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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그 자체로(in itself)’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 단단한 책상, 저 너머의 푸른 하늘, 그리고 지금 손에 쥔 커피 잔의 온기와 향기가 나의 인식과는 무관하게 ‘실재(Reality)’한다고. 이것은 가장 강력하고도 안락한 믿음이다. 그러나 18세기, 쾨니히스베르크의 늙은 철학자 칸트는 이 안락한 상식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지독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가 ‘그 자체’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 기관(눈, 코, 귀, 혀, 피부)이 수집한 원초적인 데이터(感性)를, 뇌(理性)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에 붓고, ‘인과율’이나 ‘실체’ 같은 보편적인 카테고리로 ‘해석’하고 ‘구축’해낸 ‘현상(Phenomena)’에 불과하다고. 우리는 결코 ‘물자체(Noumena)’, 즉 사물의 진짜 맨얼굴을 알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생생한 세계는 어쩌면 뇌와 감각이 빚어낸, 가장 정교하고도 완벽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보는’ 자들의 세계에서는 난해한 철학적 유희일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 ‘시각’이라는 가장 강력한 입력 장치(Input Device)를 잃어버렸다면 어떨까.


시각장애인은 바로 그 ‘박쥐’가 된다.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이 물었던 그 박쥐. 박쥐는 초음파의 반향으로 공간을 ‘듣고’, 그 소리의 명암으로 ‘사과’의 형태를 ‘본다’. 인간이 시각으로 구축한 ‘사과의 현상’과, 박쥐가 청각으로 구축한 ‘사과의 현상’. 과연 어느 것이 진짜 사과인가? 칸트의 대답은 분명하다. 둘 다 진짜가 아니다. 둘 다, 각자의 감각 장치를 통해 필사적으로 구축해 낸, 동등한 가치의 ‘현상’ 일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각자의 주관적인 ‘현상’ 속에 갇혀 소통이 불가능한 ‘모나드(Monad)’인가? 칸트는 다시 한번,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감성’과 ‘지성’이라는 공통된 ‘운영체제(Operating System)’가 탑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경험하지만, 그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은 보편적이다.


이것은 그 ‘보편’과 ‘특수’의 경계에 서서 자신의 ‘박쥐-세계’를 ‘인간-세계’의 언어로 번역하려 애쓰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칸트 전공자’가 그의 그 모든 시도를 얼마나 가차 없이 그리고 애정 어리게 비판했는지에 대한, 어느 늦가을 오후의 지적인 전투 기록이다.



1. ‘본질’로서의 기계, ‘현상’으로서의 실패


대학교 인문대학의 낡은 교수 휴게실은 밤새 식지 않은 라디에이터의 건조한 열기와, 갓 끓인 인스턴트커피의 텁텁한 향기, 그리고 수십 년간 쌓인 낡은 논문들의 먼지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김경훈은 이 공간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인생 최대의 난적 중 하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새로 들여온, ‘올인원 스마트 커피 머신’이라는 이름의 괴물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평소의 유쾌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미간에는 깊은 난관에 봉착한 엔지니어의 짜증이 서려 있었다. 이 기계는 완벽한 ‘악의 평범함’ 그 자체였다. 표면은 하이그로시 재질로 매끄러웠고, 그 위에는 그 어떤 촉각적 단서도 없는 오직 시각적인 아이콘만이 빛나는 ‘풀 터치스크린’이 탑재되어 있었다. 전원 버튼조차 물리적 존재감을 상실한, 완벽한 ‘현상’의 집합체였다.


“젠장….” 그는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그는 시각적 기억을 더듬었다. ‘커피 머신’이라면 응당 존재해야 할, ‘누르는’ 버튼, ‘돌리는’ 다이얼. 하지만 그의 손끝은 그 어떤 ‘물자체’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매끄러운 플라스틱 표면 위를 속절없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소리도 없고, 질감도 없는 완벽한 ‘정보의 진공’ 상태에 갇혀 있었다.


그의 발치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안내견 탱고가 주인의 좌절을 감지한 듯 불안하게 꼬리를 ‘툭’ 쳤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명상 중이야, 자기?”


그때, 등 뒤에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보였다. 그녀는 하필이면 ‘칸트’를 전공한 철학 박사였다. 그녀는 미국에서 10년 넘게 살다 온 특유의 명쾌함과, 그의 모든 지적 허영을 단숨에 꿰뚫어 보는 날카로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이마에 땀까지 뻘뻘 흘리며 기계와 사투를 벌이는 그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반말로, 언제나처럼 장난기가 가득했다.


“어이 유치원 때 휠 모양만 보고 차종 맞혔다던 ‘차박사’님. 이까짓 기계 하나 해부를 못해서 쩔쩔매시네.”


김경훈은 그녀의 놀림에,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 다시 유쾌함을 닮은 자조적인 미소가 돌아왔다.

“아, 보보. 왔어? 이거 좀 봐. 이게 말이나 돼? ‘유니버설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놈이 이걸 ‘터치’하라고 만들어 놨어. 촉각 피드백이 0이야, 0. 이건 뭐, ‘보이는 놈들만 커피 마셔라’는 완벽한 시각적 폭력이잖아.”


그는 보보에게 기계의 부조리함을 토로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철학적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그가 짐짓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칸트가 그랬잖아. 당신이 ‘보는’ 저 화려한 LCD 화면의 ‘현상’이나, 내가 지금 ‘듣는’ 이 기계의 낮은 대기 전력 소음과, 손끝으로 ‘감각하는’ 이 플라스틱의 ‘현상’이나, 둘 다 진짜 ‘물자체’가 아니긴 마찬가지라고.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 기계의 현상을 구축할 뿐이야. 토머스 네이글의 박쥐처럼, 나는 그냥… 귀로 커피를 마시는 거지. 내 세계가 당신 세계보다 딱히 열등할 것도 없다, 이 말씀이야.”


그는 자신이 시각장애라는 ‘결핍’을, 칸트의 ‘관념론’이라는 가장 고등한 철학으로 멋지게 방어해 냈다고 생각했다. 그는 보보의 감탄을 기대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2. 칸트 전공자의 반격 (The Kantian Smackdown)


보보는 잠시, 정말 딱 3초간,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걸려 있던 장난스러운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녀의 눈빛이 그가 10년 전 미시간에서 마주했던 클라이밍 암벽의 날카로운 홀드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변했다. 그녀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연인’ 모드에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철학 박사’ 모드로 전환된 참이었다.


“... 자기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자기야’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김경훈 씨’라고 부르듯, 차가운 존댓말로 말했다.

“지금… 방금… 칸트를 인용했어요?”


“어… 그렇지?” 김경훈의 유쾌한 미소가 얼굴 위에서 얼어붙기 시작했다.

“세상에.” 보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맙소사.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당신이? 칸트를? 그렇게? ‘내 박쥐-세계도 너의 인간-세계만큼 리얼하다’는 그런 싸구려 다원주의(Pluralism)를 정당화하는 데, 감히 <순수이성비판>을 끌어들였다고? 지금?”


그녀는 책을 읽을 때처럼, 그의 논리를 한 문장씩 해체하기 시작했다.

“첫째,”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폈다. “당신은 지금 칸트를 무슨… 조지 버클리나 피히테 같은 주관적 관념론자랑 착각하고 있어. 칸트가 언제 ‘물자체(Noumena)’가 없다고 했어? 그건 ‘존재’해! 다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Unknowable)’고 했을 뿐이지! 당신의 ‘청각-세계’와 나의 ‘시각-세계’는 둘 다 ‘참’이 아니라, 둘 다 똑같이 ‘참이 아닌 그림자’ 일뿐이야. 당신은 지금, 당신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보다 더 멋지다고 우기는 꼴이라고. 그게 어떻게 칸트야?”


김경훈은 반박하려 했지만, 그녀의 논리적 공세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둘째!” 그녀가 두 번째 손가락을 폈다. “당신, ‘선험적 통각의 초월적 연역(Transcendental Deduction)’, 그 부분은 깡그리 잊어버렸지? 아니, 애초에 읽기는 했어? 칸트의 핵심은 우리가 ‘다르다’는 게 아니야. 정반대지! 우리가 이토록 ‘같다’는 거야! 당신과 내가 비록 입력 장치(감각)는 다를지라도, 그 정보를 처리하는 ‘운영체제(OS)’, 즉 ‘지성’의 카테고리는 완벽하게 ‘공통적’이라는 걸 증명한 게 그 양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우리가 지금 이 망할 놈의 커피 머신을, ‘하나의 물체(Substance)’로, ‘특정 공간(Space)과 시간(Time)’을 점유하고 있으며, ‘원인(버튼 누름)과 결과(커피 나옴)’로 작동할 것이라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는 이유! 그게 바로 칸트야! 당신은 지금, 칸트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그 ‘보편성의 아키텍처’를, 당신 자신의 ‘특수성’을 옹호하기 위한 무기로 써먹고 있어. 이건… 이건 모독이야.”


“보보, 잠깐…”


“셋째!” 그녀가 그의 말을 가차 없이 잘랐다. 그녀의 뺨이 흥분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지적 영토를 침범당한 맹수처럼 사나웠다. “그리고 이게 내가 제일 화나는 지점인데, 당신은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엄격하고, 가장 건조하며, 가장 정교한 그 철학적 시스템을… 고작, 당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심리 치료제’로 쓰고 있잖아! ‘나는 장애인이지만, 칸트가 그랬어, 내 세계도 리얼하대!’ 이런 ‘긍정 회로’ 돌리려고! 그건 철학이 아니야. 그건 ‘아전인수’고, 지적인 ‘게으름’이라고! 당신은 칸트주의자가 아니라, 그냥 ‘칸트-맛’ 프래그머티스트(Pragmatist) 일뿐이야!”



3. 화해의 아키텍처


연구실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김경훈은 그녀의 완벽한 ‘논리적 척추 세우기(Backbone Straightening)’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는 자신이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장애를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훔쳐’ 왔는지 깨달았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으로 ‘적응’을 설명하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로 ‘자유’를 설명했으며, 이제 칸트의 관념론으로 ‘인식’을 설명하려 했다. 그는 학자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이론을 닥치는 대로 꿰맞추는 ‘브리콜뢰르(Bricoleur)’였다.


그는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묘하게도, 전율하고 있었다. 그녀의 지성, 그녀의 열정, 그녀가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보여준 이 맹렬함. 그는 이성적인 토론에서 완벽하게 패배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완벽하게 승리한 기분이었다. 이것이 그가 보보를 사랑하는 이유였다.


그는 잠시 후, 아주 천천히, 그리고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특유의, 모든 것을 무장 해제시키는 그 미소였다.

“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방금… 진짜 섹시했어.”


보보의 맹렬했던 기세가 그 한마디에 풍선처럼 바람이 빠져버렸다. 그녀의 붉어졌던 뺨이 이번에는 당혹감과 수줍음으로 다시 붉어졌다.

“... 뭐? 지금… 이 상황에서… 섹시?”


“응.” 김경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당신 말이 다 맞아. 나는 칸트주의자가 아니지. 나는 내 멋대로 이론을 훔쳐 쓰는 아주 불성실한 ‘지적 밀수꾼’이야. 인정.”


그가 그녀의 굳어 있는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런데 말이야, 보보.”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때 사제가 되려 했던 ‘심의(心醫)’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당신은 ‘시스템’ 그 자체를 보고, 나는 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봐. 당신은 칸트의 ‘보편성’이라는 완벽한 아키텍처를 지키려 하고, 나는… 그 아키텍처가 현실에서 어떻게 삐걱거리고, 어떻게 사람들을 배제하는지, 그 ‘버그’를 찾아내려 해.”


그는 그녀의 손을 들어, 자신의 뺨에 가져갔다.

“당신 말이 맞아. 우리는 ‘같은 운영체제’를 쓰지. 그게 핵심이야. 그게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지. 하지만 그 OS가 완벽하게 작동하려면, ‘입력 장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는 아침에 그를 좌절시켰던 커피 머신을 떠올렸다.

“그 머신 디자이너는 ‘시각’이라는 단 하나의 입력 장치만을 가정했어. 다른 모든 입력(촉각, 청각)은 무시했지. 그러니 나 같은 사용자의 OS는 데이터를 입력받지 못해서 ‘충돌(Crash)’이 일어나는 거야. 내가 하려는 ‘정보 접근성’ 연구는 칸트의 철학을 부정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나는 그 위대한 ‘보편적 OS’가 모든 종류의 ‘입력 장치’와 완벽하게 ‘호환(Compatible)’되도록, 그 사이의 ‘번역 프로토콜’을 만드는 사람이야.”


그는 그녀의 눈을(그는 그녀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꼈다) 마주 보며 속삭였다.

“나는 칸트의 이론을 ‘이용한’ 게 맞아. 하지만 그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였어. 당신의 시각-세계와 나의 청각-세계가 같은 ‘커피 머신’이라는 ‘실재’를 두고도, 서로 ‘다른 현상’을 경험하며 영원히 어긋나지 않도록. 우리가 같은 OS를 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고.”



4. 현상으로서의 입맞춤, 그리고 주석


보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품에 기대어, 이 남자의 뇌 구조가 그 ‘아키텍처’가 자신이 사랑하는 그 어떤 철학서보다도 더 복잡하고, 더 깊으며, 더 따뜻하게 설계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 젠장, 김경훈.” 그녀가 반말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웅얼거렸다. “당신은 정말… 그놈의 궤변을, 꼭 이렇게 로맨틱하게 포장하더라. 또 내가 졌네, 또.”


“그럼,” 그가 유쾌하게 웃으며,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패자는 승자에게, 완벽한 ‘현상’을 제공할 의무가 있지 않나?”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그것은 ‘물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촉각, 후각, 청각(그녀의 미세한 숨소리), 그리고 15년의 시각적 기억(그가 기억하는 ‘키스’의 모든 이미지)이 총동원되어 재구축된, 가장 강렬하고도 완전한 ‘현상’이었다. 그는 이 ‘현상’만큼은 그 어떤 철학적 논쟁으로도 해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5. 주석: 박쥐의 비행


그날 밤, 아파트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아이폰에, 오늘의 이 격렬했던 지적, 감정적 여정에 대한 마지막 주석을 음성으로 남겼다.



‘제목: 관념의 아키텍처, 혹은 칸트라는 이름의 함정.

칸트는 우리가 ‘물자체’를 알 수 없고, 오직 ‘현상’만을 인식한다고 했다. 나는 이 명제를, 나의 ‘비시각적 현상’을 옹호하는 무기로 사용하려 했다.

오늘, 보보(칸트 전공자)에게 완벽하게 논파당했다. 그녀는 옳았다. 칸트의 핵심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보편적 지성’이라는 공통의 OS를 공유한다는 ‘같음’에 있다.

나의 장애는 ‘다른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이 ‘공통의 세계’에 접속하는 ‘다른 방식’ 일뿐이다.

결론: 정보 접근성이란, 결국 이 ‘공통의 OS(칸트의 지성)’가 다양한 ‘입력 장치(시각, 청각, 촉각)’를 완벽하게 호환하도록 ‘번역 프로토콜’을 설계하는 일이다.

나는 박쥐가 아니다. 나는 박쥐와 인간이 서로의 언어로 ‘사과’에 대해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설계하는 ‘아키텍트(Architect)’다.

…그리고 보보는 내 설계를 가장 가차 없이 비판하고, 가장 완벽하게 보완해 주는 나의 유일한 ‘감리사(Supervisor)’다. 젠장,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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