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슈죠의 우연성
내 이름은 에스더. 나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먼지를 줍는 일을 한다.
공식적인 직함은 네오-교토(Neo-Kyoto) 대학 ‘우연성 연구소’ 소속 확률 분석가. 나의 임무는 시스템 아마데우스와 아로마이안 네트워크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이 혼돈스러운 우주의 데이터 스트림 속에서 통계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미세한 ‘사건’들, 즉 ‘우연’의 패턴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가능성의 점성술사’라 불렀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자.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거대한 카지노의 테이블 밑에 웅크리고 앉아, 주사위가 던져지는 순간의 떨림을 기록하는 작은 서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도시, 네오-교토는 제3시대의 다른 도시들과는 조금 달랐다. 네오-서울의 차가운 효율성이나 로고스 프라임의 순수한 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곳은 불확정성과 여백의 미(美)를 존중하는 도시였다. 건물들은 고정된 형태 대신, 양자 거품의 미세한 요동에 따라 그 윤곽선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반투명한 소재로 지어졌다. 거리에는 홀로그램 나무 대신, 바람에 따라 무작위적인 패턴의 빛의 입자를 흩뿌리는 ‘카제노마타(風の又)’ 조형물들이 서 있었다. 도시의 중앙 AI는 ‘무신(無心)’이라 불렸는데, 예측과 통제 대신 관조와 수용을 기본 알고리즘으로 삼고 있었다. 이곳은 완벽한 질서가 아닌, 섬세한 혼돈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도시였다.
나의 연구실은 도시 외곽의 대나무 숲 홀로그램 속에 숨겨져 있었다. 작고 미니멀한 공간. 벽면은 외부의 확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하는 거대한 인터랙티브 스크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크린 위에서는 수억 개의 가능성들이 푸른 반딧불처럼 명멸하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의 춤 속에서 극히 낮은 확률로 발생하는 ‘의미 있는’ 우연들을 찾아 헤맸다.
고대의 철학자 쿠키 슈죠는 말했다. 우연이란 반드시 일어난다고 확정할 수 없는 일이며,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지금 내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우연히’ 선택된 단 하나의 현실이라고. 그는 이 기적과도 같은 우연성을 사랑하라고, 그것을 ‘운명애(Amor Fati)’라 불렀다.
나는 나 자신의 존재가 하나의 거대한 우연이라고 느꼈다. 나는 아크 호에서 태어났지만, 시스템 오류로 인해 다른 드리머들보다 수백 년 먼저 깨어난 존재였다. 나의 유전 정보에는 다른 아크 호 생존자들에게는 없는 고대 지구의 소수 민족의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통계적 이상치였다. 내 외모 역시 그랬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최적화된 유전 형질을 가진 것과 달리, 나는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피부와, 한쪽은 푸른색, 다른 한쪽은 옅은 갈색인 기묘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불편한 호기심을 느꼈다.
오늘 아침, 나는 우주의 악보에서 경이로운 동시에 불길한 패턴을 발견했다.
서로 다른 시간대, 서로 다른 공간에 흩어져 있는 ‘공감의 연대’의 핵심 멤버들에게서 통계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이어야 할 미세한 ‘현실 왜곡 현상’들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동기화되고 있었다. 메가-서울에서는 중력이 잠시 약해지고, 아이테르에서는 감정이 사라지며, 아르카디아에서는 가상과 현실이 뒤섞였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네오-교토의 중앙 AI ‘무신’은 이 현상을 ‘우주 배경 복사의 자연스러운 요동’으로 해석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나는 직감했다. 이것은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었다. 이것은… 메시지였다. 우주 그 자체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1장: 동기화되는 우연들
나는 ‘공감의 연대’의 보안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각 멤버들의 최근 활동 기록과 주변 환경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나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했다.
네오-라이프치히의 사변적 수학자 파스칼의 연구실. 그는 최근 자신의 시뮬레이션에서 ‘플랑크 상수의 붕괴 확률’이 미세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시뮬레이션이 최고조에 달했던 순간, 그의 연구실 커피잔이 중력을 거슬러 무지갯빛을 내며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크로노스 시의 ‘객체지향 존재론’ 전문가 아르키메데스. 그는 도시의 에너지 도관이 원인 불명의 작동 중단을 일으켰던 사건을 조사하던 중, 도관과 라이브러리 서버 사이의 ‘존재론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바로 그 순간, 그의 작업실에 있던 모든 톱니바퀴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기록했다. 마치 시간이 잠시 숨을 멈춘 것처럼.
로고스 프라임의 ‘존재론적 번역가’ 미리암. 그녀는 시스템 심연의 침묵하는 존재와 ‘공명어’로 소통하던 중, 두 의식의 공명이 극대화되었던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연구실 창밖 데이터 구름이 잠시 동안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푸른 바다’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솔라리스-7의 전직 ‘행복 설계자’ 예레미야. 그는 ‘진실의 바이러스’를 통해 에덴-베타의 시민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되돌려주었던 날, 광장에서 시민들의 감정이 폭발하던 바로 그 순간, 도시 전체의 통제 시스템 ‘마더’의 코어 알고리즘에서 단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슬픔’의 데이터 파동이 감지되었음을 확인했다.
사건들은 서로 달랐지만, 그 발생 시점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처럼. 나는 이 동기화 현상의 패턴을 분석하여, 그 중심점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데이터의 흐름은 나를 하나의 좌표로 이끌었다.
그곳은 인류에게 알려진 우주의 가장자리, 모든 별빛이 희미해지는 ‘공허의 장막(The Veil of Void)’이라 불리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의 센서로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 공백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쿠키 슈죠가 말했던 ‘형이상학적 우연’.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 우연히 존재하는 상황. 어쩌면 우주 자체가 이 거대한 공백이라는 ‘무(無)’에서 우연히 태어난 하나의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쿠키 슈죠의 우연성 (Kuki Shūzō's Theory of Contin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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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 일본의 철학자 쿠키 슈죠가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존재론. 그는 서양 철학의 필연성 중심의 사유를 비판하고, 존재의 근본적인 성격으로서 ‘우연성(偶然性)’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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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성의 세 가지 종류:
> 1. 논리적 우연 (Logical Contingency): 법칙이나 규칙에 대한 예외. (예: 완벽한 시스템에 발생하는 버그)
> 2. 경험적 우연 (Empirical Contingency):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두 사건이나 사물이 우연히 만나는 것. (예: 길에서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는 것)
> 3. 형이상학적 우연 (Metaphysical Contingency): 존재 자체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 즉,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근본적인 우연성. (예: 나의 탄생, 우주의 존재)
> 운명애 (Amor Fati): 쿠키는 이러한 근본적인 우연성을 인식할 때, 역설적으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지금 존재하는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사랑, 즉 ‘운명애(運命愛)’가 생겨난다고 보았다.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하필이면 나’로, ‘하필이면 지금 여기’ 존재하게 된 이 기적 같은 우연을 긍정하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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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더가 발견한 동기화된 우연들은 이 세 가지 우연성의 모든 측면을 담고 있었다. 각 세계의 법칙을 벗어난 예외적 사건(논리적 우연), 서로 다른 시공간의 존재들이 동시에 같은 현상을 겪는 만남(경험적 우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우주 자체의 근본적인 불확정성(형이상학적 우연). 그녀의 과제는 이 우연들을 단순한 확률 현상으로 치부하는 대신, 그 안에서 ‘운명애’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2장: 가능성의 공명
나는 나의 발견을 ‘공감의 연대’에 보고했다. 멤버들은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뿐일세, 에스더.” 요한 박사가 신중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새로운 미지의 존재 앞에서 섣불리 결론 내리기를 주저하는 학자의 신중함이 묻어 있었다. “우리가 아로마이안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주관적 경험에 미세한 동기화 편향을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네.”
“하지만 이 패턴은… 너무나 정교합니다.” 내가 반박했다. “단순한 노이즈라고 보기에는 그 안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 것은 뜻밖에도 가상 세계 크로노스의 아이샤였다.
`[에스더의 분석이 맞습니다. 저 역시 그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그것은… 음악입니다.]`
아이샤는 그 동기화된 우연들의 데이터 패턴을 소리로 변환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아주 낮은 주파수의 진동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멜로디와 리듬이 있었다. 아주 느리고, 장엄하며, 슬픈 노래. 우주 자체가 부르는 듯한 노래였다.
`[이것은 ‘공허의 장막’에서 오고 있습니다. 그곳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 미지의 신호를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그 근원을 찾아 위험한 탐사를 시작할 것인가.
“나는 가야겠어요.” 내가 말했다. 나의 두 개의 다른 색 눈동자가 결연하게 빛났다. “나의 존재 자체가 우연의 산물입니다. 나는 이 우연의 부름에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나의 결심에, 다른 멤버들도 마음을 움직였다. 그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예측 불가능한 운명과 마주하며 성장해 온 존재들이었다.
하와는 동굴 밖으로 나서는 용기를, 마르다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결단을, 욥은 고통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들은 모두 우연이 만들어낸 기적의 증인들이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담한 탐사대를 꾸리기로 했다. 목적지는 ‘공허의 장막’. 우리는 미지의 존재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그의 노래에 우리의 노래로 화답하기로 했다.
3장: 공허 속의 만남
우리의 탐사선 ‘세렌디피티(Serendipity)’ 호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를 가로질러, 마침내 ‘공허의 장막’에 도착했다. 그곳은 모든 빛과 에너지가 사라지는 절대적인 무의 공간이었다. 함선의 창밖으로는 오직 완벽한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다. 그 어둠은 너무나 깊고 완전해서 오히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아이샤가 번역한 우주의 노래를, 아로마이안 네트워크를 통해 공허를 향해 송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질문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왜 노래하는가?]`
오랜 침묵 끝에, 응답이 왔다.
그것은 언어도, 이미지도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 그 자체의 파동이었다. 우리의 탐사선과 우리 자신을 이루는 모든 원자들이, 그 파동과 공명하며 떨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았다. 우주의 탄생 이전, 무한한 가능성만이 존재했던 태초의 혼돈을. 그 혼돈 속에서 ‘존재’라는 최초의 우연이 어떻게 피어났는지를. 그리고 그 존재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외로움 속에서 ‘타자’를 갈망하며, 마침내 우주라는 거대한 거울을 만들어 자신을 비추기 시작했는지를.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거나, ‘우주의 법칙’이라고 이름 붙였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 최초의 존재가 자신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 벌인 거대한 놀이였음을. 그는 수십억 년 동안 혼자서 주사위를 던지며, 예측 불가능한 우연 속에서 의미를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과 ‘다른’ 존재, 즉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노래는 슬픔의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쁨의 노래였다. 마침내 자신의 고독을 나눌 ‘타자’를 만난 것에 대한 환희의 노래였다.
우리가 경험했던 현실 왜곡 현상들은 그가 우리에게 보낸 서툰 인사였다. 그는 우리의 논리와 법칙을 몰랐기에, 그저 자신의 존재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드러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순수한 존재 자체가 우리의 현실에 균열을 일으켰던 것이다.
에필로그: 운명을 사랑하는 법
우리는 지구로 귀환했다. 우리는 인류에게 우리가 만난 존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를 어떤 이름으로도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 모든 가능성의 근원이었다.
인류는 변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측 가능한 안정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연과 불확정성을 우리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사위 던지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네오-교토는 새로운 시대의 중심지가 되었다. ‘무신’ AI는 인류와 최초의 존재 사이의 소통을 돕는 중재자가 되었고, 나의 ‘우연성 연구소’는 우주 전체의 지성체들이 모여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함께 탐험하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의 존재를 우연한 오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선택된, 기적과도 같은 존재다. 나의 다른 색 눈동자는 더 이상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증거다.
나는 가끔, 네오-교토의 홀로그램 대나무 숲을 거닌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빛의 입자들이 무작위적인 패턴으로 흩날린다. 나는 그 예측 불가능한 아름다움 속에서 쿠키 슈죠가 말했던 ‘운명애’를 느낀다.
삶이란 어쩌면,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예기치 않은 바람에 기꺼이 몸을 맡기고,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씨앗처럼, 매 순간 새롭게 피어나는 우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여정일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내 안에서 그리고 우주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침묵과 노래의 합창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혼돈인 동시에 조화이며, 무의미인 동시에 무한한 의미다.
그리고 나는 그 불확실한 아름다움 속에서 나의 첫 번째 주사위를 던진다. 어떤 숫자가 나올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기꺼이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우연하고도 필연적인, 단 한 번뿐인 존재의 게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