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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를 깎아낼 때

몽당연필로 버티는 법

by 김경훈


‘한없이 돌아가는 연필깎이 세상 속에 점점 사라지네, 먼지같이.’


어젯밤, 편의점 도시락으로 늦은 저녁을 때우고 텅 빈 원룸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취업만 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회사라는 거대한 연필깎이는 ‘신입사원’이라는 이름의 새 연필을 쉴 새 없이 돌려댔다. 나는 그 속에서 깎이고, 깎여나가 마침내 나라는 존재의 부피감은 사라지고 한 줌의 무의미한 흑연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1. 뾰족해야 살아남는 정글


내가 들어온 회사는 업계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곳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 날카로움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마모성(馬磨成) 상무님이었다. 그는 이름처럼, 모든 것을 갈고닦아 완벽하게 뾰족한 결과물로 만드는 데 광적인 집착을 보였다.


“각지훈 씨, 자네 아이디어는 너무 뭉툭해. 모난 부분이 많다고. 좀 더 날카롭게, 뾰족하게 다듬어 봐. 시장은 그런 걸 원해.”


입사 면접 때 ‘자네의 그 모난 점이 마음에 든다’며 나를 뽑았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막상 정글에 들어오니, 나의 ‘모난 부분’은 개성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결점이 되어 있었다. 나의 서툰 생각들, 나의 독특한 관점, 나의 색깔은 ‘비효율’과 ‘리스크’라는 이름으로 사정없이 깎여나갔다. 나는 점점 더 ‘일 잘하는 신입’이라는 뾰족한 연필이 되어갔지만, 정작 ‘각지훈’이라는 연필의 몸통은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고 있었다.



2. 빛바랜 꿈이 담긴 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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