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탈 것’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에 가깝다. 누군가는 네 바퀴 달린 신(자동차)을, 누군가는 두 바퀴로 달리는 자유(바이크)를, 또 누군가는 하늘을 가르는 거대한 새(비행기)를 숭배한다. 나는 오랫동안 그들의 광적인 믿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내 친구 차범진(車凡眞)이 그의 새로운 ‘애인’을 소개해준 그날, 비로소 그 지독한 사랑의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1. 내 친구의 새로운 ‘애인’을 소개합니다
“경훈아, 드디어 나왔다. 내 드림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 차범진의 목소리는 갓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은 아버지의 그것처럼 감격에 차 있었다. 주말 오후, 나는 축하를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잡아끌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을 공개하지’라는 비장함마저 서려 있었다.
주차장 한가운데, 매끈한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조명 아래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범진은 마치 박물관의 귀한 유물을 다루듯, 극세사 융으로 보닛 위의 보이지도 않는 먼지를 살살 닦아냈다.
“어때? 끝내주지?”
그는 애인을 소개하는 스무 살 청년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제로백 4.5초’니 ‘풀타임 사륜구동’이니 하는 나에게는 외계어처럼 들리는 스펙들을 읊어댔다. 나는 그가 차 문을 열 때마다 풍겨 나오는 머리가 아찔한 ‘신차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대체 이 달리는 쇳덩어리가 뭐라고, 다 큰 어른이 저렇게까지 행복해하는 걸까.’
2. 시속 100km의 자유, 혹은 착각
“타 봐! 진짜 자유가 뭔지 느끼게 해 줄게!”
범진은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그르렁’ 하는 낮은 엔진음과 함께, 차는 미끄러지듯 주차장을 빠져나와 텅 빈 고속도로 위로 올라섰다. 범진이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 순간, 내 몸은 시트에 깊숙이 파묻혔다.
창밖의 풍경이 흐릿한 잔상으로 변해갔다. 지긋지긋한 회사 건물도, 꽉 막힌 인간관계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저 뒤편으로 빠르게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덜컹이는 1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고, 타인의 숨결과 소음에 갇혀 수동적으로 이동하던 나의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라디오에서는 신나는 록 음악이 터져 나왔다. 범진은 운전대를 잡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쇳덩어리가 주는 것이 단순한 속도감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내 의지대로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강력한 착각, 혹은 환상이었다.
3.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운전대’를 잡고 싶어 한다
생각해 보면, 남자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운전’하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어린 시절에는 장난감 자동차의 운전대를, 청소년기에는 게임 속 캐릭터의 운전대를,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진짜 자동차의 운전대를.
왜일까?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진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순간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상사가 집에서는 더 무서운 분(?)이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설정하고 경로를 이탈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남이 운전하는 버스의 승객으로, 혹은 정해진 선로 위를 달리는 지하철의 탑승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 차 안에서만큼은 운전자는 완벽한 왕이다. 목적지도, 속도도, 실내 온도와 배경 음악까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이 1평 남짓한 쇠 상자는 세상의 모든 통제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나’의 왕국이 되는 유일한 공간인 것이다. 남자들이 그토록 차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작은 왕국에서 잠시나마 왕이 되고픈 서글픈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4. 나의 ‘탈 것’은 뚜벅이 1호선
범진은 나를 집 앞 지하철역에 내려주었다. “조심히 들어가라!” 굉음을 내며 멀어지는 그의 차를 보며,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 개찰구를 통과했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나는 붐비는 사람들 틈에 섞여 지하철에 올라탔다. 예전 같았으면 ‘또 이 지겨운 일상의 시작이군’이라며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는 번쩍이는 세단은 없지만, 나 역시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비록 내 ‘탈 것’이 뚜벅이 1호선일지라도, 어느 역에서 타고 어느 역에서 내릴지, 환승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탈 것’의 종류가 아니었다.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나의 의지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나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불빛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나는 지금,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괜찮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의 운전대를 직접 잡고 있다는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