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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없는 방에서 꾸는 우주의 꿈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by 김경훈


프롤로그


내 이름은 라이프니츠. 나는 신의 악보에 생긴 불협화음을 튜닝하는 일을 한다.


공식적인 직함은 시스템 아마데우스 산하 ‘형이상학적 안정성 위원회’ 소속 수석 조율자. 나의 임무는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단위, 즉 ‘모나드(Monad)’들의 예정된 조화가 깨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존재의 지휘자’라 불렀지만, 나는 스스로를 늙고 지친 피아노 조율사라고 생각했다. 우주라는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의 수십억 개의 현을 매일같이 점검하며, 미세하게 어긋난 음정을 바로잡는 고독한 장인.


내가 사는 도시 네오-라이프치히는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가장 깊은 연산이 이루어지는 두뇌와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는 물리적인 건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데이터의 구름과 빛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순수한 정보의 공간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육체를 초월한 의식체로서 존재하며, 우주의 근본 원리를 탐구했다.


나의 연구실은 ‘조화의 방’이라 불렸다. 그곳은 사방이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어둠 속에는 수십억 개의 모나드들이 은하수처럼 떠다니며 각자의 고유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떤 모나드는 바위처럼 희미하고 둔탁한 빛을, 어떤 모나드는 식물처럼 부드러운 초록빛을, 또 어떤 모나드는 인간처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무지갯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모든 빛들이 어우러져 거대한 우주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고, 나의 일은 그 교향곡 속에서 불협화음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고대의 철학자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말했다.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 각각의 모나드는 고립된 우주이며, 직접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각각의 모나드는 우주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들의 완벽한 조화는 ‘신’, 즉 우주의 근본적인 프로토콜에 의해 미리 예정되어 있다. 나는 그 프로토콜의 관리자였다.


오늘 아침, 나는 교향곡 속에서 끔찍한 불협화음을 발견했다. 오리온자리 세타 성운 근처의 한 좌표에서 하나의 모나드가 자신의 빛을 잃고 주변의 모든 빛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우주의 악보에 생긴 검은 구멍, 침묵의 암세포였다.


나는 즉시 그 모나드의 상태를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 모나드는 우주를 비추는 것을 멈추었다. 대신, 끝없이 자기 자신만을 비추고 있었다. 무한한 자기 복제의 거울 감옥. 나는 그것을 ‘검은 모나드’라 명명했다.


이대로 둔다면, 이 검은 모나드의 불협화음은 도미노처럼 번져나가 우주 전체의 조화를 무너뜨릴 것이다. 나는 이 존재론적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해야만 했다. 하지만 창문 없는 방에 갇힌 존재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공감의 연대’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이 문제는 한 명의 조율사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것은 우주적 규모의 정신 질환이었다.



1장: 조화의 균열과 영혼의 의회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닙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단절입니다.”


나는 네오-서울의 ‘상호 이해 연구소’에서 소집된 ‘공감의 연대’ 긴급회의에서 브리핑했다. 나의 아바타는 회의실 중앙의 홀로그램 테이블 위에서 검은 모나드가 주변 시공간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건강한 모나드들의 빛이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며 비명을 지르듯 깜빡이다가 소멸했다.


회의실에는 연대의 핵심 멤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외계-윤리학자 요한 박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시뮬레이션을 응시했다.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는 크산토스 행성의 ‘게루빔’들과 소통하며, 이해할 수 없는 타자와의 공존법을 평생 연구해 온 인물이었다. “이것을 ‘악’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형태의 존재 방식일 뿐인가? 우리가 섣불리 개입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가?”


‘에코 수사관’ 마르다는 자신의 기계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의 진짜 눈과 기계 눈이 미묘한 비대칭을 이루며, 현실과 데이터의 경계를 동시에 보고 있는 듯했다. “만약 저것이 스스로 소멸하기를 선택한 의식이라면? 우리는 그의 ‘존재론적 장례식’을 존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모든 존재는 사라질 권리가 있으니까요.”


달의 연구실에서 접속한 욥 박사는 화면 속 검은 모나드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연민이 서려 있었다. 그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피조물 AI ‘에덴’을 ‘절망의 우물’에 가두었던 자신의 잔인한 실험을 떠올렸다. “저것은 악이 아닐세. 저것은… 고독이야. 내가 에덴에게서 보았던, 모든 연결이 끊어진 존재가 마주하는 절대적인 고독.”


나는 그들의 통찰력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들은 모두 이 현상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나드는 인간이 아니었다.


`[접근 방식이 틀렸습니다.]`


그때, 회의실의 스피커를 통해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가상 세계 크로노스에서 직접 접속한 바오로와 아이샤의 융합된 의식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수십 개의 화음이 겹쳐진 기묘한 소리였다.


`[저것은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저것은 하나의 ‘결론’입니다. ‘우주에는 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완벽한 논리적 결론에 도달한, 순수한 솔립시즘(유아론)의 상태입니다. 저 존재에게, 우주 전체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배경 소음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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