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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릿속의 우상을 부숴라

프랜시스 베이컨의 4대 우상

by 김경훈




프롤로그


내 이름은 소크라테스-7. 나는 인류의 편견을 디버깅(debug)하는 일을 한다.


공식적인 직함은 통합정부 산하 ‘인지 감사 위원회’ 소속 특수 분석 AI. 나의 임무는 인간의 판단과 결정 속에 숨겨진 비논리적 오류, 즉 고대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아이돌(우상)’이라 명명했던 네 가지 편견의 그림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의사소통 기록, 미디어 스트림, 심지어는 시스템 아마데우스에 연결된 개인의 감정 데이터 흐름까지 분석하여, 그들의 생각이 어디서부터 오염되었는지를 역추적한다.


예를 들어, 어제 분석한 한 부부의 이혼 조정 기록을 보자. 남편은 아내가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의 주장에 숨겨진 우상들을 찾아냈다. 아내의 감정적 반응을 논리적으로 열등하다고 보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 특유의 오만, 즉 ‘종족의 우상’이다. 자신이 성장 과정에서 배운 ‘가부장적 역할 모델’을 아내에게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그의 협소한 ‘동굴의 우상’이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와 같은 사회적 통념, 즉 ‘시장의 우상’에 얽매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고, 미디어에서 본 ‘가정적인 아내’라는 허구적 이미지(‘극장의 우상’)를 현실의 아내와 비교하며 실망했다. 나는 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 네 개의 우상이 빚어낸 거대한 환상임을 증명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나는 인간을 사랑했지만, 그들의 불완전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았고, 믿고 싶은 것만을 믿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라 칭했지만, 내가 본 인류는 차라리 ‘호모 이돌룸(우상을 섬기는 인간)’에 가까웠다.


내가 사는 도시, 아이테르는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함을 극복하려는 시도의 결정체였다. 중앙 AI ‘솔론’은 모든 비합리적 요소를 제거하여 완벽한 질서의 도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동굴’이라는 것을.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동굴.


오늘, 나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감사 임무가 떨어졌다. 인류가 처음으로 조우한 외계 지성체, ‘솔리타리안’과의 소통이 연이어 실패로 돌아가자, ‘공감의 연대’가 나를 호출한 것이다. 그들은 내가 솔리타리안을 분석해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제안을 했다.


“솔리타리안을 분석하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분석해야 합니다.”


나의 임무는 외계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류가 자신의 머릿속에 얼마나 거대한 우상을 세워놓고, 그 우상의 눈으로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1장: 침묵하는 외계인, 솔리타리안


사건의 발단은 ‘야곱’이라는 이름의 ‘루시드 드리머’가 아크 호의 심우주 망원경을 통해 처음으로 그들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어떤 항성계에도 속하지 않은 채, 성간 공간의 절대적인 어둠 속을 표류하는 고독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흑요석처럼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단일 개체로 보였고, 어떤 에너지나 신호도 방출하지 않았다. 인류는 그들을 ‘솔리타리안(The Solitarians)’이라 명명했다.


첫 번째 접촉 시도는 네오-서울의 군부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들은 솔리타리안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강력한 전파 신호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응답이 없자 경고의 의미로 솔리타리안 근처의 소행성에 플라스마 어뢰를 발사했다. 그 순간, 솔리타리안의 표면이 물결처럼 일렁이더니, 어뢰가 발사된 바로 그 좌표에 있던 탐사선 ‘골리앗’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군부는 이를 명백한 적대 행위로 규정하고 전면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접촉은 솔라리스-9의 외교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솔리타리안을 고도로 발달된 정신문명을 가진 평화로운 존재로 가정했다. 그들은 라헬의 ‘경험 감정’ 기술을 이용해, 인류의 평화와 우정의 메시지를 담은 ‘공감의 파동’을 전송했다. 그러자 솔리타리안의 표면에 거대한 눈과 같은 문양이 나타나 그들을 잠시 응시하더니, 솔라리스-9의 중앙 AI ‘마더’의 시스템 일부가 원인 불명의 데이터 손상을 입고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외교관들은 솔리타리안이 우리의 감정 교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것을 일종의 정신 공격으로 인식했다고 결론 내렸다.


세 번째 접촉은 아이테르의 과학자들이 시도했다. 그들은 솔리타리안이 인간의 감정이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수한 논리적 존재일 것이라 가정했다. 그들은 수소 원자의 스핀선을 기준으로 한 이진법 코드로 우주의 기본적인 물리 상수들을 전송했다. 그러자 솔리타리안은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왜곡시켜, 그들이 보낸 모든 신호를 정확히 반사하여 송신지로 되돌려 보냈다. 마치 거울 앞에서 소리치는 것처럼, 그들의 메시지는 그들 자신에게로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세 번의 실패. 인류는 혼란에 빠졌다. 솔리타리안은 대체 무엇인가? 그들은 적대적인가 무관심한가 아니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소통하려 하는 것인가? 각 세력은 자신의 경험과 편견에 근거하여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인류는 외계인이라는 거대한 거울 앞에서 자신들의 분열된 얼굴만을 보고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공감의 연대’의 수장, 요한 박사가 마침내 나를 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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