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휴식은 하나의 정교한 상품이다. 우리는 ‘단절’을 구매하고, ‘사유’를 체험하며, 그 고독마저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 콘텐츠로 소비한다. ‘프라이버시’는 이제 가장 비싼 럭셔리 재화가 되었고, 우리는 기꺼이 지갑을 열어 외부와 차단된 성채 안으로 들어간다. 한옥 스테이라는 이름의 이 아름다운 격리실은 도시의 소음과 데이터의 폭격에 지친 영혼들을 위한 최신 버전의 도피처다. 그러나 우리가 그곳에서 정말로 얻는 것은 진정한 고요함일까, 아니면 잘 연출된 고요함의 이미지일 뿐일까. 이것은 그 완벽하게 설계된 침묵의 상품성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균열에 대한 한 연구원의 주석(註釋)이다.
1. 시스템으로부터의 도피
김경훈은 KTX 특실의 정적 속에서 또 다른 종류의 소음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열차가 레일 위를 미끄러지며 내는 규칙적인 마찰음도, 멀리서 들려오는 승무원의 안내 방송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몇 달간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거대 통신사의 모바일 앱 개편 프로젝트가 남긴 데이터의 잔향이었다. 그는 정보 접근성 컨설턴트로서 수백만 사용자를 위한 시스템의 논리적 경로를 설계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 복잡한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연결된 세상. 그는 그 연결의 이면에서 얼마나 많은 사용자가 소외되고 길을 잃는지를 목격했다. 그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길을 만드는 사람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 자신 역시 소진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에게 48시간의 완전한 오프라인을 처방했다. 목적지는 경북 안동의 ‘곡선의 집’. 스테이폴리오라는 플랫폼이 큐레이션한, 200평 대지를 단 한 팀만이 사용하는 한옥 독채였다.
택시에서 내리자, 그의 발밑으로 자갈이 밟히는 건조한 소리가 났다. 그의 곁에서 안내견 탱고가 낮은 자세로 낯선 흙과 풀의 냄새를 탐색했다. 그는 예약 확정 문자에 적힌 대로, 묵직한 질감의 나무 대문에 달린 디지털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철컥’ 하는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문턱을 넘는 순간, 공기의 밀도가 바뀌었다. 그는 지금, 완벽하게 통제된 ‘체험’의 영토로 들어서고 있었다.
2. 설계된 감각의 지도
그는 탱고의 하네스를 잡은 손에 힘을 풀고,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벽을 짚으며 공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거친 질감의 담벼락, 매끄럽고 차가운 대청마루, 그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 그는 머릿속으로 이 공간의 지도를 그렸다. 중정(中庭)을 중심으로 각 공간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마루와 흙, 돌의 경계가 어디인지, 빛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와 어느 쪽 벽을 데우고 있는지를. 그의 손가락은 마치 정밀한 스캐너처럼, 모든 표면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를 위한 다기(茶器) 세트와 함께, ‘사유의 정원’이라는 이름의 웰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차소연 대표의 음성 메시지가 담긴 작은 태블릿이 놓여 있었다. 그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맑고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지금부터 모든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고, 당신의 가장 오래된 인터페이스, 즉 당신의 몸과 감각에 집중해 보세요….”*
김경훈의 입가에 옅은 냉소가 스쳤다. 그의 창백하고 지적인 얼굴 위로, 그 미소는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희미하게 번져나갔다. 가장 완벽한 단절을 위해, 가장 최신의 디지털 기기가 동원되는 아이러니.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찻잔의 온기와 찻잎의 향, 바람 소리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통신사 앱의 잘못된 코드와 비논리적인 UI 구조가 유령처럼 떠돌았다. 휴식은 의식이었고, 그는 그 의식에 집중하지 못하는 불성실한 신도였다.
3. 균열이라는 이름의 진실
밤이 되자, 완벽하게 설계된 공간에서 미세한 균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외풍이었다. 현대적인 이중창으로 완벽히 보완되었다는 설명과 달리, 오래된 서까래와 벽이 만나는 그 어딘가에서 차가운 밤공기가 뱀처럼 스며들어왔다. 그는 최고급 구스다운 침구에 몸을 묻었지만, 그 집요한 한기는 그의 발목을 파고들었다.
‘덜그럭… 덜그럭….’
바람이 불 때마다, 낡은 문틀이 제 몸을 비트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것은 차소연 대표의 음성 가이드에도, 큐레이션된 플레이리스트에도 없던, 날것의 소리였다. 설계자의 의도를 벗어난, 통제 불가능한 진짜 정보. 그는 처음에는 그 소리를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그의 예민한 신경을 집요하게 건드렸다.
마침내 그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탱고가 고개를 들었지만, 그는 손짓으로 녀석을 안심시켰다. 그는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소리는 대청마루 끝, 정원으로 향하는 오래된 격자무늬 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그 앞에 주저앉았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외풍이 칼날처럼 그의 무릎을 파고들었다.
그는 이 ‘불편함’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기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완벽하게 연출된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각본에 없는 대사를 듣는 기분. 400년 된 고택의 낡고 깨진 부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위로를 얻는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진정한 위로는 완벽함이 아니라, 이 제어할 수 없는 불완전함과의 조우에 있는지도 모른다.
4. 가장 오래된 인터페이스에 대한 주석
그는 그 차가운 문에 기댄 채, 아주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힐링’을 연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곳에 존재했다. 덜그럭거리는 문틈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의 불규칙한 리듬에 자신의 호흡을 맞추었다. 곁에 다가와 몸을 기댄 탱고의 따뜻한 체온을 느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단절은 세상의 데이터로부터의 단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정보를 해석하고, 분류하고, 맥락을 부여해야 하는 자기 자신의 강박으로부터의 단절이었다. 이 예측 불가능한 외풍, 이 집이 들려주는 비정형 데이터는 그에게 어떤 해석도, 어떤 반응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듣고, 느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짐을 챙겨 떠나기 전, 자신의 휴대용 점자 기록계 앞에 앉았다. 그리고 어젯밤의 경험에 대한 짧은 주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제목: 완벽한 단절에 대한 주석.
현대의 휴식 상품은 완벽한 감각적 통제를 통해 사용자에게 ‘인지적 편안함’을 제공하고자 설계된다. 그러나 진정한 사유와 내면으로의 접속은 통제된 시스템의 균열, 즉 ‘불편함’이라 명명된 비정형 데이터와 마주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외풍, 낡은 나무의 신음 소리. 이것들은 가장 오래된 인터페이스인 ‘몸’을 일깨우는 신호다. 진정한 접근성이란 어쩌면,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벽의 존재를 온전히 감각하고 그것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 완벽한 단절은 실패했다. 그리고 나는 그 실패 속에서 비로소 잠시 평온했다.’*
그는 기록을 마쳤다. 디지털 도어록이 그의 등 뒤에서 다시 ‘철컥’ 하는 소리를 내며 잠겼다. 완벽한 상품은 다시 봉인되었다. 그는 이제,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데이터의 세계로 돌아갈 터였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조금 더 가벼워져 있었다. 그는 이제 알았다. 때로는 가장 완벽한 길을 찾는 것보다, 길을 막아선 낡은 문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