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창작자의 내 멋대로 아카식 레코드 사용설명서

by 김경훈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 우주의 모든 순간과 지식이 기록되어 있다는 이름만 들어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거창한 단어입니다. 그런 이름을 제가 끼적이는 글 쪼가리들에 감히 붙여놓고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투명인간이 될 지경입니다. 자화자찬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시작해 버린 것을.


그래서 변명 겸, 제멋대로 지은 이 세계의 ‘사용설명서’를 공개할까 합니다.



1. 황금 레시피: 팩트 80%와 MSG 20%


한 달 남짓, 저만의 ‘아카식 레코드’를 구축하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제 글이 가장 반짝이는 순간은 화려한 상상력이나 유려한 문장력이 아니라, 저의 실제 경험과 날것의 감정이 담길 때라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저만의 황금 레시피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진짜 내 경험 80%’에, 이야기를 조금 더 맛깔나게 버무려줄 ‘허구라는 이름의 MSG 20%’를 첨가하는 것입니다. 이 레시피 안에서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몰입을 위해 이름도, 직업도 제 실명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자화자찬’ 아니면 ‘자학’이라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둘 다입니다. 저는 그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때로는 나르시시스트처럼 우쭐대고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인 척하며, 위태로운 춤을 춰볼 생각입니다.



2. 세 개의 시대, 세 개의 서랍


저의 불완전한 기록 보관소는 세 개의 시대로 나뉜, 세 개의 낡은 서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제3시대: 철학과 심리학이라는 낡은 서랍

첫 번째 서랍에는 저의 과거가 담겨 있습니다. 먼지 쌓인 전공 서적의 냄새가 나는 곳이죠. ‘철학’과 ‘심리학’이라는 딱딱한 뼈대 위에, 제가 겪고 느꼈던 감정의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듭니다. 인간은 왜 불안해하고, 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되는가. 이 낡은 서랍 속에서 저는 관계와 존재의 이유를 더듬더듬 찾아 나갑니다.


▶︎ 제2시대: 인공지능과 기후위기라는 이름의 예고편

두 번째 서랍에는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곧 닥쳐올지 모를 가까운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기후 변화가 우리의 식탁을 바꾸는 세상. 저는 오늘의 뉴스 헤드라인을 바탕으로, 내일의 시나리오를 상상합니다. 이 서랍 속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함께 보게 될 거대한 영화의 예고편일지도 모릅니다.


▶︎ 제1시대: 뉴스 기사와 버무린 오늘의 일기

마지막 서랍은 ‘지금, 여기’의 이야기입니다. 가장 많은 ‘진짜 내 경험 80%’가 담긴 곳이죠. 저는 신문 기사나 칼럼, 에세이에서 발견한 세상의 큰 흐름과, 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을 버무려 소설을 씁니다. 거대한 세상의 이야기와 한 개인의 일기가 만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게 되니까요.



3. 당신을 나의 우주로 초대합니다


결국 ‘아카식 레코드’란, 우주의 모든 기록이 아니라, 한 어설픈 창작자가 자신의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써 내려간 삐뚤빼뚤한 항해일지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자기 자랑과 자기 비하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기록이죠.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한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자, 이제 저의 불완전하고 지극히 사적인 우주 기록 보관소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함께 길을 잃고, 함께 웃고, 함께 고개를 끄덕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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