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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의 철학

by 김경훈


행복. 21세기의 인간들은 이 낡고 고전적인 단어를 마치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용어처럼 다룬다. 그들은 행복을 ‘획득’해야 할 목표이자 ‘달성’해야 할 지표로 설정한다. 삶의 모든 행위는 이 단 하나의 KPI(핵심 성과 지표)를 향한 알고리즘으로 재편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두, 어딘가 필사적이고 또 가련하게, 제 보이지 않는 꼬리를 물기 위해 맹렬히 맴도는 강아지의 운명을 자처한다.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 개수, 주식 계좌의 수익률, 구독자 수. 그 디지털의 꼬리만 붙잡으면 모든 불안이 끝나고 영원한 안정과 희열이 시작될 것이라는 가장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환상 속에서. 이것은 그 끝없는 공전에 대한 기록이다.



1. 번 아웃된 야심의 냄새


김경훈은 캠퍼스의 늦가을 공기 속에서 타인의 불안이 내뿜는 특유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것은 갓 내린 커피의 산미와 번 아웃된 야심이 뒤섞인, 씁쓸하고도 날카로운 냄새였다. 그는 늘 앉던 교내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곁에는 안내견 탱고가 세상의 모든 조급함과 무관하다는 듯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카페 안은 저마다의 꼬리를 좇는 젊은 강아지들로 가득했다. 노트북 액정의 푸른빛이 그들의 창백한 얼굴을 유령처럼 비추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맞은편 의자를 거칠게 끌어당기며 그의 고요한 세계로 추락하듯 끼어들었다. 박민준. 얼마 전부터 그의 연구를 돕고 있는 총명하지만 늘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대학원생이었다.


“선배님, 망했습니다. 그냥 다 끝난 것 같아요.”


민준의 목소리는 잘 벼려지지 않은 칼날처럼 껄끄러웠다. 그는 값비싼 브랜드의 맨투맨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목둘레가 살짝 늘어나 있어 그의 지친 내면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의 눈은 며칠 밤을 새운 사람 특유의 퀭한 빛을 띠었고, 손목의 스마트워치는 1분 간격으로 알림을 울려대며 그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그는 ‘AURA’라는 이름의 앱에 대해 거의 한 시간 동안 떠들어댔다. 사용자의 생체 데이터와 SNS 활동을 분석해 ‘행복’을 큐레이션 해주는 인공지능 서비스. 그의 설명에 따르면, AURA는 사용자에게 최적의 음악, 음식, 소비 활동, 심지어 대화 주제까지 추천해 주어 도파민 수치를 최고로 유지시켜 주는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내비게이션이었다.


“아이템은 완벽해요. 기술도 이미 구현했고요. 그런데 투자자들이 그러더군요. ‘사람들이 정말 행복해지고 싶어 할까요?’ 이게 질문입니까, 철학입니까? 그들은 행복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행복해 보이고 싶을 뿐이라는 거예요.”


민준은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그의 야심만만한 프로젝트, 그의 ‘꼬리’는 그의 이빨 바로 앞에서 계속 헛돌고 있었다. 김경훈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의 얼굴은 감정을 읽기 힘든 가면처럼 평온했지만, 그의 귀는 민준의 목소리 톤, 호흡의 변화, 단어 선택의 미묘한 차이까지 분석하며 그의 좌절이라는 데이터 뭉치를 해부하고 있었다.


“민준 씨,” 그가 마침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소음으로 가득한 카페 안에서 이상한 무게감을 가졌다. “당신은 지금, 행복이라는 이름의 꼬리를 잡으려다 멀미가 난 강아지 같군요.”


민준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꼬리라니요? 이건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이 앱만 성공하면….”


“성공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 거겠죠.” 김경훈이 그의 말을 잘랐다. “하지만 당신의 앱이 제안하는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 행복의 시뮬라시옹(simulacre)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고단한 과정 대신, 행복하다는 느낌만을 소비하고 싶어 하죠. 당신은 그 욕망을 정확히 꿰뚫었지만, 투자자들은 그 욕망의 허무함까지 간파한 것뿐입니다.”


김경훈은 찻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아주 오래전,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늙은 개가 자기 꼬리를 잡으려고 온종일 뱅뱅 도는 어린 강아지에게 그랬답니다. ‘얘야, 행복은 네 꼬리에 달려 있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것을 잡으려고 돌면 영원히 잡을 수 없지. 그저 네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면, 그 꼬리는 저절로 너를 따라오게 되어 있단다.’”


민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날카롭던 눈빛이 잠시 길을 잃고 허공을 헤맸다. 그는 이 낡은 우화가 자신의 최첨단 AI 프로젝트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2. 길을 가는 방식


다음 날, 김경훈은 자신의 연구실에 있었다. 그의 공간은 침묵의 성채였다. 외부의 소음은 두꺼운 방음벽에 막혀 희미했고, 오직 컴퓨터의 화면낭독기가 쏟아내는 기계음만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그는 지금,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공 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 구조를 개선하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지루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그의 작업은 ‘혁신’이나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수만 개의 데이터에 일일이 태그를 달고,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고, 사용자가 겪을 불편함을 상상하며 한 줄 한 줄 경로를 수정하는 끝없는 교정과 확인의 과정이었다. 그는 ‘완벽한 데이터베이스’라는 거창한 꼬리를 좇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의 손끝에 놓인 단 하나의 데이터, 단 하나의 경로에만 집중했다.


그는 이 고독하고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기묘한 평온함을 느꼈다. 그것은 목표 달성의 희열과는 다른 종류의 충만함이었다.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단단한 감각. 그는 이 과정 자체가 자신에게는 일종의 보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민준은 행복을 외부에서 주입하려 했지만, 김경훈은 자신의 내부에서 조용히 길어 올리고 있었다. 탱고가 그의 발치에서 잠꼬대를 하듯 작게 낑낑거렸다. 김경훈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녀석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 온기, 이 신뢰. 그의 행복은 이미 그의 곁에, 조용히 따라오고 있었다.



3. 꼬리의 고백


몇 주 뒤, 초겨울의 문턱에서 박민준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서는 지난번의 날카로운 야심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길을 잃은 아이 같은 막막함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는 AURA 프로젝트를 완전히 엎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민준이 텅 빈 눈으로 말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면서 정작 제 자신은 지옥에 있었습니다. 꼬리를 좇으라는 선배님 말씀이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길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겁니까?”


김경훈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탱고.”


그는 민준을 데리고 연구실을 나섰다. 그들은 말없이 교정을 걸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옷깃을 파고들었다. 김경훈은 어느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는 제가 매일 아침 탱고와 함께 산책을 시작하는 곳입니다.” 그가 말했다. “저는 목적지인 연구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탱고의 등과 하네스를 통해 전해져 오는 길의 감촉, 내 발바닥에 닿는 보도블록의 질감, 그리고 내 뺨을 스치는 바람의 방향에만 집중합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저는 연구실 문 앞에 도착해 있습니다.”


그는 민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보이지 않는 눈이 민준의 내면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길이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꼬리를 보지 말고, 당신의 발 앞을 보십시오. 당신이 오늘 마땅히 내디뎌야 할, 그 한 걸음에만 집중하십시오.”


김경훈과 탱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민준은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김경훈의 걸음은 흔들림이 없었고, 탱고의 걸음은 충직했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김경훈의 등 뒤에서 탱고의 꼬리가 행복이나 성공 같은 단어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저 존재의 당연한 일부로서 평화롭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민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생각했다. 아직 그 길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모든 것은 아마, 이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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