 것이다. 모든 진단 시스템은 ‘이상 없음’이라는 메시지만을 반복했다. 물리적인 손상도, 소프트웨어의 버그도 없었다. 하지만 도관은 마치 죽은 것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도시의 ‘코어 키퍼’인 드보라가 나를 긴급 호출했다. 그녀는 크로노스의 안정과 항상성을 지키는 책임자였다. 그녀의 아바타는 언제나처럼 단정한 은회색 정장 차림이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우려와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나의 방식을 못마땅해했지만, 이런 ‘비논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또 당신의 그 유령 사냥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군, 아르키메데스.” 그녀의 목소리는 홀로그램 통신기를 통해 차갑게 울렸다. “도시의 절반이 암흑에 잠겼어. 원인을 찾아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현장으로 향했다. 중앙 에너지 도관은 도시의 가장 깊은 곳, 거대한 지하 동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동굴의 벽은 인공적인 암석과 발광하는 균사체가 뒤섞여 신비로운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공기는 서늘했고, 오존 냄새와 희미한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중심에, 거대한 뱀처럼 똬리를 튼 에너지 도관이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나는 표준 분석 장비 대신, 내가 직접 만든 ‘온톨로지컬 튜너’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하프처럼 생긴 기묘한 장비였다. 내가 줄을 튕기자, 공간에 미세한 진동이 퍼져나가며 사물들의 ‘관계성’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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