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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라는 이름의 사각지대

by 김경훈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뇌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게으른 사서와 같아서 익숙한 분류 체계와 예측 가능한 결말을 선호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도서관 속에서 늘 다니던 서가만 맴돌고, 늘 펼쳐보던 페이지만 뒤적인다. ‘고정관념’이라는 이름의 이 안락한 열람실은 아늑하지만, 그 벽 너머에 숨겨진 진실을, 우리가 정작 봐야 할 결정적인 단서를 놓치게 만든다. 마치 국경의 세관원처럼, 우리는 밀수범의 등 뒤에 달린 낡은 주머니만을 집요하게 뒤지느라, 그가 타고 온 오토바이 자체가 밀수품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보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눈(目)과 머릿속에 존재하는 그 교묘한 사각지대에 대한, 어느 늦가을 밤의 기록이다.



1. 막다른 골목의 데이터


김경훈의 연구실은 차가운 형광등 불빛과 낮은 컴퓨터 팬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밖은 이미 깊은 어둠에 잠겼고,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이 도시가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알렸다. 그의 발치에는 안내견 탱고가 세상의 모든 복잡함과 무관하다는 듯 깊고 평온한 숨을 내쉬며 엎드려 있었다. 그의 책상 위는 각종 점자 인쇄물과 음성 녹음 파일이 담긴 외장하드, 그리고 반쯤 마시다 만 인스턴트커피 잔으로 어지러웠다. 공기 중에는 오래된 종이 냄새와 전자 기기의 미열, 그리고 밤샘 작업 특유의 희미한 피로 냄새가 감돌았다.


그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새로 개관하는 대구 시립 미술관의 웹사이트 접근성 개선 프로젝트. 그는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용자가 전시 정보, 작가 정보, 이벤트 예약 시스템에 장벽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 구조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의 설계도는 그가 이제껏 쌓아온 경영학적 효율성, 문헌정보학적 체계성, 그리고 철학적 보편성의 모든 것을 집결시킨, 이론적으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다. 주요 화면낭독기(Screen Reader)와의 호환성 테스트도 수차례 통과했고,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의 최고 등급인 AAA 기준까지 만족시켰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해야만 했다. 그의 자부심, 그의 전문성,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소명이 그 설계도 안에 응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완벽한 논리를 비웃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반복적으로 같은 지점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보고했다. 특정 전시실의 상세 정보 페이지로 진입하려는 순간, 화면낭독기가 갑자기 방향 감각을 상실한 듯 엉뚱한 메뉴를 읽어대거나, 아예 먹통이 되어 침묵해 버리는 현상이 간헐적으로, 그러나 끈질기게 발생했다. 마치 시스템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도 숨어, 그의 완벽한 설계를 조롱하는 듯했다. 그는 지난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코드 한 줄 한 줄을, 마치 암호 해독가처럼 집요하게 분석했고, 데이터 구조의 모든 연결고리를 신경외과 의사처럼 세밀하게 점검했으며, 관련 기술 문서와 해외 포럼까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원인은 오리무중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던 유쾌한 미소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대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앞에서 길을 잃은 탐험가 같은 깊은 고뇌와, 수면 부족에서 오는 짜증 섞인 피로감이 짙은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의미 없이 멈춰 있었고, 평소 부드럽게 미소 짓던 입술은 굳게 다물려 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사투를 암시했다. 그는 자신이 구축한 시스템의 논리적 완벽성에 대한 믿음과, 눈앞에서 반복되는 명백한 실패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그는 지금, 텅 빈 주머니만을 계속해서 뒤지며 밀수품을 찾으려 애쓰는 어리석고 집요한 세관원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모든 지식과 경험이 이 작은 오류 앞에서 무력하게 느껴졌다.



2. 철학자의 유쾌한 난입, 그리고 뜻밖의 우화


“아직도 그 디지털 유령이랑 씨름 중이야, 자기?”


보보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등불처럼, 혹은 구원처럼 나타났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러나 정확히 그가 가장 지쳐 무너지기 직전의 순간을 귀신같이 포착해 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야식으로 사 온 듯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찹쌀떡 봉지가 들려 있었고, 그녀는 코트 자락에서 풍기는 밤공기의 차가운 냄새와 함께, 그의 등 뒤에 가만히 섰다. 그녀에게서는 늘 나던 섬세한 향수 냄새 대신, 오늘은 갓 볶은 원두 같은 깊고 따뜻한 향기가 났다. 아마도 그가 좋아하는 동네 로스터리 카페에 들렀다 온 모양이었다.


김경훈은 의자를 돌려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의 얼굴에 반가움과 함께, 자신의 무력하고 지친 모습을 들켜버린 듯한 민망함이 복잡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애써 평소의 유쾌한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지만, 입꼬리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응… 유령이 아니라 거의 폴터가이스트 수준이야, 보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계속 내 시스템을 어지럽히네.” 그는 지친 목소리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설계, 예측 불가능한 오류, 그리고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깊은 좌절감.


보보는 그의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책상 모서리에 가볍게 걸터앉아, 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그녀의 눈빛은 그의 고뇌를 깊이 이해하고 위로하는 듯 따뜻했지만, 동시에 철학자 특유의, 문제의 표면 아래 숨겨진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듯한 예리함으로 반짝였다. 그녀는 그의 기술적인 좌절을 섣불리 위로하는 대신, 전혀 예상치 못한,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 말이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기와 함께, 무언가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려는 듯한 은밀함이 담겨 있었다. “남미 어디 후미진 국경에 엄청 깐깐하고 원칙주의자인 세관원이 살았대. 그런데 매일 아침 해 질 녘이면 똑같은 시간에, 낡아빠진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을 넘는 할아버지가 있었던 거야. 문제는 그 할아버지 등 뒤에 항상 크고 낡은 가죽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는 거지. 세관원은 딱 감이 왔지. 수년간의 경험으로 다져진 그의 직감이 소리치고 있었어. ‘저 영감, 백 프로 밀수꾼이다!’”


그녀는 마치 1인극 배우처럼, 세관원의 집요한 의심과 할아버지의 태평스러운 능청스러움을 과장된 몸짓과 다양한 목소리 톤으로 실감 나게 연기하기 시작했다. 김경훈은 그녀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그의 굳었던 얼굴 근육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돌아왔다. 그의 지친 뇌가 잠시 휴식을 얻는 듯했다.


“세관원은 매일같이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할아버지 오토바이를 세우고, 그 낡은 주머니를 샅샅이 뒤졌대. 밑바닥까지 손을 넣어 훑고, 안감을 뜯어보고, 심지어 어느 날은 최신형 금속 탐지기까지 동원해서 샅샅이 스캔했지. 그런데 결과는? 매번 똑같았어. 텅 빈 주머니거나, 아니면 그냥 흙 묻은 감자 몇 알, 혹은 낡은 작업복 같은 것들뿐. 세관원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 자신의 완벽한 논리적 추론이 현실 앞에서 번번이 좌절되니까. 결국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할아버지 바짓가랑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애원했대. ‘영감님,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대체 뭘 밀수하시는 겁니까? 비밀 절대 누설 안 하고, 절대로 체포 안 할게요!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보보는 결정적인 순간을 앞둔 배우처럼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반짝이며 김경훈의 귀에 대고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껄껄껄, 아주 배를 잡고 웃으면서 뭐랬는 줄 알아?”

김경훈은 침을 삼켰다. “…뭔데?”

“‘오토바이라네!’”



3. 당연함이라는 이름의 사각지대


김경훈은 처음에는 그 황당하고도 유쾌한 반전에, 그녀를 따라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오토바이라니, 정말이지….” 하지만 그의 웃음은 곧 잦아들었고, 깊고 서늘한 침묵이 찾아왔다. ‘오토바이라네.’ 그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문장이 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처럼, 혹은 경고음처럼 크고 명료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눈썹이 천천히 활처럼 휘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보보는 볼 수 있었다. 그의 뇌 속에서 방금 들은 낡은 우화와 그가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씨름하던 최첨단 기술의 문제가 격렬하게 충돌하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신경 회로를 격렬하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파크가 튀는 듯한 지적 흥분과 함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깊은 자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바로 그 집요하고도 어리석은 세관원이었다는 것을. 그는 웹사이트의 ‘콘텐츠(주머니)’ – 전시 정보 텍스트, 작가 소개 이미지, 이벤트 예약 버튼 – 와 그 콘텐츠를 담아내는 ‘정보 구조(주머니 속 내용물)’ – 코드 라인, 데이터베이스 스키마, 메뉴의 논리적 흐름 – 에만 병적으로 집착했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라는 익숙한 영역 안에서만 문제를 찾으려 했다. 마치 밀수품은 당연히 주머니 안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세관원처럼.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 모든 것을 실어 나르고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가장 기본적인 ‘플랫폼(오토바이)’ 자체 – 즉, 웹사이트 전체의 구동 환경, 사용되는 특정 기술 스택, 혹은 사용자가 사용하는 다양한 보조 기술(스크린 리더의 종류나 버전)과의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 방식 – 에 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왜 웹사이트의 가장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나, 그것이 구동되는 서버 환경의 특수성, 혹은 다양한 스크린 리더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웹 콘텐츠를 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의 논리적 완벽함만을 추구하느라, 그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더 큰 시스템의 복잡성, 즉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오토바이’의 존재를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정관념. ‘문제는 당연히 내가 작성한 코드 안에 있을 것이다’라는 숙련된 개발자로서의 오만한 확신이 그의 시야를 교묘하게 가리고 결정적인 사각지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의 모든 지식과 경험이 바로 그 ‘당연함’이라는 이름의 베일 앞에서 무력했던 것이다.


“보보…” 그가 나지막이 거의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새로운 발견의 희미한 흥분과 함께, 자신의 근시안적인 어리석음에 대한 깊고 쓰디쓴 자조가 뒤섞여 있었다. “나… 오토바이를 완전히 놓치고 있었어. 주머니만 미친 듯이 뒤지고 있었던 거야.”



4. 관점의 전환, 새로운 경로의 발견, 그리고 유령의 정체


그는 즉시 아이폰을 들었다. 그리고 평소 코드 오류를 검증할 때 사용하던 복잡한 개발자용 시뮬레이션 도구나 디버깅 프로그램 대신, 가장 기본적인 기능, 즉 실제 아이폰에 내장된 VoiceOver(화면낭독기) 기능을 직접 켰다. 그는 더 이상 시스템의 설계자나 개발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막 이 낯선 디지털 미술관에 도착한, 눈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관람객이었다. 그는 모든 기술적 선입견과 논리적 가정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화면낭독기가 들려주는 기계적인 음성과 손끝으로 느껴지는 스크린의 진동에만 의지하여, 문제의 그 전시 상세 정보 페이지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익숙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화면 위를 쓸어내렸고, 그의 귀는 화면낭독기가 토해내는 정보의 흐름 속에서 미세한 불협화음이나 논리적 단절을 찾으려 애썼다. 그의 발치에서 그의 갑작스러운 에너지 변화와 집중력의 상승을 감지한 탱고가 고개를 들어 그의 손등에 자신의 축축한 코를 가만히 비볐다. 마치 ‘이제 제대로 된 길을 찾으신 건가요?’ 하고 묻는 듯했다.


결과는 놀랍고도 허탈했다. 문제는 그의 정교하게 설계된 정보 구조나 코드 안에 있지 않았다. 문제는 웹사이트 메인 페이지 상단에,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화려하게 배치된, 최신 자바스크립트 프레임워크 기반의 ‘실시간 인기 전시 하이라이트’ 슬라이드 쇼 위젯에 있었다. 시각적으로는 역동적이고 아름다웠지만, 스크린 리더 사용자에게는 길을 찾을 수 없는 미로이자 완벽한 함정이었다. 화면낭독기는 그 위젯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인 콘텐츠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계속해서 같은 정보만을 반복해서 읽어주거나, 아예 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음 콘텐츠 블록으로의 이동 자체를 거부했다. 사용자는 그 화려하고 현란한 시각적 ‘주머니’에 정신이 팔려, 혹은 그 안에서 길을 잃어, 정작 자신이 찾아가야 할 다른 중요한 정보(다른 메뉴나 일반 전시 콘텐츠)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접근성의 블랙홀, 시스템의 명백한 사각지대였다. 김경훈이 밤새워 설계한 완벽하고 논리적인 정보 구조는 이 예상치 못한 ‘오토바이’의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사용자에게 제대로 전달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찾았어….” 그는 허탈한 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범인을 잡은 탐정의 만족감과 함께,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곳에 숨어 있던 진실에 대한 실소가 뒤섞여 있었다. “오토바이가… 엔진이 아니라, 핸들이 고장 나 있었어. 화려하기만 하고 방향 전환이 안 되는 핸들.”



5. 인간이라는 주석, 오류라는 가능성, 그리고 떡볶이의 위로


보보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내 말이 맞지?’ 하는 장난스러운 승리감과 함께, 마침내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그에 대한 따뜻한 안도감이 가득 어려 있었다. 그녀는 그의 귓가에 대고,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끔은 말이야, 자기.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의 해답은 가장 바보 같고 썰렁한 농담 속에 숨어 있기도 해. 철학보다 농담이 더 쓸모 있을 때가 있다니까.”


김경훈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편안하게 머리를 기댔다. 그녀에게서 나는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향기가 그의 지친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듯했다. 그는 오늘 밤, 단순히 웹사이트의 기술적인 오류 하나를 해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인식 체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더 근본적인 오류, 즉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자신의 코드만 의심하고), 익숙한 방식만을 고집하려 했던(기존의 디버깅 방식만 반복했던) 자신의 ‘고정관념’이라는 이름의 완고한 세관원을 만났다. 그리고 그 세관원의 눈을 잠시 가려주었던 보보라는 유쾌하고 지혜로운 철학자 덕분에, 그는 비로소 그 너머의, 너무나 명백해서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류는 시스템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시스템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자체가 가장 큰 오류일 수 있었다.


그는 아이폰을 들어, 오늘의 길고 혼란스러웠으며 결국에는 유쾌했던 여정에 대한 짧은 주석을 음성으로 남겼다. 그의 목소리에는 밤샘 작업의 피로감과 함께, 새로운 깨달음에서 오는 지적인 흥분과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자조, 그리고 보보에 대한 깊은 감사가 뒤섞여 있었다.



‘제목: 오토바이라는 이름의 사각지대, 혹은 당연함의 함정.

고정관념은 가장 효율적인 인지적 지름길이자, 동시에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우리는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주머니’의 내용물에 집착하느라, 문제의 진짜 본질일 수 있는 ‘오토바이’의 존재 자체를 망각한다. 세관원의 오류는 단순히 시력이나 주의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함이라는 이름의 베일에 가려진 관점의 문제다. 그는 주머니 안에 ‘없음’만을 확인했을 뿐, 주머니 바깥의 ‘있음’을 보지 못했다.

정보 접근성 설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코드 레벨의 기술적 ‘결함(주머니 속 빈틈)’을 찾는 데 몰두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시스템 전체의 설계 철학(오토바이 자체의 구조와 목적) 혹은 사용자와 시스템이 만나는 구체적인 맥락(도로의 상태, 날씨)일 수 있다. 사용자의 실제 경험, 그들이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을 보지 못하면, 우리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설계는 그저 실험실 안에서만 작동하는 공허한 논리의 유희에 불과하다. 화려한 슬라이드 쇼가 길을 막는 것처럼.

보보의 농담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었다. 그것은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의 지혜’였고, 헤겔이 말한 ‘부정성의 힘’이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막다른 골목에 갇힌 나를 다른 관점으로 이끌어준 ‘사랑의 개입’이었다. 때로는 가장 비논리적이고 유쾌한 관점의 전환이 가장 견고하고 우울한 논리의 벽을 무너뜨린다.

결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오토바이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주머니를 얼마나 꼼꼼히 뒤지느냐가 아니라, 때로는 과감히 고개를 들어 내가 지금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질문하는 용기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모든 진정한 발견과 성장의 시작이다. 아, 맞다. 보보가 사 온 떡볶이 식겠다. 얼른 먹어야지.’



메모를 마친 그는 아이폰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는 다시 평소의 따뜻하고 유쾌한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그는 보보가 가져온 떡볶이 봉지를 열었다. 매콤하고 달콤한, 위로의 냄새가 연구실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데웠다. 그는 보보와 함께, 이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세상을 향해, 그리고 서로를 향해, 다시 한번 따뜻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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