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이었다. 길고 тяжел 한 주를 보낸 나에게 주는 유일한 보상은 대형마트에서 2만 원 주고 산 보르도 와인 한 병이었다. 나에게 ‘보르도’는 프랑스의 지명이 아니라, ‘실패할 확률이 적은 맛’을 보장하는 하나의 믿음직한 브랜드였다. 코르크를 따자 ‘뻥’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짙은 과일 향이 퍼져 나왔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루비처럼 붉은 와인을 잔에 따랐다. TV에서는 마침 저녁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부터 사흘에 걸쳐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세계 각지의 상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먼저 프랑스입니다.”
나는 무심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와인잔을 기울였다. 화면에 잡힌 풍경은 내가 알던 프랑스가 아니었다.
1. 포도밭의 장례식
화면은 온통 잿빛이었다. 푸른 잎사귀 대신, 검게 그을린 포도나무들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앵커는 파리 면적의 1.5배를 태운 산불과 40도가 넘는 폭염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화면은 한 늙은 농부를 비췄다. ‘아르노’라는 자막이 떴다.
그의 얼굴은 마치 그가 평생 일궈온 포도밭의 지형도 같았다. 햇볕과 가뭄이 남긴 깊은 주름,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사람 특유의 공허한 눈빛. 그의 손은 포도나무껍질처럼 거칠고 갈라져 있었다. 그는 증조부 때부터 4대를 이어온 포도밭을, 자신의 손으로 갈아엎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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