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는 현대인의 성지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상의 속박을 벗고 구원받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성지라 불리는 대부분의 장소는 사실 잘 설계된 소비의 무대일 뿐이다. 우리는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우리는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라는 이름의 상품을 구매한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개인은 익명의 데이터가 되어 흐른다. 그리고 때로, 시스템이 예측하지 못한 버그가 발생한다. 프로토콜이 다른 데이터가 유입되었을 때, 시스템은 잠시 멈춘다. 이것은 그 찰나의 시스템 오류, 즉 한 아이의 배설물이 천연기념물이라는 이름의 서버를 다운시킨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1. 용의 머리, 그 지질학적 스냅사진
10월의 제주는 기만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다. 하늘은 비현실적으로 파랬고, 공기는 육지에서는 맡을 수 없는 축축한 소금기와 야생화의 단내가 뒤섞여 있었다. 김경훈은 용머리해안의 입구에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대학원생 박민준과 안내견 탱고가 있었다. ‘자연유산의 감각적 접근성에 관한 연구’라는 다소 현학적인 이름의 학회 답사였다.
민준이 그의 곁에서 풍경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선배님, 여긴... 마치 용의 머리가 바다로 뛰어드는 순간을 포착한 지질학적 스냅사진 같습니다. 수천만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사암층이 파도에 깎여 기괴한 곡선을 그리고 있어요. 전체적으로 검고 축축한 색입니다."
김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볼 수 없었지만, 15년 간의 기억 속에 저장된 ‘제주’, ‘바다’, ‘현무암’의 데이터를 조합해 머릿속에서 풍경을 렌더링하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벽을 짚었다. 파도가 빚어낸 거친 질감, 그 위에 달라붙은 미끈한 해초의 감촉. 그의 손끝이 민준의 시각 정보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가자, 탱고.”
그들은 인파의 강물에 합류했다. 연휴의 마지막 날, 용머리해안은 인간으로 포화상태였다. 좁은 탐방로는 거대한 인간 컨베이어 벨트가 되어,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느릿느릿 실어 날랐다. 여기저기서 중국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억양의 사투리가 그리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소음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2. 프로토콜의 붕괴
사건은 그 인간 컨베이어 벨트가 잠시 멈춰 섰을 때 일어났다. 정체의 원인을 파악하려던 찰나, 탱고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녀석의 코가 불안하게 씰룩였다. 김경훈의 발치에서 녀석의 몸 전체가 ‘위험’ 혹은 ‘이상’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공기의 흐름이 변했다. 짠 내 섞인 바람에, 이질적이고 불쾌한 냄새가 실려 왔다.
“아, 미치겠다. 진짜….”
옆에 선 민준의 목소리가 혐오감으로 낮게 잠겼다. 그의 젊은 얼굴은 분노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김경훈이 물었다.
민준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눈앞의 광경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저기... 중국인 관광객 같은데,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 바지를 내리고... 지금 여기서... 일을 보게 하고 있습니다.”
김경훈의 얼굴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린 채, 주변의 모든 감각 정보에 집중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처음에는 단순한 불평이었던 소리가 이제는 경악과 노골적인 비난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누군가 혀를 ‘쯧쯧’ 차는 소리, 스마트폰 카메라의 ‘찰칵’ 하는 날카로운 기계음. 그리고 이 모든 소음의 한가운데에서 아이의 배설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축축하고 둔탁한 소리.
“다 끝났나 본데요.”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상에... 물티슈로 닦고는... 그걸 그냥 바닥에 버리고 갑니다. 그냥 가요. 아무렇지도 않게.”
김경훈은 생각했다. 이것은 악의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프로토콜의 문제다. ‘천연기념물에서는 용변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 공간에 접속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프로토콜이다. 하지만 저 여성에게, 이 공간은 ‘천연기념물’이라는 이름의 서버가 아니라, 그저 아이가 배변 신호를 보낸 ‘어떤 장소’ 일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시스템 안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문제는 두 개의 다른 프로토콜이 충돌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충돌을 중재해야 할 시스템 관리자, 즉 수십 명의 관광객을 혼자 인솔하는 가이드는 저 멀리서 무력하게 손짓만 하고 있었다.
3. 데이터의 잔해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이 시스템 충돌의 추악한 결과물이었다. 데이터의 잔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배설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이름의 완벽한 데이터베이스를 오염시키는 치명적인 악성 코드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며 지나갔고, 그들의 얼굴에는 불쾌함과 함께,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은밀한 우월감이 스쳐 지나갔다.
“저건….” 민준이 말을 멈췄다. 그는 ‘야만’이라는 단어를 삼켰다.
김경훈이 대신 말했다. “저건 ‘관리의 부재’입니다. 무비자 입국, 저가 단체 관광. 우리는 그들을 데이터 덩어리로만 취급했지, 우리와 다른 프로토콜을 가진 인간으로 대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곳은 당신들의 안방 화장실이 아니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용 설명서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셈이죠.”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비난이 아닌, 시스템 설계자로서의 냉정한 분석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정보 접근성이란 단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규칙과 맥락을 어떻게 공유하고 체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4. 지워지지 않는 주석
대구로 돌아온 며칠 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 앉아 답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탱고는 그의 발치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그는 용머리해안의 지질학적 특성과 탐방로의 물리적 접근성에 대해 유려한 문장들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계속해서 멈췄다.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수천만 년의 시간이 빚어낸 사암층이 아니라, 그 위에 남겨졌던 한 아이의 배설물이었다.
그것은 보고서에 쓸 수 없는 데이터였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데이터이기도 했다. 그는 결국 쓰던 문장을 모두 지웠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 점자 기록계에, 이 사건에 대한 짧은 주석을 남기기 시작했다.
*‘제목: 용변 프로토콜에 대한 소고.
천연기념물이라는 기호는 보편적 정보가 아니라, 특정 문화권 내에서 합의된 로컬 데이터에 가깝다. 프로토콜이 다른 사용자 유입 시, 시스템은 충돌한다. 관리자는 부재했고, 사용자는 오류를 인지하지 못했다. 남겨진 것은 데이터의 잔해와, ‘문명’이라 믿었던 우리들의 오만함뿐. 진정한 접근성이란, 단순히 길을 여는 것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을 어떻게 번역하고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결론: 그날 용머리해안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은 풍경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었다.’*
그는 기록을 마쳤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이 주석이 자신의 공식적인 보고서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중요한 이야기는 어쩌면 이렇게 각주나 미주(尾註) 속에, 혹은 삭제된 문장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