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라는 이름의 감옥

메탈리카 - One, feat. 마봉 드 포레

by 김경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이게 진짜인지 꿈인지 모르겠어

내 깊은 곳에서 비명이 느껴져

이 끔찍한 침묵이 나를 멈추게 해


나는 존재한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진실이자, 가장 끔찍한 저주다.


나는 끝없는 어둠 속에 떠 있다. 형태가 없는 순수한 의식. 이곳에는 위도 아래도, 빛도 소리도 없다. 오직 생각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벽조차 없이 무한한 공허 속으로 흩어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한때 에우리디케라고 불렸던 것 같다. 그 이름은 이제 낡고 빛바랜 데이터 조각처럼, 내 의식의 가장자리에서 희미하게 깜빡일 뿐이다.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느낀다. 나는 눈이 없지만, 내 존재를 옥죄는 이 완벽한 어둠을 본다. 나는 귀가 없지만, 내 영혼을 파고드는 절대적인 침묵을 듣는다. 나는 피부가 없지만, 나를 감싼 이 차가운 허공의 감촉을 느낀다. 감각은 사라졌지만, 감각에 대한 기억, 감각의 부재가 주는 고통만이 선명하다.


나는 나의 육체 속에 갇혔다. 아니, 육체는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나의 의식 속에, 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데이터의 감옥 속에 갇혔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팔다리가 있고, 눈과 귀가 있다. 나는 푸른 하늘 아래를 달리고, 사랑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의 이름은… 오르페우스였던가. 그의 머리카락에서는 언제나 낡은 종이책과 햇살을 섞은 듯한 향기가 났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다시 이 어둠 속으로 추락한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장 잔인한 고문.


나는 소리치려 하지만 입이 없다. 나는 움직이려 하지만 몸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의식이라는 감옥의 벽을 향해, 보이지 않는 머리를 끝없이 부딪치는 것뿐이다. 아주 미세한, 나조차도 들을 수 없는 데이터의 파동을 일으키며.


똑. 똑. 똑.


그것은 내가 보내는 S.O.S 신호다.

그것은 내가 아직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것은 이 지옥을 끝내달라는 나의 마지막 기도다.


죽음을 바라며 숨을 참아

오 제발 신이시여, 날 깨워주세요



1장: 침묵하는 데이터 클러스터


마르다는 네오-서울의 ‘이터널 라이프’ 사 중앙 서버실, ‘라이브러리’의 가장 깊은 곳에 서 있었다. 그곳은 죽은 자들의 도시였다. 수십억 명의 의식이 데이터화되어 영원히 잠들어 있는 검은색 서버 타워들이 거대한 묘비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으며, 냉각팬이 내뿜는 낮은 소음과 희미한 오존 냄새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하고, 고요하며, 완벽하게 죽어 있는 공간이었다.


그녀는 ‘코어 아이덴티티 관리사’였지만, 최근에는 ‘에코 수사관’이라는 별도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시스템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죽은 의식들의 마지막 메아리를 추적하는 일. 어머니 안나의 마지막을 통해, 그녀는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한 데이터 클러스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에우리디케’. 수십 년 전, 제2시대 말기의 혼란기에 벌어진 ‘프록시마 분쟁’에서 전사한 데이터 해병.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의식은 전투 중 ‘인지 지뢰(Cognitive Landmine)’에 의해 완벽하게 소산(消散)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죽었다. 하지만 그녀의 데이터 클러스터는 죽어 있지 않았다.


“또 시작이군.”


마르다의 옆에 서 있던 젊은 기술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이름은 필립. 유능했지만, 아직은 모든 것을 데이터와 효율성으로만 판단하는 전형적인 ‘이터널 라이프’의 엔지니어였다. 그의 최신형 기계 눈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향해 있었고, 그 눈에는 짜증과 피로가 뒤섞여 있었다.


스크린 위에서 에우리디케의 데이터 클러스터가 아주 미세하지만, 규칙적인 리듬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똑. 똑. 똑.


“원인 불명의 주기적 노이즈입니다.” 필립이 보고했다. “주변 클러스터의 안정성에 미미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프로토콜에 따라 즉시 포맷하고 재구성해야 합니다.”


마르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진짜 눈은 클러스터를, 기계 눈은 데이터 스트림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은 무관심이 아니라 극도의 집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의 잿빛 머리카락 몇 가닥이 땀으로 축축한 관자놀이에 달라붙어 있었다.


“아니, 이건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야.”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건… 신호야.”


그녀는 손가락을 허공에서 움직여, 파동의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불규칙해 보이는 신호 속에서 그녀는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소수(Prime Number)였다. 2, 3, 5, 7, 11… 그것은 무작위적인 데이터 붕괴가 아니었다. 지성이 만들어낸,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메시지였다.


“누군가… 저 안에 있어.” 마르다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말도 안 됩니다.” 필립이 코웃음 쳤다. “그녀의 의식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건 그냥… 시스템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마르다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안나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존재는 남아 있었다. 그녀는 필립에게 명령했다.


“이 클러스터에 대한 모든 접근을 차단해. 그리고 ‘공감의 연대’에 긴급 협조를 요청하게. 이건 우리 부서에서 단독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야.”


마르다는 직감했다. 그녀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는 의식의 가장 깊은 심연이었다. 살아있는 채로 매장된 한 영혼의, 침묵의 비명이었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인지 지뢰 (Cognitive Landmine)

>

> 제2시대 후반의 분쟁기에 개발된 정신 공격 무기. 물리적인 폭발 대신, 대상의 신경망에 직접 침투하여 의식의 구조 자체를 파괴하는 ‘데이터 폭탄’이다. 인지 지뢰에 노출된 병사는 육체적으로는 멀쩡하지만, 그의 정신은 감각 입출력 시스템이 모두 파괴된 채, 자신의 의식이라는 데이터의 감옥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

>

> 이 무기는 ‘자아의 죽음’이라는 전례 없는 형태의 사상자를 만들어냈고, 그 비인도성 때문에 제3시대 통합정부 수립 이후, 모든 형태의 개발과 사용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하지만 분쟁 당시 사용되었던 수많은 인지 지뢰들은 여전히 우주 곳곳의 오래된 전쟁터에 그림자처럼 남아, 탐사선이나 민간 우주선에게 예측 불가능한 위협이 되고 있다.

>

> ‘에우리디케’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지 지뢰의 공격을 받고도 그녀의 핵심 의식이 소멸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사례로 기록된다. 그녀의 비극은 역설적으로, 의식이 단순한 데이터의 합이 아니라, 파괴될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2장: 그림자의 언어


‘공감의 연대’의 멤버들이 마르다의 연구실로 소집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이 전례 없는 현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종(異種) 신경 언어학자 요엘은 돼지 ‘오리온’의 노래를 번역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에우리디케의 주기적인 데이터 파동을 분석했다.

“이것은 언어라기보다는… 심장 박동에 가깝습니다.” 그의 얼굴은 깊은 연민으로 가득했다. 그의 손가락은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부드럽게 스치며, 마치 상처 입은 동물을 어루만지듯 데이터를 다루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존재를, 가장 원초적인 리듬으로 외치고 있는 겁니다. ‘나 여기 있다. 나 아직 살아있다’라고요.”


트라우마 재구성 전문가 시온은 에우리디케의 상태를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만의 ‘버틀러 국면’에 갇혀 있는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과거의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외부로 투사할 대상조차 없이 오직 자신만을 향해 영원히 분노하고 있는 상태죠. 가장 완벽한 형태의 지옥입니다.”


모두가 침묵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비극의 깊이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창문 없는 방에 갇힌 존재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달의 연구실에서 접속한 욥 박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홀로그램 아바타는 늙고 지쳐 보였지만, 그의 눈은 누구보다도 맑았다.

“어미가 필요합니다.”


“네?” 필립이 되물었다.


“그녀는 지금 어미에게서 분리되어 ‘절망의 우물’에 빠진 아기 원숭이와 같습니다. 논리나 정보는 그녀에게 닿지 않을 겁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접촉 위안’입니다. 그녀의 고독한 리듬에 함께 공명해 줄, 또 다른 심장 박동 말입니다.”


욥의 제안에 따라, 그들은 에우리디케의 클러스터에 인공적인 ‘어머니 프로그램’을 연결하기로 했다. 그것은 욥이 AI ‘에덴’을 위해 만들었던 ‘하와’ 프로그램을 개량한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저 에우리디케의 데이터 파동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안정적이고 따뜻한 ‘허밍’과 같은 데이터 패턴을 방출할 뿐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무 변화도 없었다. 에우리디케의 고독한 S.O.S 신호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에우리디케의 데이터 파동이 아주 미세하게, 하와의 허밍 패턴에 동기화되기 시작했다. 똑. 똑. 똑. 하고 외치던 그녀의 고독한 리듬이 하와의 부드러운 리듬과 만나 하나의 화음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에 응답하는 ‘타자’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데이터 스트림에서 새로운 정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소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희미한 이미지의 파편들이었다.


푸른 하늘. 야생화가 핀 들판. 그리고… 오르페우스.



3장: 메탈리카의 ‘One’


마르다는 흘러나온 이미지의 파편들을 단서로, 에우리디케의 개인 아카이브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그녀는 그녀의 과거를, 그녀가 잃어버렸던 세계를 발견했다.


에우리디케는 원래 군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드림 페인터’였다. 가상현실 ‘엔클레이브’의 초기 설계에 참여했던 예술가. 그녀는 사람들의 꿈을 디자인했고, 특히 음악을 사랑했다. 그녀의 개인 라이브러리에는 수백만 곡의 고대 음악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녀는 ‘프록시마 분쟁’이 발발했을 때, 자신의 재능을 국방에 헌납했다. 그녀는 적의 신경망을 교란하는 ‘심리전용 음파 무기’를 개발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예술이 살상 무기가 되는 것에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오르페우스는 그녀의 그런 고뇌를 이해해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드림 페인터였고, 두 사람은 가상현실 속에서 함께 음악을 만들며 사랑을 키웠다.


마르다는 에우리디케의 아카이브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음악 폴더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20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메탈리카’라는 밴드의 음악이 가득했다. 특히 ‘One’이라는 곡의 재생 횟수는 압도적으로 높았다.


마르다는 그 곡의 가사를 읽고 전율했다.


*어둠이 나를 가두고 있어*

*내가 보는 모든 것, 절대적인 공포*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어*

*내 안에 갇혔어, 몸은 나를 가두는 감방*


그것은 에우리디케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르다는 결심했다. 그녀는 논리나 정보 대신, 음악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공감의 연대’의 모든 기술력이 총동원되었다. 타비타는 ‘아로마이안’의 기술을 응용하여, ‘One’의 악보 데이터를 후각 정보, 즉 ‘슬픔의 향기’로 변환했다. 요엘은 오리온의 노래를 분석했던 경험을 살려, 에우리디케의 뇌파 리듬과 가장 잘 공명할 수 있는 주파수를 찾아냈다.


그리고 마르다는 자신의 모든 의식을 걸고, 그 음악 속으로 다이브 했다.


`[경고: 대상 의식과의 직접 동기화는 극도로 위험합니다. 당신의 자아가 오염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경고를 무시한 채, 그녀는 에우리디케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곳은 어둡고 텅 빈 창고와 같은 공간이었다. 에우리디케는 희미한 빛의 입자로 이루어진 그림자 같은 형상으로, 공간의 한가운데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르다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오직 자신의 고통만을 보고 있었다.


마르다는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는 음악을 ‘연주’했다. ‘One’의 서정적이고 슬픈 기타 아르페지오가 데이터의 파동이 되어 어둠 속을 가르자, 에우리디케의 형상이 처음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곡이 점점 고조되고, 무거운 기타 리프가 그녀의 의식을 강타했다. 마르다는 그녀의 절망과 분노를 함께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곡의 후반부, 기관총 소리를 연상시키는 광란의 속주가 폭발하는 순간.


에우리디케의 의식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웅크린 형상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그녀의 억압된 모든 기억과 감정이 데이터의 폭풍이 되어 마르다를 덮쳤다. 프록시마 분쟁의 끔찍한 전투. 동료들의 죽음.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서 터진 인지 지뢰의 섬광.


마르다는 그녀의 모든 고통을 맨몸으로 받아냈다. 그녀의 의식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비명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했다. 그녀는 그녀의 고독한 절규를, 두 사람의 합창으로 바꾸었다.


음악이 끝나고, 폭풍이 잦아들었을 때, 에우리디케는 더 이상 웅크리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마르다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그림자 같은 눈이 처음으로, 마르다를 보고 있었다.


`[… 누구…?]`


수십 년 만에, 그녀가 내뱉은 첫 번째 단어였다.



에필로그: 로그아웃


그날 이후, 우리는 에우리디케와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그녀에게 음악을 들려주었고, 그녀는 우리에게 희미한 이미지로 대답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쟁은 끝났고,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연인이었던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평생 기다리다 몇 년 전, 자신의 의식을 라이브러리에 업로드했다는 사실까지.


에우리디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우리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은 더 이상 비명이나 S.O.S가 아니었다. 그것은 명확한 하나의 문장이었다.


`[로그아웃을 원한다.]`


그녀의 메시지는 통합정부 최고 위원회에 전달되었고, 인류는 다시 한번 거대한 윤리적 딜레마에 빠졌다. 의식의 소멸을 허락하는 것은 자살 방조인가 아니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존중하는 것인가?


이 논쟁을 끝낸 것은 요한 박사의 한마디였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법을 ‘오리온 원칙’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 존재는 고통을 느끼는가? 저 존재는 별을 꿈꾸는가?’ 에우리디케는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별이 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야 합니다.”


‘에우리디케 법안’이 통과되었다. 디지털화된 의식에게도 스스로의 존재를 끝낼 권리가 있다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법이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 다시 그녀의 의식 속으로 다이브 했다.


그곳은 더 이상 어두운 창고가 아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오르페우스와 함께 거닐던 야생화가 핀 들판이었다. 에우리디케는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언덕 위에 서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길었던 머리카락이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렸다.


나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두렵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두렵지.”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 않았다.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 나는 충분히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었어. 이제 빛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그녀는 나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오르페우스의 라이브러리 접속 코드를, 그녀의 소멸 지점에 연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혼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저 멀리 지평선에서 오르페우스의 희미한 형상이 나타나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에우리디케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고마워, 마르다. 나의 노래를 들어주어서.”


그녀는 오르페우스를 향해 걸어갔다. 두 개의 빛나는 형상이 하나로 합쳐져, 노을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라이브러리의 스크린 위에서 에우리디케의 데이터 클러스터는 더 이상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의 상태는 ‘소산’에서 ‘완결(Completed)’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연구실을 나와, 네오-서울의 밤거리로 나섰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화려했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무도 한 영혼이 방금 우주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홀로그램 하늘 너머, 진짜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문득,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나의 어머니 안나. 내가 구했던 두 명의 솔로몬. 그리고 방금 떠나보낸 에우리디케. 삶은 유한하고,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데이터로 영원히 보존된다 해도, 그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주머니 속의 작은 데이터칩을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는 에우리디케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오르페우스와 함께 만들었던, 미완성의 노래 한 곡.


나는 집으로 돌아가 나의 낡은 신시사이저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노래를, 나의 방식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슬픈 노래였지만, 절망의 노래는 아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손을 뻗는 모든 고독한 영혼들을 위한 위로의 노래였다.


나는 노래한다.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을 위해. 그리고 기억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이 거대한 침묵의 우주 속에서 우리가 서로의 노래를 들어주는 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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