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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유니버스

당신의 최애 김밥은 무엇인가요?

by 김경훈


백화점 지하 1층의 명란 아보카도 김밥


어제, 나는 백화점 지하 1층 푸드코트라는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미식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름하여 ‘명란 아보카도 김밥’. 평소 나의 미각 레이더는 ‘김밥 = 참기름 냄새 + 단무지 + 햄’이라는 고전적인 공식에 고정되어 있었건만, 이 녀석은 달랐다. 짭조름한 명란과 부드러운 아보카도의 예상치 못한 조합은 마치 클래식 연주회장에서 갑자기 EDM 파티가 열린 듯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옆에서 얌전히 엎드려 있던 탱고 녀석도 코를 킁킁거리며 미지의 식재료에 대한 탐구욕을 불태웠다. 나는 녀석에게 “미안하지만 이건 네 스타일이 아닐 거야”라고 속삭이며, 마지막 남은 한 조각까지 경건하게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김밥이라는 단순한 음식 속에도, 내가 아직 탐험하지 못한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1. 김밥집 사장님의 애증: 돈가스 김밥


모든 김밥은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어떤 김밥은 다른 김밥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돈가스 김밥’이다. 바삭하게 튀겨낸 돈가스를 통째로 넣고 마는 그 과정은 김밥 장인의 혼을 쏙 빼놓는 고난도의 퍼포먼스다. 손이 많이 가니 당연히 사장님들은 싫어한다. 하지만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메뉴판 한구석을 내어준다.


나는 돈가스 김밥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저 돈가스 김밥 같지 않을까.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듯하고 맛있어 보이지만, 정작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아내야 하는지. 세상 모든 ‘있어 보이는’ 것들의 이면에는 김밥집 사장님의 깊은 한숨 같은 고단함이 숨어있는 법이다.



2. 호불호의 영역: 참치 김밥과 치즈 김밥


세상에는 ‘국민 김밥’이라 불리는 녀석들이 있다. 참치 김밥과 치즈 김밥. 이 둘은 마치 아이돌 그룹의 센터처럼, 김밥계의 주류를 형성하며 막강한 팬덤을 자랑한다. 하지만 나는 고백한다. 나는 그 둘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참치 김밥의 질척이는 마요네즈와, 치즈 김밥의 느끼하게 녹아내린 슬라이스 치즈는 나의 미각 시스템과 심각한 충돌을 일으킨다. 모두가 “맛있다!”를 외칠 때, 나 홀로 고개를 젓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입맛이 그렇다는데.


나의 이 확고한 ‘김밥 불호’는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방식과 닮아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에 무조건 편승하기보다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때로는 과감히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비록 그것이 나를 ‘비주류’로 만들지라도, 내 취향과 신념을 지키는 것은 꽤나 중요한 문제다. 탱고 녀석도 자기가 싫어하는 사료 앞에서는 단호하게 고개를 돌리지 않던가.



3. 단순함의 미학: 마약 김밥과 진미채 김밥


화려함만이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단순함이 더 강렬한 법. 부산에서 한때 나를 홀렸던 ‘마약 김밥’이 그랬다. 얇은 김과 밥, 그리고 그 안에 달랑 한 줄 들어간 매콤한 무말랭이. 단출하기 짝이 없는 구성이었지만, 그 중독성은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학교 앞 분식집의 최고 인기 메뉴인 ‘진미채 김밥’도 마찬가지다. 짭짤하고 매콤하게 볶은 진미채 하나가 김밥 전체의 풍미를 좌우한다. 복잡한 재료 없이도, 핵심 재료 하나만으로 승부하는 그 배짱. 나는 이런 김밥들에게서 ‘선택과 집중’의 미학을 배운다. 인생이라는 김밥을 말 때도, 너무 많은 재료를 욕심내기보다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진미채’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일 수 있다.



4. 근본으로의 회귀: 충무김밥과 그냥 김밥


화려한 토핑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김밥의 원형질과 마주하게 된다. 맨밥을 김으로 돌돌 만 ‘충무김밥’.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냥 ‘밥에 김만 싸 먹는’ 원초적인 형태에 다다른다.


나는 가끔 모든 것이 귀찮고 복잡하게 느껴질 때, 그냥 맨밥에 김 한 장을 싸서 먹는다. 아무런 기교도, 꾸밈도 없는 그 맛 속에서 오히려 깊은 위안을 얻는다. 심지어 생김을 간장에 콕 찍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찾아 헤매는 행복이란, 명란 아보카도나 돈가스 같은 화려한 토핑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밥 한 덩이와 바삭한 김 한 장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에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덜어내고 남은 본질 그 자체. 그것이야말로 가장 질리지 않고 오래가는 맛이 아닐까.



당신의 소울 김밥은 무엇인가요?


김밥 한 줄에도 이렇게나 많은 우주가 담겨 있다. 당신의 인생 김밥은 무엇인가? 화려한 토핑으로 가득 찬 김밥인가 아니면 단순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김밥인가. 정답은 없다. 그저 오늘, 당신의 마음이 끌리는 김밥 한 줄을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나는 내일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탱고의 등을 쓰다듬었다.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저 내 손길을 느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인생 최고의 김밥은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나누는 김밥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녀석은 김밥을 먹을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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