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없는 식당
그날은 유독 맛있는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꾸덕한 양념에 쫀득한 쌀떡, 그리고 바삭한 야끼만두까지.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도는 그런 완벽한 조합 말이다. 내 옆에는 최고의 파트너인 탱고가 꼬리를 살랑이며 출동 준비를 마친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푹신한 등에서는 가을 햇살에 잘 마른 이불 같은 냄새가 났다.
“탱고, 오늘은 특식이다. ‘최고심 떡볶이’ 정복하러 가자!”
내 말에 탱고는 짧게 코를 찍으며 하네스(안내견용 손잡이)를 내 손에 툭 밀어 넣었다. 스마트폰의 스크린리더가 낭랑한 목소리로 ‘최고심 떡볶이’의 정보를 읽어주었다. 별점 4.8점, 리뷰 1,254개. ‘인생 떡볶이’,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음’ 같은 극찬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정보의 문턱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나는 세상의 모든 맛집을 ‘볼’ 수 있었으니까.
나와 탱고는 익숙하게 보도블록 위를 걸었다. 탱고의 네 발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발톱 소리, 하네스를 통해 전해져 오는 녀석의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 그리고 내 손에 쥔 흰 지팡이가 세상을 읽어내는 ‘타닥, 타닥’ 소리. 이것이 내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이다. 15분쯤 걸었을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도착을 알렸다. 동시에 고소하고 매콤한 떡볶이 냄새가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다 왔구나! 탱고, 잘했어!”
바로 그때였다. 목표 지점을 코앞에 두고 탱고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녀석은 낑낑거리며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하네스를 통해 녀석의 당혹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나는 오른발로 앞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차갑고 단단한 현실과 마주했다.
계단이었다. 폭이 좁고 가파른, 대여섯 개의 계단이 식당 입구로 이어져 있었다.
그 순간, 1,254개의 리뷰와 별점 4.8점은 한낱 데이터 쪼가리로 전락했다. 내비게이션 속 식당은 분명 거기에 ‘존재’했지만, 내 현실 속에서는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철학자 랑시에르가 말한 ‘몫이 없는 이들’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맛있는 떡볶이를 먹을 시민의 ‘몫’이 저 차가운 계단 앞에서 증발해 버린 것이다.
식당 주인이 황급히 뛰어나왔다. 그는 좋은 사람 특유의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내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죄송해서 어떡하죠… 가게가 좁고 구조가 이래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의 사과에는 악의가 없었다. 하지만 선의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나는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며 돌아섰다. 탱고는 아쉬운 듯 식당 쪽을 한번 돌아보더니, 내 발걸음에 맞춰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근처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탱고의 등을 쓰다듬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접근할 수 없다면,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명쾌하고 잔인한 진실인가.
그때 문득 한 청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전동 휠체어를 타는 부산의 개발자, 강한의. 나는 그를 ‘문제 해결을 업으로 삼는 스타트업 CEO’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과 같은 교통약자들이 마주하는 수많은 ‘유령 식당’들에 분노하는 대신,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불편 데이터를 ‘윌체어(Willchair)’라는 이름의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바꿔냈다. 시혜나 동정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의 의지(Will)로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윌체어’ 앱을 실행했다. 화면에는 수많은 가게들이 표시되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통 구멍이 숭숭 뚫린 지도였다. 그 구멍들은 단순히 정보가 없는 곳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존재가 지워진 상처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민주주의의 빈틈이었다.
앱을 통해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새로운 분식집을 찾았다. 5분 거리였다. 그곳에는 가파른 계단 대신 완만한 경사로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장님은 탱고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물 한 그릇부터 내어주셨다. 잠시 후 내 앞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는 그저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몫’을 가졌다는 증명이었고, 나의 존재를 인정받는 환영의 인사였다.
나는 떡볶이를 먹으며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투표소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일상의 모든 문턱 앞에서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끊임없이 시험받는 것이라고.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소수를 위한 특별대우가 아니다. 지도에 뚫린 구멍을 함께 메워, 우리 모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사회 전체의 안전망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결국 민주주의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옆의 누군가가 마주한 계단을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 옆에 작은 경사로 하나를 함께 놓아주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떡볶이를 다 먹고 식당을 나서는 길, 탱고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