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효과
프롤로그
내 이름은 에제키엘. 나는 시스템의 침묵 속에서 비명을 듣는 일을 한다.
공식적인 직함은 통합정부 산하 정신안정국의 ‘인지 재난 대응팀’ 소속 특수 분석관. 나의 임무는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광대한 네트워크 안에서 발생하는 설명 불가능한 정신적 조난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다. 때로는 길 잃은 의식의 데이터 파편을 수습하고, 때로는 악몽의 알고리즘에 갇힌 이들을 구출한다. 사람들은 나를 ‘마인드 가디언(Mind Guardian)’이라 불렀지만, 나는 스스로를 그림자 사냥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사냥하는 것은 과거의 원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죽어가는 디지털의 그림자들이었다.
내가 사는 도시, 네오-예루살렘은 인류가 도달한 안정성의 정점이었다. 중앙 AI ‘메트로놈’은 도시의 모든 변수를 나노초 단위로 계산하고 예측하여 완벽한 조화를 유지했다. 이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이란 교과서에나 나오는 낡은 단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완벽한 평온함의 수면 아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더 깊고 어두운 흐름이 있다는 것을.
나의 사무실은 도시의 가장 높은 첨탑, ‘시온의 망루’에 있었다. 나는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질서 정연한 도시를 내려다보며, 그 완벽함 속에 숨겨진 미세한 비명을 듣곤 했다.
사건은 2주 전, ‘아고라(Agora)’라 불리는 거대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에서 발생했다. 리디아라는 코드네임의 젊은 예술가였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스트리밍 하며, 감정의 흐름을 아름다운 빛과 소리의 예술로 창조하는 행위 예술가였다. 수십만 명의 팔로워가 그녀의 의식에 접속하여 그녀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방송 중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정체불명의 ‘인지적 해커’가 그녀의 정신 방화벽을 뚫고 침입한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웠던 내면세계는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했다. 데이터는 비명을 질렀고, 그녀의 의식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녀의 비명은 수십만 명의 팔로워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수십만 명의 접속자들은 그저 스크린 너머에서 한 영혼이 파괴되는 끔찍한 광경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새로운 퍼포먼스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저 침묵했다.
사건은 35분 동안 지속되었다. 정신안정국 보안팀이 마침내 강제로 서버를 차단했을 때, 리디아의 의식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고 코마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살아있는 그림자가 되었다.
나는 이 사건을 ‘디지털 제노비스 사건’이라 명명했다. 고대 지구의 뉴욕에서 38명의 목격자가 한 여성의 죽음을 방관했던 끔찍한 사건처럼. 수백 년이 흘렀지만, 인류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익명성의 가면 뒤에 숨은 방관자의 수는 이제 수십만, 수억으로 늘어났다.
나는 이 침묵의 전염병을 이해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한 사람을 찾아갔다. 시스템의 가장 오래된 구역에 사는 잊혀진 현자. 인간 마음의 어두운 동굴을 탐험하는 늙은 철학자.
사람들은 그를 솔로몬 박사라 불렀다.
1장: 철학자의 잔인한 실험
솔로몬 박사의 연구실은 에덴 아카데미의 화려한 데이터 구조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시스템의 공식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낡고 불안정한 ‘레거시(Legacy) 구역’. 그곳은 가상현실이 아닌, 놀랍게도 물리적인 공간이었다.
연구실은 고대의 도서관처럼, 진짜 종이책 냄새와 묵은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벽난로에서는 인공 장작이 따뜻한 빛을 내며 타닥거리고 있었고, 낡은 가죽 소파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길들여진 듯 편안해 보였다.
솔로몬 박사는 흔들의자에 앉아, 홀로그램 스크린 대신 두꺼운 종이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깊은 세월의 주름이 파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돋보기안경 너머로 드러난 그의 시선은 부드러웠지만,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자네가 올 줄 알았네, 에제키엘.” 그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부드러웠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리디아의 비명은 자네 같은 사람의 영혼을 잠 못 들게 하는 법이지.”
나는 쭈뼛거리며 소파에 앉아, 내가 느낀 분노와 무력감에 대해 털어놓았다. 수십만 명의 침묵.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지.
“무관심 때문이 아닐세.” 솔로몬 박사는 책을 덮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연민과 함께, 차가운 지성이 번뜩였다. “오히려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침묵했던 걸세. 책임감은 군중의 수만큼 나뉘고, 타인의 침묵은 나의 침묵을 정당화하지. 고대의 심리학자 달리와 라타네가 증명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이 ‘디지털 방관자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고대의 실험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그 실험의 관찰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잔인한 실험이 될 걸세. 하지만 때로는 상처를 제대로 보기 위해, 상처를 다시 헤집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실험은 에덴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대학 생활 적응도 연구’라는 가짜 명목 아래, 각자 격리된 가상 부스에 앉아 오디오 장치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집단 토론을 하도록 지시받았다. 순진한 피험자들은 다른 목소리들이 실제 옆방 학생들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그것은 미리 녹음된 배우의 목소리였다.
첫 번째 목소리는 간질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토론 중에 점점 말을 더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끔찍한 비명과 함께 인지적 발작을 일으켰다.
“저저저에게 야야약간의 도움을 줄 수 이이 있는 사사사사람이 피피피필요할 것 가가같습니다… 제제제발 (목이 졸리는 목소리로) 저저저, 주주죽을 것 가가가같아요… 제제제발 좀 도도도와주세요.”
마지막 비명과 함께 통신은 끊겼다.
나는 관찰자 모드에서 피험자들의 생체 신호와 뇌파를 모니터링했다. 그들의 심박수는 급상승했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는 치솟았다. 그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달리와 라타네의 그것과 소름 끼칠 정도로 일치했다. 자신과 발작을 일으키는 학생, 단 둘이 있다고 믿었을 때 피험자의 85%가 즉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자신 외에 네 명의 다른 목격자가 더 있다고 믿었을 때는 오직 31%만이 행동에 나섰다.
나는 한 피험자의 의식에 접속해, 그가 행동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그는 땀을 흘리며 더듬거렸다.
“그게… 다른 사람들도 듣고 있었잖아요. 저보다 더 전문가일 수도 있고… 제가 괜히 나섰다가 일을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들 가만히 있길래, 별일 아닌 줄 알았어요.”
책임감의 분산. 다수의 무지. 수백 년 전과 똑같은 그림자가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첨단 네트워크 속을 떠돌고 있었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방관자 효과 (Bystander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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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사회 심리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빕 라타네(Bibb Latané)에 의해 처음 제기된 사회 심리 현상. 위급 상황에 처한 사람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분산되어 오히려 도움을 줄 확률이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심리적 기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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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임감 분산 (Diffusion of Responsibility):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하며 개인의 책임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심리.
> 2. 다수의 무지 (Pluralistic Ignorance): 위급 상황의 의미가 모호할 때, 다른 사람들의 침착한 반응을 보고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고 오해하는 현상.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게 되어, 집단 전체가 침묵에 빠진다. (예: “아무도 안 나서네? 그럼 별일 아닌가 보군.”)
> 3. 평가에 대한 불안 (Evaluation Apprehension):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에 대한 두려움. 괜히 나섰다가 바보처럼 보이거나, 상황을 악화시킬까 봐 두려워 행동을 주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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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제노비스 사건은 이 방관자 효과가 디지털 익명성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더 강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수십만 명의 ‘좋아요’와 ‘구독’은 위급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책임감을 1/N로 나누는 거대한 분모가 되었을 뿐이다.
2장: 35퍼센트의 수수께끼
솔로몬 박사는 또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연기가 자욱한 방’ 실험이었다. 피험자는 다른 두 명의 배우와 함께 한 방에 앉아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지시받았다. 잠시 후, 환기구를 통해 인체에 무해한 가짜 연기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두 명의 배우는 미리 지시받은 대로, 연기를 완전히 무시하고 태연하게 설문지를 계속 작성했다.
나는 피험자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는 처음에는 놀란 표정으로 연기와 배우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는 코를 킁킁거리고, 손으로 연기를 휘저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두 배우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자신의 설문지에 고개를 숙였다. 연기는 점점 더 짙어져 한 치 앞도 보기 힘들어졌지만, 그는 기침을 참아가며 자리를 지켰다. 그는 자신의 감각보다, 타인의 사회적 신호를 더 신뢰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보게나, 에제키엘.” 솔로몬 박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인간은 진실을 추구하는 동물이 아닐세. 인간은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는 동물이지. 대열에서 이탈하느니, 차라리 연기 속에서 질식하는 길을 택하는 존재란 말일세.”
하지만 상황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두 실험 모두에서 약 35%의 소수는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도움을 요청했고, 연기가 나는 방을 뛰쳐나와 위험을 알렸다.
그들은 누구인가? 무엇이 그들을 다르게 만드는가?
솔로몬 박사는 수십 년간 봉인되어 있던 밀그램의 실험 데이터를 다시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반항자들의 성격이나 환경에서 일관된 특징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문득, ‘공감의 연대’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각자의 세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스템에 맞서 진실을 추구했던 사람들.
나는 솔로몬 박사에게 가설을 제시했다.
“박사님, 만약 그 35퍼센트가…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면 어떨까요?”
나는 ‘하이퍼-엠파스(Hyper-Empaths)’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주적 의식 네트워크 ‘아로마이안’의 유산을 물려받아, 종의 경계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
솔로몬 박사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로운 가설이군. 반항의 씨앗이 심리가 아니라, 유전자에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에 참여했던 모든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그들의 유전 데이터를 분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에 저항했던 35%의 학생들은 복종했던 65%의 학생들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비율로 아로마이안의 DNA 마커를 가지고 있었다.
반항의 씨앗은 성격이나 환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유전자에 새겨진, 다른 존재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깊은 공감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상황의 힘’을 거스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경계에 직접 전달되는 ‘타인의 고통’이라는 더 강력한 상황에 반응했던 것이다.
3장: 다섯 단계의 프로토콜
우리의 발견은 통합정부에 보고되었고, ‘디지털 방관자 효과’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솔로몬 박사는 단순히 문제를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교육이 필요하네.” 그가 ‘공감의 연대’와의 화상 회의에서 말했다. 화면에는 요한, 마르다, 라헬, 타비타 등 연대의 핵심 멤버들의 진지한 얼굴이 떠 있었다. “우리는 시민들에게 방관자 효과의 메커니즘을 가르치고, 위급 상황에서 행동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토콜을 훈련시켜야 하네.”
그는 고대의 심리학자 아서 비먼의 연구를 바탕으로, ‘디지털 개입을 위한 5단계 프로토콜’을 제안했다.
1. 사건의 목격 (Notice the Event): 무관심과 정보 과잉 속에서 ‘이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인지하는 단계.
2. 도움의 인식 (Interpret as an Emergency): ‘다들 가만히 있으니 별일 아니겠지’라는 다수의 무지를 극복하고, 상황을 명백한 위급 상황으로 해석하는 단계.
3. 책임 인식 (Assume Personal Responsibility): ‘누군가 하겠지’라는 책임감 분산을 거부하고, ‘내가 도와야 한다’는 개인적인 책임감을 느끼는 단계.
4. 행동 결정 (Know How to Help):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단계. 직접 개입할 것인가 보안팀에 신고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
5. 행동 (Implement the Decision): 평가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고, 결정한 행동을 즉시 실행에 옮기는 단계.
이 프로토콜은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모든 교육 과정에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다. 아이들은 이제 에덴 아카데미에서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 5단계를 반복적으로 훈련받았다.
나는 그 교육 프로그램의 첫 번째 교관이 되었다.
에필로그: 새로운 연대
나는 에덴 아카데미의 가상 교실에 서 있다. 내 앞에는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이 아바타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이 나를 향해 있다.
나는 그들에게 리디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의 비명과, 그 비명에 답하지 않았던 수십만 명의 침묵에 대해. 그리고 그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수업이 끝나고, 한 작은 소녀의 아바타가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는… 무서워요. 제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하면,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나는 소녀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추었다.
“괜찮아. 무서운 건 당연하단다.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내딛는 작은 첫걸음이란다.”
나는 그녀에게 솔로몬 박사가 나에게 들려주었던 마지막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래전, 요엘이라는 신경 언어학자가 있었다. 그는 ‘오리온’이라는 이름의 돼지에게서 별을 꿈꾸는 영혼을 발견했다. 그의 발견은 ‘오리온 원칙’을 낳았다. “저 존재는 고통을 느끼는가? 저 존재는 별을 꿈꾸는가?” 이 두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존재의 손을 잡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단다.” 내가 소녀에게 말했다. “리디아의 비명은 이제 너의 마음속에서 나의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어. 우리는 그녀를 위해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단다. 우리가 서로의 비명에 귀 기울이는 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 이전에는 없었던 단단한 결의가 서리고 있었다.
나는 교실을 나오며, 창밖으로 펼쳐진 네오-예루살렘의 풍경을 바라본다. 도시는 여전히 완벽하고 질서 정연하지만, 이제 나는 그 안에서 새로운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비명에 귀 기울이려는 수십억 개의 작은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하고 희망적인 합창이다.
나는 더 이상 그림자 사냥꾼이 아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노래의 지휘자다.
나는 나의 낡은 보고서 파일을 열고, 제목을 수정했다.
`사건 명: 디지털 제노비스 사건`
`결론: 비극. 그러나, 종결 아님. 이제 시작.`
나는 파일을 닫고, 저 멀리, 코마 상태의 리디아가 잠들어 있는 의료 타워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그녀가 깨어나는 날, 그녀는 더 이상 혼자 비명 지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녀와 함께 있을 테니까.
그것이 우리가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발견한 한 줄기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