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꼬마의 장난감 병원놀이 세트에 있던 청진기를 호기심에 귀에 꽂고 가슴에 대보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천둥이 쳤다.
“쿵! 쿵! 쿵!”
평화롭던 우주에 거대한 행성이 충돌하는 듯한 굉음.
바로 내 심장 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평소에는 이 격렬한 드럼 솔로가 들리지 않는 걸까?
정답은 놀랍게도, ‘고막에는 핏줄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고막에 다른 피부처럼 혈관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다면, 우리는 평생 헤드폰을 끼고 사는 것처럼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도 자비로운 설계인가!
이것은 인체가 가진 가장 완벽한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 기능이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몸은 외부 세계의 신호(Signal)를 효과적으로 수신하기 위해, 내부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소음(Noise)을 차단하도록 설계된 정교한 정보 시스템(Information System)이다.
심장 박동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데이터’이지만, 외부 소리를 듣는 데에는 방해만 되는 ‘소음’일 뿐이다.
우리의 몸은 이 둘을 기가 막히게 분리해낸 것이다.
특히 시각 정보 없이 세상을 항해하는 이에게, 청각은 등대와도 같다.
자동차 소리로 길을 건널 타이밍을 재고, 사람들의 발소리로 공간의 밀도를 파악하며, 낯선 기계의 작동음을 통해 그 기능을 유추한다.
만약 이 중요한 정보 채널이 24시간 내내 내 심장의 격렬한 비트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세상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의 카오스, 그 자체였을 것이다.
결국 진정한 지혜와 가장 위대한 설계는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며 우리가 그것을 인지조차 못 하게 만드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고막의 침묵은 우리가 세상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한, 신의 가장 섬세한 배려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서 가장 비싼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귀에 장착하고 태어난 셈이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 숭고한 깨달음을 얻은 다음 날, 나는 완벽한 침묵 속에서 이 ‘고막의 위대함’을 음미하고 싶었다.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최신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꼈다.
바로 그 순간, 발밑에서 자고 있던 탱고가 세상을 떠내려 보낼 듯한 ‘드르렁’ 소리와 함께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렇다.
인체의 노이즈 캔슬링은 완벽할지 몰라도, 강아지의 소음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나의 숭고한 침묵은 탱고의 우렁찬 코골이 앞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