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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강이 흐르는 소리

밤의 먹, feat. 잡귀채신

by 김경훈

어둠. 눈을 가진 자들에게 그것은 빛의 부재이자, 모든 형태와 색이 소멸하는 종말의 상태다. 그들은 어둠을 두려워하고, 서둘러 인공의 빛으로 그 공백을 메우려 한다. 그러나 나에게 어둠은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충만이다. 그것은 시각이라는 가장 폭력적인 감각이 걷힌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세상의 맨얼굴이다. 어둠 속에서 소리는 더 명료해지고, 냄새는 더 깊어지며, 감촉은 더 섬세한 언어가 된다. 이것은 가장 완전한 어둠 속에서 가장 선명한 빛을 발견한 어느 하루에 대한 기록이다.



1. 어둠으로의 초대


10월의 목요일 오후, 나는 대구 중구의 오래된 골목길에 서 있었다. 가을비가 내린 뒤라,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으며 아스팔트와 젖은 흙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내 곁에는 안내견 탱고가 낯선 공간의 모든 냄새 정보를 수집하느라 코를 바쁘게 킁킁거리고 있었다. 나는 ‘묵향산방(墨香山房)’이라는 이름의 작은 서예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를 이곳으로 초대한 사람은 자신을 ‘잡채귀신’이라 칭하는 시인이었다.


그녀의 시 ‘밤의 먹’에 대한 나의 짧은 감상평을 우연히 읽고, 자신의 작업실로 나를 초대했다. ‘보이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내 시의 훌륭한 독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메시지는 도전적이면서도 기묘한 끌림이 있었다.


‘드르륵.’ 낡은 나무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짙은 먹향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검은 냄새가 아니었다. 잘 마른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의 냄새, 오래된 종이의 냄새, 그리고 차가운 돌의 냄새가 섞인, 복합적이고 명상적인 향기였다.


“작가님, 환영합니다.”


목소리는 맑고 낮았다. 나는 그녀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손은 가늘었지만, 악수하는 힘은 단단했고 손바닥에는 글씨를 쓰는 사람 특유의 굳은살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의 모습을 그렸다. 아마도 단아한 단발머리에, 먹물 자국이 희미하게 묻은 편안한 작업복 차림,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을 가졌을 터였다.


“들어오시지요. 오늘, 당신에게 ‘밤의 먹’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들려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이 젊은 시인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고민하는 보기 드문 종류의 창작자였다.


2. 검은 강을 만드는 소리


서예실은 극도로 미니멀했다. 나는 공간의 울림을 통해, 이곳에 불필요한 사물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낮은 나무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바닥에 정좌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탱고가 내 발치에 몸을 말고 눕는 부드러운 마찰음만이 들렸다.


“이제, 검은 강을 만들겠습니다.”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새로운 소리가 시작되었다. ‘사각, 사각….’ 벼루 위에서 먹을 가는 소리였다. 그것은 거칠지 않았다. 잘 마른 모래가 바람에 쓸리는 듯, 결이 고운 입자들이 서로의 몸을 부비며 내는 명상적인 소리. 나는 눈을 감았다. 그 소리는 단순한 마찰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이 분해되는 소리였고, 단단한 고체였던 침묵이 유려한 액체의 언어로 변해가는 과정의 기록이었다.


시인은 벼루에 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먹향이 한층 더 짙게 피어올랐다. 나는 이 과정을, 내 연구에 빗대어 생각했다. 먹(墨). 그것은 가능성이 응축된, 방대한 양의 비정형 데이터 덩어리다. 먹을 가는 행위는 그 데이터 속에서 의미 있는 패턴과 맥락을 찾아내고 정제하는 지루하고도 성실한 연구의 과정과 닮았다. 닳아 없어짐으로써, 비로소 쓰이고 읽히는 것. 연구자의 삶 또한 그러했다.


‘사각, 사각….’ 소리는 계속되었다. 검은 강이 소리를 내며 깊어지고 있었다.



3. 비백(飛白), 그 공백의 증거


얼마나 지났을까. 먹 가는 소리가 멈췄다. 완벽한 침묵. 나는 그녀가 숨을 고르며, 붓에 먹물을 고요히 적시는 모습을 상상했다. 내 모든 신경이 그녀의 다음 움직임을 향해 있었다.


‘스윽-.’


붓이 화선지 위를 스치는 소리. 그것은 찰나였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시작의 망설임, 나아가는 속도, 그리고 멈춤의 단호함.


“첫 획입니다.” 그녀가 속삭였다. “그리고 여기, ‘비백(飛白)’이 생겼습니다.”


나는 물었다. “비백… 이란 무엇입니까?”


“붓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먹물이 종이에 다 묻지 못하고 군데군데 희끗하게 비어 있는 자국입니다. 거칠지만, 제 붓의 힘과 속도가 그대로 기록된 흔적이죠.”


그 순간, 나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 웃음소리에, 그녀가 의아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 그것은 빈 공간이 아니군요, 작가님.” 내가 말했다. “그것은 데이터입니다.”


“데이터…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비백은 ‘이미지의 부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보의 존재’입니다. 붓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어떤 압력으로, 어떤 각도로 지나갔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정직한 메타데이터(Metadata)죠. 저는 글씨를 볼 수 없지만, 작가님의 설명과 저 붓질 소리만으로도, 비백이 생긴 부분에서 당신의 에너지가 폭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에게, 저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먹으로 채워진 부분이 아니라, 바로 그 비어 있는 부분입니다.”


나의 말에, 그녀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탱고가 잠꼬대처럼 작게 낑낑거렸다.



4. 어둠을 읽다


“만져보시겠습니까?” 잠시 후, 그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마르지 않은 먹이 묻지 않도록, 내 손을 잡아 조심스럽게 화선지 위로 이끌었다. 내 손끝이 종이의 얇고 섬세한 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붓이 지나간 자리를 더듬었다. 축축하고 서늘한 먹물의 감촉. 그리고 그녀가 ‘비백’이라 말했던 바로 그 부분. 그곳에서 나는 먹의 축축함 대신, 종이의 건조한 맨살과, 그 위를 스치고 지나간 붓털의 거친 흔적을 느꼈다. 나는 지금, 내 손가락으로, 그녀의 속도와 에너지를 읽고 있었다.


그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시각을 잃은 대신,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읽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오늘, 나는 서예라는 가장 시각적인 예술 속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비시각적 정보를 발견했다.


나는 손을 떼고, 시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마도 놀라움과 함께 지적인 희열이 섞인,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을 터였다.


돌아오는 길, 나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렸다. ‘어둠을 맑힌다.’ 나는 이제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어둠을 빛으로 몰아낸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더 깊고 투명한 질서를 발견해 낸다는 뜻이었다. 시각이라는 가장 강력한 빛이 사라진 나의 어둠 속에서 나는 오늘, 검은 강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고, 비어 있는 공간의 명백한 증거를 읽었다. 나의 어둠은 그렇게 조금 더 맑아져 있었다.



참고문헌

https://brunch.co.kr/@jabche/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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