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을 깬 깡통의 승리
1. 서론: 마트 진열대의 침묵, 그 이면의 포성
퇴근길 마트의 통조림 코너에 서면 서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열 맞춰 늘어선 참치 캔과 옥수수 통조림, 그리고 묵직한 유리병에 담긴 잼과 소스들. 그것들은 유통기한이라는 시간의 법칙을 비웃으며 몇 년이고 그 자리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무심코 그 차가운 금속 용기를 집어 들지만, 사실 그 안에는 200년 전 유럽 대륙을 뒤덮었던 피비린내와 포연이 응축되어 있다. 나폴레옹의 야망이 투명한 유리에 담겼다면, 대영제국의 생존 본능은 단단한 철 깡통을 두드려 만들었다. 지금부터 1800년,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가 가득했던 그 전장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2. 나폴레옹의 천막: 부패하는 빵과 황제의 초조함
1800년 초, 전선의 야전 사령부.
천막을 들치고 들어오는 바람에서는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천막 내부의 공기는 더욱 무겁고 탁했다. 며칠째 내린 비로 눅눅해진 가죽 군화 냄새, 그리고 구석에 쌓아둔 식량 자루에서 피어오르는 시큼한 악취가 황제의 코를 찔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집무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탁자 위의 지도를 내려쳤다. 붉은 잉크로 그려진 진격로 위로 촛농이 '툭' 하고 떨어져 굳어갔다.
"망할 놈의 빵! 또 식량이 문제인가?"
황제의 고함에 맞은편에 선 병참 장교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군복은 땀과 흙먼지로 절어 있었고, 눈밑은 수면 부족으로 퀭하게 패여 있었다.
"각하, 날씨가 더워지면서 빵과 고기가 사흘을 버티지 못합니다. 빵에는 푸른곰팡이가 피어오르고, 고기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습니다. 병사들이 적과 마주하기도 전에 배탈이 나서 쓰러지고 있습니다. 현지 약탈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지나가는 마을마다 씨가 말라서 쥐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은 미간을 찌푸린 채 천막 틈으로 보이는 회색 하늘을 응시했다. 그의 전술 핵심은 '속도'였다. 적들이 무거운 솥단지를 지고 분당 70보를 걸을 때, 그의 군대는 120보를 주파해 신출귀몰하게 적의 허를 찔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장이 가벼워야 하는데, 썩어가는 식량을 짊어지고 다니는 꼴이라니. 보급의 실패는 곧 패배를 의미했다.
"산업장려협회장을 불러라. 당장."
잠시 후, 황제 앞에 선 협회장에게 나폴레옹은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공고를 띄워라. 내 군대가 먹을 식량을 썩지 않게,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보관하는 방법을 가져오는 자에게 상금 1만 2,000프랑을 하사하겠다. 프랑스 전역의 발명가들을 모조리 쥐어짜서라도 찾아내!"
3. 괴짜들의 행렬과 샴페인 병의 기적
파리의 산업장려협회 접수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현재 가치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상금에 눈이 먼 괴짜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접수처는 땀 냄새와 고성, 그리고 온갖 기이한 물건들이 부딪치는 소리로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자, 이것을 보십시오! 고대 갈리아 흑마법사가 전수한 가루입니다! 혀 밑에 넣으면 배고픔이 사라집니다!"
"경비!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접수 담당관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영국군 진지에 자폭하는 특공 강아지 부대부터, 팔에 나무 날개를 달고 날아서 보급하겠다는 인간까지. 이곳은 발명 대회가 아니라 기괴한 서커스장이었다.
"다음!"
그때, 허름한 앞치마를 두른 사내가 무거운 나무 상자를 낑낑대며 들고 들어왔다. 요리사 출신의 니콜라 아페르였다. 상자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당신은 또 무슨 마법 물약을 가져왔소?"
"아닙니다. 저는... 샴페인 병을 가져왔습니다."
"전쟁 중에 술판이라도 벌이자는 건가?"
"술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아페르가 내민 것은 두껍고 투명한 샴페인 병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출렁이는 건 황금빛 술이 아니었다. 걸쭉한 국물 속에 양배추, 당근, 그리고 큼지막한 고깃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다.
"이걸 병에 넣고 끓인 뒤,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막고 양초로 밀봉한 지 3주가 지났습니다. 뚜껑을 따서 냄새를 맡아보십시오."
반신반의하며 병을 딴 심사위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3주가 지났다면 응당 풍겨야 할 시체 썩는 냄새 대신, 방금 끓인 듯 구수한 고기 수프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한 입 맛본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소의 아삭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이거다! 당장 황제 폐하께 보고해!"
아페르의 '병조림'은 혁명이었다. 나폴레옹은 즉시 이 기술을 채택했다. 프랑스군은 무거운 솥단지와 조리 도구를 과감히 버렸다. 대신 유리병 몇 개만 가방에 넣고, 배가 고프면 걷으면서 뚜껑을 따 한 끼를 해결했다. 그들은 밥 먹을 시간조차 아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4. 런던의 빗소리와 깨지는 유리병
바다 건너 영국, 런던의 합동참모본부 회의실.
창밖에는 런던 특유의 우중충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회의실 안은 침묵과 시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벽에 걸린 거대한 지도 위, 붉은색 프랑스 깃발이 유럽 전역을 뒤덮고 있었다.
"도대체 이유가 뭔가? 프랑스 놈들은 발바닥에 모터라도 달았단 말인가?"
영국군 사령관이 찻잔이 달그락거릴 정도로 책상을 내리쳤다. 정보 장교가 침울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나폴레옹 군의 행군 속도는 분당 120보입니다. 우리 군의 두 배입니다. 밥 먹을 시간도 아껴서 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밥을 안 먹고 어떻게 뛰냐고! 놈들은 이슬만 먹고사나?"
그때, 헌병대장이 젖은 외투를 털며 급히 들어왔다.
"각하, 프랑스군 포로를 잡아 심문했습니다. 놈들의 군장에서 이상한 물건이 나왔습니다."
헌병대장이 테이블 위에 '쿵' 하고 올려놓은 것은 흙이 잔뜩 묻은 샴페인 병이었다.
"술병?"
"아닙니다. 식량입니다. 취사도구 없이 이것만 들고 다니며 행군 중에 뚜껑만 따서 먹는다고 합니다."
영국군 장성들은 경악했다. 자신들은 솥을 걸고,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고, 요리하느라 몇 시간을 허비할 때, 프랑스군은 병뚜껑 하나를 '뻥' 따고 식사를 마친 뒤 다시 뛰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젠장, 우리도 베껴! 당장 프랑스 놈들의 병조림을 복제해!"
5. 듀란드의 대장간: "유리는 깨진다, 우리는 쇠로 간다"
영국 군수품부는 비상이 걸렸다. 즉시 아페르의 병조림을 모방해 전선으로 보냈다. 그러나 곧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전선에서 날아온 보고서는 처참했다.
"안 됩니다! 수송 마차에서 덜컹거리다가 병이 다 깨져버립니다! 병사들이 급하게 가방을 던져도 깨집니다. 마차 바닥이 유리 파편과 음식물 범벅이 되어 썩어가고 있습니다. 전장은 레스토랑이 아닙니다. 유리는 너무 약합니다!"
기술자들은 절망했다. 그때, 런던의 기계공 피터 듀란드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기름때와 굳은살로 거친 손이었다.
"유리가 안 되면... 쇠는 어떻습니까?"
"이보게 듀란드, 쇠는 녹이 슬잖아? 밥에서 쇠 맛 나게 할 셈이야? 그리고 밀봉은 어떻게 할 건데? 병사들에게 용접기라도 나눠줄 건가?"
"주석을 얇게 입히면 됩니다. 녹이 슬지 않죠. 그리고 뚜껑을 납땜으로 밀봉하면 절대 새지 않습니다."
듀란드의 작업실은 밤낮으로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깡! 깡! 깡!
수십 번의 실패가 이어졌다. 뜨거운 열기에 깡통이 터져버리기도 하고, 납땜이 녹아내려 내용물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작업실은 타는 냄새와 금속 냄새로 매캐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영국이 살길은 이것뿐이었다.
1810년, 마침내 듀란드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양철 깡통', 우리가 아는 통조림의 조상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깡통을 바닥에 내던졌다.
쾅!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깡통은 찌그러지기만 할 뿐 터지지 않았다.
"보십시오! 던져도 안 깨집니다. 군홧발로 밟아도 멀쩡합니다. 찌그러질지언정 내용물은 안전합니다!"
영국 해군은 환호했다. 쥐가 들끓고 곰팡이 핀 딱딱한 건빵만 씹던 선원들에게 통조림은 축복이었다. 비록 전용 따개가 발명되지 않아 망치와 끌로 뚜껑을 부수듯 열어야 했지만, 영국의 통조림은 프랑스의 병조림을 압도했다. 거친 전장, 파도가 치는 배 위에서 유리는 쇠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6. 데이터의 반전: 황제의 몰락과 '동장군'의 진실
보급의 혁신을 이뤘던 나폴레옹은 아이러니하게도 '보급' 때문에 몰락했다. 1812년 러시아 원정.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향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싸워주지 않고 계속 도망치며 마을과 밭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 유명한 '청야전술'이다. 현지 조달을 막아버린 것이다. 아무리 병조림이 좋아도, 60만 명의 거대한 위장을 채울 만큼 챙겨갈 수는 없었다.
배고픔 앞에서는 120보의 속도도 소용없었다. 병사들은 굶주림에 지쳐 쓰러졌고, 탈영병이 속출했다. 결국 나폴레옹은 철수를 결정했다. 살아서 돌아온 병력은 고작 2만여 명.
역사책은 흔히 '동장군'이 나폴레옹을 패배시켰다고 기록한다. 나폴레옹 본인이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추위가 너무 혹독했다. 영하 18도의 추위가 우리를 얼려 죽였다."
하지만 훗날 데이터 분석가 샤를 미나르가 그린 유명한 도표를 텍스트로 읽어보면 진실은 다르다. 미나르의 도표는 출발할 때 굵었던 군대의 선이 모스크바로 갈수록 실처럼 가늘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병력이 급격히 줄어든 시점의 기온 데이터를 보면, 영하가 아니었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철수하던 10월, 기온은 영상 10도 내외였다. 얇은 점퍼 하나면 견딜 수 있는 날씨였다. 살인적인 영하 20도의 추위는 그들이 이미 굶주림과 질병으로 대부분 죽고 난 뒤인 12월에야 닥쳤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전략적 실수, 즉 보급선 유지 실패를 감추기 위해 '천재지변'이라는 핑계를 댔고, 이를 정설로 만들어버렸다. 병조림이라는 혁신을 만들었으나, 결국 그 혁신을 과신하다 무너진 황제의 슬픈 아이러니였다.
7. 결론: 깡통 하나에 담긴 역사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쉽게 "탁" 하고 참치 캔을 딴다. 하지만 그 경쾌한 소리 안에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빗속을 행군하던 프랑스 병사의 거친 숨소리와, 깨지지 않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 밤새 쇠를 두드리던 영국 대장장이의 땀방울이 섞여 있다.
비록 병조림은 통조림에게 왕좌를 내주었지만, 결국 이 두 기술은 인류를 '시간의 제약'에서 해방시켰다. 제철이 아닌 음식, 지구 반대편의 음식을 언제든 식탁 위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쟁은 잔혹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식탁 위에 뜻밖의 풍요를 남기기도 한다. 오늘 저녁, 통조림을 따며 손끝에 전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껴보라. 그리고 한 번쯤 생각해 보시라. 이 찌그러진 깡통 속에 담겨 있는 치열하고도 뜨거웠던 역사의 맛을.