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그녀의 하얀 갑옷, 톰포드 화이트 스웨이드

by 김경훈

세상에는 친해지기 어려운 부류가 몇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아마도 단 한 톨의 흠결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일 것이다.

오늘 만난 친구, 톰포드의 ‘화이트 스웨이드’는 바로 그런 존재다.

그녀는 향수라기보다, 오직 흰색과 크림색으로만 이루어진 미니멀리즘 갤러리 그 자체다.

과연 이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한 존재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약간의 주눅과 큰 호기심을 안고 그녀의 공간에 발을 들여 보기로 했다.


그녀의 공간에 들어서면, 강렬한 향기 대신 고요하고 정적인 공기가 먼저 맞이한다.

은은한 타임(Thyme) 허브와 맑게 우려낸 차(Tea)의 향기가 떠다닌다.

이는 마치 손님을 맞이하기 전, 공간을 정화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자신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이 먼저 마음을 가다듬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권위와 세련됨이 느껴지는 시작이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그녀, ‘화이트 스웨이드’는 순백의 캐시미어 스웨터처럼 부드럽고 고고하다.

그녀의 심장에서는 깨끗한 은방울꽃과 한두 송이의 장미가 피어나지만, 그 향기는 결코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오히려 그 꽃들 사이로, 새하얀 스웨이드 장갑을 떠올리게 하는 샤프란의 스파이시한 가죽 향이 중심을 잡는다.

그녀는 꽃의 아름다움과 가죽의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그녀와의 대화는 나지막하고 차분하지만, 결코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만남이 끝나고 그녀의 공간을 나서도, 그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녀의 진짜 본질은 바로 피부에 녹아들 듯 부드러운 머스크와 스웨이드의 조화다.

이는 흔히 말하는 ‘살냄새’와 닮아있지만, 인간적인 체취라기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디로션을 바른 뒤 최고급 캐시미어 담요를 덮었을 때 날 법한, 지극히 이상적인 피부의 향이다.

샌달우드와 앰버의 온기가 느껴지지만, 사람의 체온이라기보다는 완벽한 온도로 관리되는 실내의 온기처럼 느껴진다.


톰포드 화이트 스웨이드는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우아함 그 자체다.

그녀는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부유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그 완벽한 갑옷 안에는 땀과 눈물 같은 인간적인 흔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녀는 실수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며, 목 놓아 웃거나 울지 않을 것이다.


감각으로 세상을 만나는 이에게, 그녀의 향기는 하나의 이상향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동시에, 그 비현실적인 완벽함이 때로는 차갑고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화이트 스웨이드는 영혼의 향이라기보다, 가장 잘 만들어진 ‘사물’의 향기에 가깝다.

모든 것을 가졌기에, 어쩌면 아무런 이야기도 가지지 못한 존재.

그것이 바로 그녀에 대한, 존경과 연민이 뒤섞인 최종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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