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오늘 고양이고 내일은 불꽃이다

솔로몬 박사의 작은 진료실

by 김경훈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기본 설정값대로 살아가는 안락한 사람들, 그리고 매일 아침 자기 얼굴조차 경매에 부쳐버리는 데 여념이 없는 내 친구 미리암 같은 부류.


그리고 나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도 한숨을 쉬고 있는 에스더다.


나는 지금 솔로몬 박사의 진료실 문을 열기 직전이다. 문을 열기 싫다. 왜냐하면 이 문은 데이터로 만들어진 홀로그램이 아니라,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진짜 나무로 만들어진 '물리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나무 문은 무겁고, 삐걱거리고, 결정적으로 내 손에 옹이의 거친 감촉을 남긴다. 나는 이 '쓸데없이 리얼한' 감각이 싫다.


하지만 나는 이 문을 열어야만 한다. 내 친구 미리암이 또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아니, 그녀 자신이 사고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박사님! 계세요? 저 또 왔다고요!”


나는 문을 쾅, 하고 밀고 들어갔다. 나무 먼지가 훅 끼쳐왔고, 나는 요란하게 재채기를 했다.

“에취! 제기랄, 이놈의 아날로그 먼지 알레르기!”



1장: 아바타 수집가와 흔들리는 튤립


솔로몬 박사의 진료실은 여전히 시대착오적이었다. 네오-예루살렘의 모든 공간이 나노봇으로 매끄럽게 마감된 것과 달리, 이곳은 온통 낡고 불완전한 것들로 가득했다. 벽난로에서는 인공 장작이 (비효율적으로) 따뜻한 빛을 내며 타닥거리고 있었고, 낡은 가죽 소파는 누군가의 엉덩이 자국이 그대로 파여 있었다. 공기 중에는 묵은 종이 냄새와, 박사님이 끓이고 있는 정체불명의 차 냄새가 섞여 있었다. 영양 페이스트의 완벽한 풍미 데이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불편하고도… 이상하게 편안한 냄새였다.


“먼지 알레르기가 아니라, 완벽함에 중독된 네 신경계가 진짜 감각을 거부하는 소리겠지.”


흔들의자에 앉아 두꺼운 종이책을 읽고 있던 솔로몬 박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푹 꺼진 두 눈은 돋보기안경 너머에서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입가에는 언제나 나를 놀리는 듯한 짓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수백 년 된 진짜 캐시미어로 짠 듯한 낡은 카디건을 입은 모습은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시대가 아니라 마치 고대 박물관에서 걸어 나온 유물 같았다.


“제 신경계는 완벽하게 안정적이라고요!” 내가 빽 소리쳤다. “문제는 미리암이에요! 걔 좀 어떻게 해주세요, 박사님.”


“미리암이라.” 박사는 책장을 넘기며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난주에 왔을 땐 자기 아바타가 너무 평범해서 고민이라더니.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그게 문제라고요! 걔, 어제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불타는 여우였어요. 오늘은요? 오늘은 2미터짜리 걷는 튤립이랍시고 학교에 나타났다고요! 잎사귀로 인사를 하는데, 내가 정말…!”


나는 말문이 막혀 씩씩거렸다. 미리암은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요즘 내가 누구와 우정을 나누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에덴 아카데미에 매일 다른 아바타로 접속했다. 월요일에는 고대 지구의 팝스타를 완벽하게 복제한 모습으로, 화요일에는 기계와 유기체가 뒤섞인 기괴한 사이보그로, 수요일에는 아예 인간의 형태를 포기한 빛의 구체로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 목소리, 심지어 성별까지 매일 바뀌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게 제3시대 아이들의 창의적인 자기표현이라며 오히려 격려했다. 하지만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어제 그 불타는 여우에게 했던 비밀 이야기를, 오늘 이 걷는 튤립에게 이어서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친구 미리암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박사님.” 내가 간절하게 말했다. “걔는 정체성 혼란이에요. 시스템이 허용하는 모든 자아를 수집하는 ‘아바타 수집가’라고요. 이대로 두면 걔는 완전히 부서져 버릴 거예요. 걔 좀 고정시켜 주세요. 예전의 그 갈색 머리에 주근깨 있던, 웃을 때 코를 찡긋거리던 그 미리암으로요.”


솔로몬 박사는 마침내 책을 덮었다. 그의 주름진 눈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흠. 흥미로운 문제로군.” 그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에스더, 너는 지금 미리암이 ‘부서졌다’고 했느냐, 아니면 ‘흘러가고 있다’고 했느냐?”


“그게 무슨 소리예요?”


“고정된 것이 부서지는 것이지, 흘러가는 것은 부서지지 않는 법이란다.”


박사는 나에게 낡은 찻잔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맑은 녹색 차가 담겨 있었다.


“너는 지금 ‘진짜’ 미리암을 돌려달라고 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묻지. 무엇이 ‘진짜’ 미리암이지? 그녀가 태어날 때 시스템이 무작위로 할당해 준 그 육체 데이터가 그녀가 매일 스스로 선택하는 모습보다 더 ‘진짜’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


그의 질문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대답을 주는 대신, 더 큰 혼란을 안겨주는 것. 나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당연하죠! 그 주근깨 얼굴이 우리가 10년 동안 모든 걸 함께 겪어온 얼굴이니까요! 지금 저 튤립은 내가 아는 미리암이 아니라고요!”


“흐음.” 박사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고대 지구의 한 철학자는 ‘테세우스의 배’라는 질문을 던졌지. 낡은 배의 널빤지를 하나씩 새것으로 교체하다가 마침내 모든 부품이 바뀌었을 때, 그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일까?”


“그게 지금 이 얘기랑 무슨 상관인데요!”


“너의 친구 미리암은 매일 자신의 널빤지를 바꾸고 있구나. 흥미롭게도 말이야. 그런데 에스더, 너는 그 배의 ‘널빤지’와 우정을 맺었느냐, 아니면 그 배의 ‘항해’와 우정을 맺었느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박사의 말은 언제나 이렇게 정곡을 찔렀다. 나는 미리암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걸까, 아니면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걸까.



> h의 아카식 레코드: 테세우스의 자기(Teseus's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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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의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제3시대의 정체성 문제에 적용한 철학적 개념. 시스템 아마데우스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신체(아바타), 기억(데이터), 심지어 성격(알고리즘)까지 자유롭게 수정, 교체,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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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 인해 ‘나’의 동일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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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리적 연속성 (육체): 나의 ‘진짜’ 몸이 나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가상현실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물리적 육체는 생명 유지를 위한 껍데기로만 여긴다.

> 2. 심리적 연속성 (기억): 나의 ‘기억’이 나인가? 하지만 기억 또한 편집, 삭제, 이식이 가능하다. (참고: ‘시온’ 박사의 트라우마 재구성, ‘에제키엘’의 김밥 기억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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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암과 같은 ‘아바타 유동층’의 등장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매 순간 ‘새로운 나’를 선택한다. 그들에게 ‘나’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Process)’ 그 자체다. 이들에게 ‘너 진짜 모습이 뭐야?’라고 묻는 것은 강물에게 ‘너 왜 어제랑 똑같이 흐르지 않아?’라고 묻는 것과 같은 우문(愚問)일지도 모른다.



2장: 일몰과 두려움


“저는… 모르겠어요.” 나는 결국 항복했다. 내 목소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나는 낡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냥… 무서워요.”


“무엇이?” 박사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미리암이 저렇게 계속 변하다가… 언젠가 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릴까 봐요. 제가 아는 미리암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까 봐 무서워요.”


이것이 나의 진심이었다. 나의 분노는 사실, 상실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주근깨 소녀가 이 화려하고 기괴한 아바타들의 홍수 속에서 익사해 버릴 것만 같았다.


솔로몬 박사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의 진료실 창문은 홀로그램 스크린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짜 유리였고, 창밖으로는 (놀랍게도) 박사가 직접 가꾸는 작은 옥상 정원이 보였다. 진짜 흙, 진짜 식물들.


“저것을 보렴, 에스더.” 그가 창밖을 가리켰다.


창밖으로는 네오-예루살렘의 인공 태양이 지고 있었다.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일몰이었다. 하늘은 옅은 분홍색에서 시작해, 오렌지색, 진홍색, 그리고 마침내 깊은 남색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단 한순간도 같은 색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아름답지 않느냐?”


“네… 뭐, 매일 보는 거니까요.”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너는 저 일몰을 사랑하지. 그렇지?”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일몰이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그것이 영원히 저 진홍색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일까?”


나는 박사의 의도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일몰은 단 한순간도 멈춰있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란다. 그것은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고 있지.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단다. 너는 일몰에게 ‘제발 멈춰, 네 진짜 모습은 저 오렌지색이란 말이야!’라고 소리치지 않잖니.”


솔로몬 박사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맑은 눈동자에, 시시각각 변하는 일몰의 모든 색이 담겨 있었다.

“미리암도 마찬가지란다. 너는 그 아이의 ‘모습’이라는 낡은 널빤지에 집착하느라, 그 아이의 ‘존재’라는 아름다운 항해를 놓치고 있는지도 몰라. 네가 사랑했던 것은 그 주근깨라는 껍데기였느냐, 아니면 그 껍데기 속에서 너와 함께 웃고 울었던 그 영혼의 ‘흐름’이었느냐?”


“하지만… 하지만 걔는 튤립이라고요!”


“하하하!” 박사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래, 오늘은 튤립이겠지! 내일은 또 뭐가 될지 모르고. 얼마나 멋진 일이냐? 너의 친구는 너에게 매일 새로운 우주를 보여주고 있는 게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매일 똑같은 지도만 고집하고 있는 게냐?”


그의 말은 비수 같았지만, 동시에 따뜻했다. 나는 내가 미리암을 걱정했던 것이 아니라, 실은 그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이해하려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는 틀 속에 그녀를 가두려 했던 것이다.



에필로그: 튤립에게 말을 거는 법


솔로몬 박사는 나에게 ‘처방전’이라며 낡은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 위에는 약물이나 알고리즘 코드 대신, 연필로 휘갈겨 쓴 짧은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다음에 미리암을 만나면, ‘너 왜 이래?’라고 묻는 대신, ‘그건 어떻게 한 거야?’라고 물어보렴.]`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박사는 그저 윙크를 할 뿐이었다.


다음 날, 나는 에덴 아카데미의 가상 공원으로 갔다. 미리암은 그곳에 있었다. 오늘의 그녀는 어제보다 더 기괴했다. 그녀는 중력을 무시한 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수십 개의 작은 거울 조각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형상이었다. 각각의 거울 조각은 주변의 풍경을 제멋대로 비추며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수백 개의 작은 유리종이 동시에 울리는 듯 맑았다.


`[안녕… 에스더.]` 그녀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렸다. `[… 이것도… 싫어할 거지? 미안해. 내일은 다시 주근깨로…]`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깊은 슬픔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녀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솔로몬 박사의 처방전을 떠올렸다. 나는 거울로 이루어진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내 모습이 수백 개로 조각나 그녀의 몸에 비쳤다.


“아니.” 내가 말했다. “싫지 않아. 그보다… 이거 굉장하다. 대체 이 실시간 환경 반사 셰이더(Shader)는 어떻게 구현한 거야? 렌더링 부하가 엄청날 텐데.”


미리암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녀의 몸을 이루고 있던 거울 조각들이 놀란 듯 일제히 나를 향했다. 수백 개의 내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녀의 목소리가 기쁨으로 가늘게 떨렸다. `[이건 말이야, 양자 알고리즘을 응용한 건데, 내가 어젯밤에 코딩한 거야! 이리 와 봐. 이쪽 각도에서 보면 빛이 완전히 다르게 부서져!]`


미리암, 아니, 거울로 된 소녀가 나를 이끌고 빛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신이 나서 자신이 구현한 새로운 기술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주근깨 소녀의 활기와 열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그녀는 변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자라나고 있었을 뿐이다. 껍데기는 매일 바뀌었지만, 그 안의 영혼은 여전히 나의 친구, 미리암이었다.


나는 더 이상 튤립이나 불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모든 변화를,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는 눈부신 일몰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있잖아, 미리암.” 내가 말했다. “내일은 혹시, 흑표범으로 변신해 볼 생각 없어? 너랑 같이 시뮬레이션 정글을 달리면 진짜 멋있을 것 같은데.”


`[흑표범? 와! 그거 멋지겠다!]` 수백 개의 유리종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나의 친구를, 아니, 새롭게 태어난 나의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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